<예롱쓰의 낙서만화>의 예롱 작가 인터뷰, "세상을 바꾸는덴 용기가 필요하다"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작품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예전에는 소셜미디어가 데뷔를 위한 등용문 역할을 했지만, 요즘은 전업작가를 위한 데뷔보다 부업으로 다양한 채널에서 가볍게 연재하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텀블벅 등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물론 소규모 생산, 판매 역시 가능해지면서 소셜미디어 연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플랫폼의 개입 없이 작가가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 공간은 작가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며느라기>이후 소셜미디어에 연재되는 작품의 장르는 물론 주제 역시 다양해지고 있는데요.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차별’과 ‘폭력’이었습니다. 소셜미디어 웹툰에서 주를 이루는 생활툰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룹니다. 때문에 당사자가 느끼는 차별과 폭력을 당사자가 지켜본 시점에서 다루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작품 중 하나인 <예롱쓰의 낙서만화>를 그리는 예롱 작가님을 만나봤습니다.

사진촬영을 위한 그림을 부탁하자 연습장을 꺼내 슥슥 그려준 예롱 작가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작가님. 웹툰인사이트를 보고 계신 분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반갑습니다. 저는 <예롱쓰의 낙서만화>를 그리는 예롱이라고 합니다. 만화속의 예롱이 저예요. 만화 속의 저를 보고 누구는 닮았다고 하고, 누구는 안 닮았다고 하는데 그것대로 좋은 것 같습니다. 닮았다는 분들은 저를 본 따서 만든 캐릭터니까 닮은 것이고, 안 닮은 건 사람들이 길에서 못 알아보게 하려고 그랬다고 하면 되거든요(웃음).


Q. 원래 만화쪽 일을 하셨었나요? 아니면 그림을 그리셨나요?

-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은 계속 그렸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일을 하면서 그림을 계속 그렸습니다. 손에서 그림을 놓지 않고 계속 그리고 있었죠. 취미로라도 계속 그렸거든요.

만화도 ‘덕질’을 많이 했어요. 일본이나 미국 만화를 가리지 않고 많이 봤어요. 그 중에서 최애작품은 <데스노트>입니다. 만화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데스노트는 일본에서만 나온 한정판까지 구해서 잘 모셔두고 있죠.

<예롱쓰의 낙서만화> 첫번째 컷

Q. <예롱쓰의 낙서만화>를 보면 선이 원래 그림을 그리시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원래는 조금 더 세밀한 소묘가 원래 제 그림체이긴 해요. 만화를 그릴 때는 조금 더 선을 간결하게 단순화시켜서 그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Q. <예롱쓰의 낙서만화>를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요?

- 주로 저희 커플에 대한 이야기와 인종차별, 성차별 등 우리 일상의 차별을 그리고 있어요. 그리고 가끔 저와 함께 사는 강아지의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하고요. 저희 커플이, 그 중에서도 만화 속의 “예롱이”가 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재하고 계십니다. 페이스북등 SNS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 별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제가 자주 쓰는 앱이라 익숙해서 골랐습니다. 사실 제가 SNS 중독자(웃음)인데, 몇 달 전에 휴대폰을 삼성의 노트 시리즈로 바꿨거든요. 처음 써보는데 들고 다니면서 그림 그리기 좋더라구요. 처음엔 페이지를 만들 생각은 없었고, 낙서하듯이 그려서 제 개인 계정에 몇 번 올렸어요. 제가 평소에 쓰는 글과 만화가 섞여서 타임라인을 정리하고 싶어 페이지를 만들어 올렸어요. 별 생각 없이 올렸는데, 올린 날부터 여러분들이 공유를 해주시고, 관심을 주셔서 좀 놀랐죠.

뿐만 아니라 한국에 계시는 외국인 분들이 메시지를 보내 응원해 주시는 걸 보면서 제가 그리는 만화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차별과 인권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죠. 그래서 목표를 잡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만화 속 "만니"는 가나에서 왔다.


Q.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만화인데,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어서 고민되는 부분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 지금 인터뷰를 하는 현실의 ‘나’라는 존재가 드러날까 걱정되긴 해요. 특히 저희 커플에게 무언가 피해가 있을까봐 걱정도 되고요. 저는 괜찮지만 남자친구는 어쨌든 외국인이기 때문에 걱정되는 부분이 있죠. 일하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무언가 피해가 갈까 고민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려보고 싶은데 더 못 그리는 소재도 있어서 아쉽네요. 여기 “부들부들”이라고 써 주셔야 돼요(웃음).


