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가 난지, 내가 김독자인지, "전지적 독자 시점"에 빠져들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 포스터

2019년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웹소설은 바로 <전지적 독자 시점>이다. 이 작품은 이른바 ‘책 빙의물’과 이른바 '성좌물' 이 대유행하는데 큰 공헌을 한 작품이기도 하다. 연재되는 동안 문피아 역사상 최초로 선호작 10만명을 넘겼고, 누적 판매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네이버 시리즈에서는 평점 9.7점, 2020년 5월 29일 기준으로 장르소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 2월 완결과 함께 상반기 웹툰화가 확정되었다는 내용이 공개되면서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5월 26일, 마침내 <전지적 독자 시점>은 네이버웹툰에서 수요일에 공개되면서 공개 사흘만에 요일순위 11위로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기대 신작들이라고 할지라도 상위권에 랭크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제작을 담당한 L7(엘세븐)은 신생 제작사로 네이버웹툰의 <아르세니아의 마법사>, <낙향문사전> 등의 제작을 담당하고, <도굴왕>, <데이지>등 카카오페이지의 작품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나 혼자만 레벨업>으로 유명한 레드아이스 스튜디오가 편집지원을 맡았다. 이 이름들에서 알 수 있듯이, <전지적 독자 시점>은 기대만큼의 퀄리티로 발표됐다.

* 1화의 단 두 컷 만으로 표현하는 압도적 몰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이 발표되기 전에는 우려들이 있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기본적으로 소설 작품이고, 웹툰으로 옮기는 과정에선 어느정도 각색을 통한 정보의 유실 등이 일어나게 된다. 웹소설과 웹툰이 가지는 정보량이 다르고, 기본적으로 읽는 속도나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거시적인 부분 외에도 대사, 문체 등 미시적인 부분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어 가독성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원작의 재미는 살리면서도 압도적인 속도감을 통해 독자들의 몰입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전독시> 1화 첫번째 컷. 내 폰인가? 싶은 화면이다.

이건 줄글로 되어있는 소설을 스크롤 방식으로 이식하는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소설을 깊게 이해하고 ‘김독자’가 살고 있는 세계를 스크롤 연출에 맞게 재구축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정도면 반칙이다’라는 농담 섞인 감탄이 나온다. 특히 1화의 첫번째 화면은 김독자가 10년간 보고 있는 웹소설의 엔딩 화면인데, 스마트폰 안에서 구동하면 마치 내 스마트폰에 해당 화면이 업로드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다음 컷은 김독자가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어…?”라고 의아해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이때 독자들은 작품 속 김독자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조작해야만 이 화면을 볼 수 있다.

스크롤을 내리면 이 화면과 만나게 된다. 작품 속 작품을 읽는 김독자의 움직임을 읽는 독자(...)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활용해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높이는 장치를 배치, 독자들이 초반부터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장치인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쿠키를 사용해 대여하거나 소장해야 하는 유료분 에피소드는 원작 소설의 에피소드명과 동일한 “유료 서비스 시작”으로, 단순한 배치 하나로 스마트폰 화면 속 작품 안에서 작품의 해석이 작품 밖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이미 소설을 읽은 독자들과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모두 ‘유료 서비스’라는 이름과 쿠키 결제가 어우러졌다. 댓글 중에도 “유료 서비스 시작은 유료로 읽어야 제 맛이지”라는 댓글이 베스트댓글에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눈 앞에서 그려지는 소설

유료분 댓글에서 독자들은 공통적으로 ‘눈 앞에서 내가 상상했던 작품 속 모습이 그려진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잘 만들어진 웹소설 원작의 웹툰, 소설 원작의 미디어믹스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 반응이야말로 웹툰을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믹스로 만들어지는 2차 콘텐츠가 가져야 할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21세기를 열어젖혔던 피터잭슨의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는 피터 잭슨 자신이 유년기부터 원작 소설의 열렬한 팬이었고, 자신이 머리 속에서 그려왔던 장면을 그대로 구현하는데 성공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원작을 재창작하는 창작자가 원작을 단순히 소재거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에 깊게 빠져 작품을 읽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2차 미디어 이식이 이뤄진 다음의 독자-시청자-청취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독시>의 댓글 중 일부. 스포일러 하지 말자는 내용이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작품을 깊게 읽은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으면서도, 작품의 박진감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간 일부 미디어믹스 사례에서 나타났던 ‘상위 매체로의 이식’이라고 여기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을 넘어,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이식된 매체, 즉 웹툰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내가 재미있게 봤던 소설이 눈 앞에서 이미지로 펼쳐지는 즐거움을 어떤 독자가 마다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독자들은 댓글에서 ‘스포 방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 작품을 읽지 않은 다른 독자들이 자신이 느꼈던 즐거움을 똑같이 느꼈으면, 하고 바라는 생각으로 베스트댓글을 ‘스포하지 말아달라’는 댓글을 이어가고 있다. 독자들이 '읽는 즐거움'을 강조하며 다른 독자들의 감상을 방해하지 말라는 내용이 댓글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 왠지 뭉클했다.

웹툰 <전지적 독자 시점>은 이제 막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 김독자가 아니라 작품 바깥의 독자의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작품을 읽는 즐거움부터, 먼저 작품을 읽은 이들이 나중에 합류하는 독자들을 배려하는 모습까지가 <전지적 독자 시점>의 독자경험을 즐거움으로 만든다. 앞으로 이어질 ‘유료 서비스’ 이후에는 또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작품 속 ‘독자’의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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