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절대 교훈 같은 건 주지 않겠다! 디비피아 대학원 웹툰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


'이것이 정말 디비피아 공식 만화인가…?!’

어느 날, 논문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비피아의 인스타그램에 이게 정말 공식 만화가 맞는지 의심되는 웹툰이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을 땐? 논문을 읽어봐!’ 같은 콘텐츠가 올라올 것 같은 디비피아 계정에 논문 쓰기 싫어서 딴짓을 하며 미루고, 자기혐오를 반복하다 울면서 몽쉘통통공부법을 시전하는 요상한 웹툰이 올라온 것입니다. 그 이름하야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 주변의 대학원생 친구들의 '좋아요'가 슬금슬금 찍히고, 대학원에 다니지도 않는데 깔깔거리면서 보게 되는 이 만화, 이걸 그리는 듀선생은 대체 뭐 하는 분일까? 어쩌다가 디비피아에서 연재를 하게 되신 걸까? 무척 궁금해진 나머지, 듀선생님을 화상 인터뷰로 만나보았습니다.

Q. 듀선생님 안녕하세요. 듀선생님과 듀선생님이 그리시는 만화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D : 안녕하세요. 북극에서 온 듀공, 듀선생이라고 합니다. 듀선생은 북극의 얼음이 다 녹아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바람에 북극대학이 폐교해서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문사철 장학 조교, 연구 보조원, (무급) 연구원, 근로 장학, 시간 강사, 학회 간사 등 박사 학위만 빼고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는 그런 저의 10년 대학원 생활을 망라한 좌충우돌 대학원생 공감 만화입니다.


인터뷰를 위해 듀선생 가면까지 손수 제작해오신 듀선생님…!


Q.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는 현재 아카루트의 홈페이지와 디비피아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연재되고 있는데요. 어떻게 연재를 하게 되신 건가요?

D : 몇 년 전에 <바람의 연구자>라는 대학원생들이 직접 만든 연구자 생활 정보지에서 4컷 만화를 연재했었는데요. <바람의 연구자>의 천재적인 편집부 선생님들이 아카루트의 천재적인 기획자분들께 ‘이 사람 만화 재밌다’고 추천을 해 주셔서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카루트는 디비피아에서 인문사회 연구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곳이에요.

연구자 생활정보지 <바람의 연구자> (출처 = 바람의 연구자 페이스북 페이지)

Q. 처음에 봤을 땐 디비피아 공식 계정에 올라오는 만화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공식 계정, 특히 논문을 다루는 학계쪽은 트렌디한 것보단 정제된 것을 선호하고 보수적일 것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디비피아 측에서는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D : ​실제로 디비피아 내부에서 논의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디비피아의 천재적인 마케터분들이 ‘요즘은 이렇게 솔직하고 대충 그린 것 같은 스타일이 인기 있다’고 열심히 추천해주신 덕분에 제가 무사히 연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간에도 또 한 번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냐?’는 반응이 있었는데 역시 천재적인 마케터 선생님들이 ‘괜찮다, 오히려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셔서 무사히 넘어갔다고 합니다.


Q. 마케터분들의 판단이 옳았던 게 실제로 9개월 만에 좋아요 수도, 팔로워 수도 많이 늘었어요. 저도 디비피아 인스타 계정이 있다는 것을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 덕분에 알게 되었고요. 혹시 듀선생님께도 이전과 달라진 게 있을까요?

D : ​살림살이가 달라진 건 명절에 한우 세트를 선물 받은 일이 생각납니다. 문 앞에 택배를 뒀다고 해서 ‘또 뭐지, 책이 왔나’ 싶어서 나가보지도 않고 방치해둘 뻔했는데, 제가 산 적 없는 한우 세트가 와 있더라고요. 강의를 오래 해도 시간 강사는 명절에 스팸은 커녕 비누 세트도 안들어오는데, 한우를 받은 건 처음이라서 깜짝 놀라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창작물을 읽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논문은 좋아요나 팔로워처럼 실시간으로 보이는 게 없고 어쩌다 가끔 인용지수 1이 올라 있거나 (하지만 대부분 그냥 0입니다) 하는 식이니까요.


고통받는 현실이어도 웃으면서 명랑하게

Q. 항상 첫 표지가 눈길을 끕니다. 피가 흘러내리는 듯한 시뻘건 글씨가 엄청 강렬해요. 어쩌다 이런 디자인이 되었나요?

D : ​그것은 저의 대학원 생활이 피와 눈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화를 그리면서 타이틀을 피처럼 하니까 너무 웃기더라고요. 디비피아에서는 이렇게 피를 질질 흘리는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겠지만, 역시 이렇게 피를 흘려줘야 보는 사람도 정신이 확 들 것 같아요. 대학원은 이런 곳이다!

피가 흘러내리는 듯한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 표지 타이틀

Q.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에는 다양한 대학원 생활이 담겨 있는데 소재는 어떻게 구성되나요?