Q. 만화를 보면서 소위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우리를 한 문화권 안에 갇히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살아왔던 사람이 다른 문화를 만나면서 겪는걸 객관적으로 보시려고 노력하시는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 개인적으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의식과 문화가 크게 발전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 삶 주변에서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도시에서 보이는 외국인 분들은 여행을 오셨거나, 외곽 지역에서 일하시느라 거기서만 잠시 머물거나 하셨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보기 힘들었던 거죠. 보통은 학원, 직장에서 소수의 사람들과만 교류하던가, 미디어에서 특정 사람들만 보여주는 식이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미디어에도 다양한 분들이 등장하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분들도 연령층이 낮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이 좋아서 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이렇게 세계화가 우리 삶 깊숙하게 파고들었는데,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서로의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그렇게 해야 “나의 문화” 또한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아직 많은 부분을 차별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롱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와 먼 곳의 존재를 지워버리지는 않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차별과 혐오가 가장 넓게, 가장 심각하게 이루어지는 부분이 바로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워버린 존재를 발견해 나가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Q. 한국에서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내 안의 차별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느끼는 에피소드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에피소드를 그리면서 어떤 생각으로 그리셨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문화, 그러니까 유교문화 속 한국인으로 자랐어요. 해외에는 딱 한번 나가봤고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해외의 영화, 드라마, 노래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접했거든요. 한국에서만 살면서 콘텐츠는 다양한 것들을 접하다 보니 머리와 몸이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 같아요.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와 닿지 않는 상태가 된 거죠. 그러다가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남자친구인 만니를 만나게 되면서 그 차이가 마음으로 와 닿게 된 것 같아요. 강렬한 경험이죠. 그게 제가 느끼던 위화감이랄까? 그런 것에서 깨어나게 해 주었고, 저를 다시 발견할 수 있게 해 준 거죠.

그래서 소위 ‘이미 깨우친’ 이미지나 포지션을 가지고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실제로도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고요. 예롱이라는 ‘나’를 통해서 저와 비슷한 분들이 함께 배워 나가고,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작품 속에도 제 경험을 많이 그리고 있고요.

예를 들어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대사 중에 “아프리카에나 가라”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혼자 볼 때는 아무렇지 않게 그 대사를 들었거든요. 근데 남자친구랑 같이 보니까 너무 창피한 거죠. 그런 경험을 공개한다는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그려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던 중, 차별적인 대사가 일상처럼 등장했다.


Q. 연인으로서 두 분은 어떤 모습인가요?

- 당연히 저희도 지지고 볶고 많이 했죠. 문화적 차이도 있지만 서로의 사회적인 위치라던지, 성격 차이도 있고요. 그래서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여느 연인과 다를 게 없으니까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연인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요. 서로 고집을 부릴 때는 말도 안 통하고, 어떨 때는 싸우기도 하고요.

<낙서만화>의 “너의 문화 나의 문화”편에 가장 많이 담겼던 것 같아요. 서로 살아온 배경과 문화가 다르다 보니 아무래도 그렇죠. 이 문화의 차이라는 게 작게는 가정마다 다른 분위기가 있는 것 같은 차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집은 굉장히 엄격하고, 어떤 집은 아이의 선택을 최대한 들어주는 집도 있고. 그런 집에서 자란 사람들이 각각 다 다른 것 처럼요.


Q. 아무리 연인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이기 때문에 본인의 한계나, 닿을 수 없는 차이를 만나는 경험도 있었을 것 같아요.

- 만니와 이야기를 하면서 느끼는 건, 만니가 더 많은 다양함을 경험해서인지 어떤 것이 차별인지 더 많이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예요. 다양한 부족이 살아가는 나라에서 와서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하게 배려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많이 알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틀을 부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많아요. “무지(無知)할 수 있는”것도 결국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들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요. 그런 식으로 차별의 맥락이 다 똑같다는 걸 배웠어요. 그 점도 조금 흥미로웠습니다.


Q. 내용 면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게 느껴지는데,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그걸 스토리로 풀어낼 지가 가장 큰 고민이죠. 만화다 보니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서 무리 없이, 단순하고 재미있게 그릴지, 아니면 좀 더 정보를 담아서 딱딱하게 그릴지에 대한 고민이요. 다른 작가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게 가장 어려운 고민입니다. 또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상처받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최대한 없도록 해서 흑역사 생성(웃음)을 줄이는게 제일 목표죠.

