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의 시대 ①] - 작품의 홍수, 어떻게 고르고 무엇을 볼 것인가

게임 웹진인 “디스이즈게임”에서는 한 인디게임 개발자의 실험을 영상으로 정리했다. 모바일게임 업계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한방 먹일’생각으로 슬롯머신 게임을 껍데기만 갈아 자동으로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질보다 양’을 앞세운 이 게임은 구글 트렌드를 통해 자동으로 이미지를 선택하고, 껍데기를 갈아끼운 슬롯머신 게임을 자동으로 업데이트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게임을 다운받고, 슬롯머신을 돌리기 위해 광고를 본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임은 2017년까지 약 1,500여개, 인디게임 개발자인 알렉스 슈워츠와 지바 스콧은 이런 ‘쓰레기’ 게임으로 5만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게임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4초였다. 여기까지 온 그들은 프로젝트를 중지하고 자동 게임 제작&업로드 프로그램을 유지보수하지 않고 가만히 두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도, 쓰레기 게임 제작 프로그램인 ‘구스’는 돌아가고 있다.

이들은 “완전히 개방된, 적절히 큐레이팅되지 않은 시장의 필연적인 결말을 보여준다”고 자신들의 실험을 평가했다. “사람들은 시장이 저질 게임으로 넘쳐나게 만들 다양한 방법을 찾을 것이고, 결국 소비자들은 전반적으로 저질의 경험에 노출된다”고 이야기했다. 비단 게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콘텐츠 업계가 모두 고민하고 있는 문제기도 하다.

* 쏟아지는 ‘양산형 작품’은 시장을 망친다

장르를 불문하고 쏟아지는 콘텐츠들은 개인의 측면을 넘어 빅데이터로 처리해야 하는 수준에 다다른지 오래다. 이걸 가장 잘 이용했다고 평가받는게 바로 넷플릭스와 유튜브지만, 아직까지 콘텐츠 시장에서 ‘큐레이션’은 두루뭉실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예측하긴 아주 어렵고, 적절한 콘텐츠를 제공해 돈을 내고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큐레이션이 없으면 사람들은 정제된 콘텐츠, 적절히 큐레이팅된 콘텐츠에도 돈을 내기 꺼린다. 결국 시장 전체가 저질화되는 셈이다.

웹툰 시장도 마찬가지로 ‘질보다 양’을 노리고 보다 많은 작품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산 작품들을 다량으로 들여오는 한편,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도 크게 늘렸다. 작품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당연히 어디서 본 듯한, 비슷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소위 ‘팔리는 요소’를 집약시켜 쏟아내는 작품들은 양에서 압도하고, 그 중에서 많은 노출이 된 작품이 상위로 올라오게 된다. 우리는 이런 작품을 부르는 말을 알고 있다. 바로 ‘양산형’ 작품이다. 이미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이라는 말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시기가 그리 멀지 않다.

큐레이션이 없으면 사람들은 정제된 콘텐츠에도 돈을 내기 꺼린다. 그러면서 동시에, ‘1등 콘텐츠’에 쏠림현상이 심해진다. 큐레이션이 없는 시장에서 ‘좋은 콘텐츠’를 가리는 기준은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은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다시 양이 많아야 하고, 그 중에서 줄세우기를 통한 1등 작품 가려내기가 가능해야 한다. 이것이 도전만화가-베스트도전 시스템을 구축한 네이버웹툰이나 웹툰리그에서 꾸준히 신작을 뽑는 다음웹툰이 편집자의 선택을 통한 ‘슈퍼패스’를 도입하는 한편, 대규모 공모전을 꾸준히 개최하는 이유기도 하다. 특정 이용자층이 과대표되는 베스트도전-웹툰리그 시스템만으론 지속 가능한 콘텐츠 수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큐레이션, 괜찮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리고 현재 작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네이버와 카카오페이지가 먼저 AI를 활용한 큐레이션을 도입했다. AiRS 큐레이션과 AI키토크는 아예 큐레이션이 없이 플랫폼의 의지에 따라 프로모션이 가장 큰 권한을 가지는 현행 시스템을 보완할 수는 있지만, 약점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일단 AI 기반의 큐레이션 역시 기능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용자가 보지 않으면, 그리고 구매로 이어지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 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웹툰의 시대가 되면서 1차적인 큐레이션을 담당하던 편집자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전적으로 ‘대중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시대가 열리면서 웹툰계에도 큐레이션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집중화된 큐레이션이 결국 작가들의 자유도를 낮추지 않겠느냐는 의견부터, 지금처럼 열린 시장에서 플랫폼의 역할을 확립하는게 먼저라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더군다나 웹툰은 분명한 한계도 가지고 있다.

영화처럼 영화관을 통해 1차로 필터링 된 콘텐츠, 또는 이미 제작이 끝난 드라마를 주로 서비스하고 그 데이터를 통해서 맞춤형 콘텐츠를 제작하는 OTT 플랫폼과는 다르게 플랫폼에서 가장 먼저 소비되는 콘텐츠라는 점이다. 또한 수집하는 데이터를 최대한 늘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업체는 아주 적은, 타 콘텐츠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이 들어간다는 한계가 그것이다. 때문에 큐레이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작품을 개발하고 찾아내야 할 인력이 부재하고, 그 인력들마저 ‘팔리는’ 작품을 들이는 것에 혈안이 되게 만든다.

적은 자본은 다시 큐레이션에 투자할 비용을 삭감하게 만들고, 큐레이션과 그것을 수행할 인력은 다시 미완, 또는 부재한 상태로 남는다. 결국 미흡한 큐레이션은 상위 콘텐츠로의 쏠림 현상을 만들고, 시장에 그 콘텐츠의 아류작들이 넘쳐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저질의’ 경험이 갱신되는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건실한 시장이 만들어지려면 무조건 작품을 늘리기보다 ‘어떤’ 작품을 늘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돈이 없으면 그걸 가리고 있을 시간적-인적-자원적 여유가 없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문제는 '작품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을 얼마나 키우느냐에 달렸다. '팔리는 작품'을 따라가는 아류작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도를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관건이다. 그 과정에서 늘어나는 작품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금상첨화지만, 아직 우리는 기계가 제공하는 큐레이션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과정이 전문가들도 '잘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는데 있다. 무엇이 소위 '터지는' 작품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은 IP 산업의 가장 큰 난제다. 지금까진 '맨땅에 헤딩'하는 그림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웹툰계에도 슬슬 '레퍼런스'가 쌓이고 있다. 실패한 콘텐츠, 그리고 성공한 콘텐츠들이 '쌓이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게 한다.

금요일 업데이트 예정인 "[IP의 시대 ②] - 잘 키운 씨앗이 열매를 맺는다"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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