D : ​만화에서 듀선생이 겪는 일들은 제가 경험한 것에 주변에서 겪은 것,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모두 합쳐져 있습니다. 대학원 생활을 거의 10년 했다 보니 소재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소재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경험과 몇 년 전 경험이 무작위로 섞여 있어요.


Q. 대학원생은 항상 고통받는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보통 대학원생 소재의 콘텐츠는 굉장히 자조적이거나 현실을 고발하는 묵직한 분위기가 이 두 가지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듀선생의 인생제반소>는 이 둘 다에서 비껴간 느낌이에요. 웃기긴 하지만 자학이 주가 되진 않고, 또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대학원생의 현실을 담고 있기도 하죠.

D : ​사실 대학원 얘기는 깊게 들어가면 정말 한없이 어두운 이야기가 될 수 있잖아요. 제 만화는 고통받는 현실에 대한 묘사가 들어가지만 따뜻하게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녕 자두야>나 <아기공룡 둘리> 같은 명랑만화 느낌으로요. 둘리나 자두가 맨날 사고 치고 구박받아도 ‘명랑’하잖아요. 그렇게 사고를 쳐도 꿋꿋하게 살고요. 그러면서도 당시 사회적인 모순점도 자연스럽게 녹아있고요. 그런 만화로 읽히면 좋겠습니다.


Q. 사실 이전에 하셨던 <바람의 연구자>도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와 결이 좀 비슷한 것 같아요.

D : ​맞아요. 제가 <바람의 연구자>에 4컷 만화를 연재했을 때, 편집부에서 매체 컨셉에 대해서 “<바람의 연구자>는 ‘연구자 생활정보지’니까 너무 어렵고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설명해주셨거든요. 예를 들면 <연구자의 현장>같은 거창한 것보다는 <연구자의 밥상>같은 주제로 오늘 라면 몇 개 먹었는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또 너무 슬픈 이야기도 하지 말자, 안 그래도 슬픈 우리 인생인데 여기에서만큼은 다정한 이야기를 하자.”라고 하셨는데, 그때의 ‘다정함’이 지금의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까지 이어져온 것 같아요.


Q. <바람의 연구자>를 찾아보니 그 시절부터 이미 제목도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였고 듀선생 캐릭터 디자인도 정립되어 있었더라고요. 그 때부터 쭉 듀선생 만화를 그리실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건가요?

D : ​듀선생 컨셉은 거의 한 10년은 된 것 같아요. 제가 이것저것 만화를 많이 보다 보니까 힘든 일이 있으면 그걸 만화로 상상하며 버티곤 했어요. 욕을 바가지로 먹고 집에 가는 길에 ‘내가 아까 욕먹은 게 뿅망치로 뿅!하고 두드려 맞는 장면이었으면 웃겼겠지?’하고 상상하는 거예요. 그럼 기분이 좀 낫더라고요. 또 동거인도 오타쿠여서 그런 역할극을 같이 받아주면서 놀다 보니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머릿속으로도 이게 만화라면 어떨까 상상을 하고, 집에서도 역할극을 하다 보니까 만화를 그려보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긴 했지만 그냥 공부하기 싫을 때 옆에 낙서하는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주변에서도 ‘듀선생이 또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짓을 하네!’ 하고 웃어넘기고 그랬는데, 제가 돈 받고 정식으로 만화를 그리게 될 줄은 저도 몰랐네요.

<바람의 연구자> 시절의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


Q. 만화 전반적으로 본인이 대학원에서 겪은 아주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묘사하기보다는 대학원생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다루는 것 같아요.

D : ​맞아요. 이유가 3가지 정도 있는데요. 첫 번째는 너무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그리면 주변 사람이 ‘이거 내 얘기 아냐?’하고 기분 나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피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기존의 대학원 콘텐츠가 주로 이공계 쪽이다 보니, 문사철 등의 인문계 쪽에서 전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문계 연구자들이 많이 겪는 일들을 주로 다루고 있어요.

세 번째로는 저의 디테일한 경험을 넣으면 너무 엽기 실화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대학원생들이 대학원에 가서 페인트칠을 하거나 지도교수 앞에서 잠을 자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공감하기 힘든 것들은 좀 빼고 남들이 겪어봤을 만한 것들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Q. 만화에 다사다난한 내용이 나오지만 교수님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생각보다 적은 것 같아요. 사실 대학원생이 고통받는 주원인은 교수와의 갈등이잖아요.

D : ​그렇죠. 주원인이죠. 그런데 제가 너무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피하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세상에는 이미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제 만화는 되도록 대학원생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습니다.