이미 만니와 예롱이라는 캐릭터는 저희 둘이 아니라 ‘사람들’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결국 그걸 그리는 건 저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요. 이걸 보는 차별받는 당사자분들이 당신들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이죠. 또 이런 생각을 단순화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요. 만화를 읽으신 독자분들이 스스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면 생각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려야 할지,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도 고민이고요. 만화적으로는 한국어-영어가 동시에 들어가다 보니 글씨가 작아지는 부분이예요. 모바일 같은 매체에서 보기 불편할 수 있다는 건 물론, 시각적으로 불편하신 분들께는 어떻게 전달 드려야 할지도 고민이고요. 이건 최근에 그리다가 고민하게 된 부분이예요.


Q. 작품을 보면 선으로만 이루어져 채색을 하지 않으신 게 눈에 띕니다. 의도하신 부분일 것 같은데요?

- 일단은 제 만화가 인종차별, 성차별에 대한 만화를 그리고 있다 보니 어떤 인종이나 성별을 떠올렸을 때 드는 선입견이나 편견을 최소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린 캐릭터를 보면 옷이나 얼굴에서 드러나는 특징 같은 걸 잘 그리지 않고 있어요. 그 사람이 가진 특징은 살리되, 피부색이나 의복, 장신구 같이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심볼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어요.


Q. 작화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 최근에 태블릿을 하나 질렀어요. 어릴 때는 아주 작은 팬 태블릿을 선물 받아서 쓴 적이 있어요. 이제는 액정 태블릿을 사서 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웃음). 만화를 그리기 전에 만니와 주변 친구들의 인터뷰를 많이 하고 있어요.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걸 묶어서 그리기도 하고요. 내용이 많거나 복잡하면 연습장에 콘티를 그리고, 태블릿으로 선을 그리는 연습을 하고는 있어요. 하지만 보통은 바로 스토리를 수정해가면서 그리고 있습니다. 그게 편하더라고요. 정보가 많을 땐 콘티를 그려서 재확인 작업을 거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엔 두 번 그리는게 힘들더라고요(웃음). 보통은 컷 단위로 그리다 보니 바꿔야 할 부분은 바로 수정하기도 하고요.


Q. 말씀하신 것 처럼 작품에 영어 번역이 함께 들어가 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작업하시나요?

- 영어 번역은 제가 먼저 한글을 번역해서 만니에게 보내면, 만니의 번역본과 제 버전을 수정해가면서 번역합니다. 뉘앙스 차이가 있을 때는 의논을 해서 결정하는 편이예요. 번역가에게 맡기면 싫어할 수정사항이지만, 만니는 자기 이야기도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함께 만들고 싶어하는 부분도 있어요.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Q. 만니씨의 반응은 어떤가요?

- 제가 고민을 많이 하니까 되도록이면 만화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해요. 대신 잘 하고 있다고 응원을 많이 해 주는 편이예요. 만화에도 그렸는데, 같이 영화 <그린 북>을 보러 갔었거든요. 거기서 배우가 “세상을 바꾸려면 용기가 필요해”라는 대사를 하니까 만니가 그걸 보고 “들었지?”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렇게 만니만의 방식으로 저를 응원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끔 “내가 그때 이렇게 말했나?”하는 경우도 있지만(웃음). 거의 저에게 맞춰주는 편이예요. 든든하죠.


Q. 독자 분들께 한말씀 부탁 드립니다.

- 자신도 모르게 차별을 하면서도 그게 차별인 줄 모르고 당당한 사람들에게 답답해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만화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조금씩 더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이런 만화를 만들고 싶어서 작정하고 그린 게 아니고, 저는 전업 작가도 아니기 때문에 작품으로 돈을 벌면 기부하고 싶은 곳이 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만화이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께 알려지면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롱 작가는 자신의 만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충분히 결과로 만들 줄 아는 작가였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완성하는 과정에 필요한 용기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건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롱 작가와의 인터뷰는 즐거웠습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그래도 괜찮은’ 요소들을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작가의 날카로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예롱 작가의 미래가 더욱 기대됩니다.

<연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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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롱쓰의 낙서만화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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