Q. 주변인들은 듀선생님이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를 연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나요? 알고 있다면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D : ​제가 예전부터 낙서 같은 것을 그리기도 했고 <바람의 연구자>에 연재도 했었으니까 알던 사람들은 알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우리 듀선생이 듀선생다운 일을 하고 있군’ 같은 반응인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 편은 좀 재미없는 것 같은데요…” 하고 의기소침해하면 “아니야! 이번 편도 엄청 재미있어! 역시 듀선생이다!" 라고 응원해주십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뭐든 좀 써보라고 해도 일 년에 하나 겨우 나올동 말동 하더니 매주 뭔가 쭉쭉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흐뭇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네이버에도 올리고 UN 홍보대사도 해라! 충분히 할 수 있다!”라고 해요. “아니, 네이버는 엄청 잘나가는 작가들이 그리는 곳이야! 그리고 UN?! 국제기구? 거기에 왜?!” 라고 하지만 듣지 않네요. 곧 UN에서 저를 홍보 대사로 임명할 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작업은 아이패드로, 최애 에피소드는 '들썩들썩 엉덩이' 편

Q.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면서 웹툰 연재를 하는 게 부담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작업 시간이나 작업 루틴은 어떤지 궁금해요.

D : ​현재는 박사 논문은 자료 수집을 하면서 소논문을 쓰는 단계라 웹툰 연재가 엄청 크게 부담되진 않아요. 본격적으로 집필하게 되면 힘들겠죠? 또 매주 무언가 꼬박꼬박 생산해보는 것이 처음이라 이게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기 중에는 코로나 때문에 줌으로 강의를 하고, 틈틈이 논문 번역이나 인터뷰 등의 일들을 병행합니다. 강사는 방학에는 수입이 0에 가까워서 학기 중에 다람쥐같이 돈을 모아 놔야 방학 중에 쪼개 쓰며 굶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거든요.


Q. 작업 도구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D : ​강사법이 도입되면 정리해고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잘리면 뭐 먹고 살지’하고 고민하면서 만화를 그리면 어떨까 하며 아이패드 프로를 장만했습니다. 다행히 잘리지 않았기 때문에 만화 이야기는 흐지부지되면서 아이패드는 라면받침으로 썼는데, 아카루트 덕분에 묵혀두었던 아이패드도 꺼내고 인스타툰도 처음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업은 아이패드 프로에 프로크리에이터 앱을 깔아서 하고 있는데, 저에게는 과분한 고급도구가 아닌가 싶긴 합니다. 저는 정말 책 귀퉁이, 이론서 귀퉁이, 발제문 뒷면에 낙서하다가 만화 연재를 하게 된 것이라 그림 그리는 툴은 전혀 쓸 줄 몰랐어요. 그래서 레이어라는 개념을 몰라서, 그냥 네모난 화면을 하나 열어서 그림도 다 그리고 색칠도 다 하고, 수정 요청이 오면 지우개로 다 지우고 또 그리고 이런 식으로 했어요.

만화의 모든 텍스트를 폰트가 아닌 손글씨로 쓰는 것도 프로크리에이터에서 텍스트 입력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글 말고 쓸 줄 아는 프로그램이 없어서요.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냥 되는대로 작업중입니다.


Q. 작업했던 에피소드중 기억에 남거나 특별히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D : ​<들썩들썩 엉덩이>편을 좋아합니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걸 불꽃같은 개소리로 잘 승화시킨 것 같아 뿌듯합니다.

엉덩이를 붙여놓긴 하는데 자꾸만 책상이 아닌 다른 곳에 붙어있는 엉덩이...


Q. 그 편에서 엉덩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 농성장에 가서 앉아있게 된 게 너무 웃겼는데 농성장은 어쩌다가 가게 되신 건가요?

D : ​연구를 하다 보면 멋진 말들을 많이 쓰게 되잖아요. 주체성의 발현이며, 새로운 우리의 자리를 발명하고, 가진 자와 빈자의 몫의 나눔이 어쩌고저쩌고... 이런 거 잔뜩 쓰고 방구석에 누워있는데 페이스북에 농성장에 사람이 없어서 큰일 났단 글이 올라온 거예요. 그걸 보니 제 안의 게니우스가 ‘니 논문에는 멋있는 말 엄청 쓰더니 저 사람들 고생하는데 니는 방구석에 누워있고 니가 사람이냐!’ 이러는 거죠. 난 너무 누워있고 싶고 내일 발제도 해야 되는데 내가 거기 간다고 뭐 달라지나... 싶다가도, 내가 뱉은 말을 주워 담기 위해 결국 가게 되었습니다.

저를 연구도 활동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실까봐 좀 부끄러운데 저도 현장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에요. <들썩들썩 엉덩이>편에서 사다리를 타고 벽을 넘었던 것도 꽤 오래 전 일이고요. 저도 게니우스가 ‘사람이 좀 누워있을 수도 있지’하고 속삭이면 ‘그래 누워있자!’라고 적극 찬성하며 누워있기도 해요. 저는 꼭 앉아야 할 때가 아니면 대부분 누워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 번은 오랜만에 그 벽 근처에 다시 갈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사다리로 넘을 수 없게 벽을 엄청 높였더라구요. 지나간 추억으로 남은 <들썩들썩 엉덩이>편이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을 미루고 딴짓을 하게 되는 것은 다 게니우스 때문입니다…


Q. 만화에도 각종 만화 패러디나 덕질의 흔적이 나오는데 오타쿠를 주제로 연구도 하셨다면서요.

에반게리온을 비롯한 나루토, 이누야사, 유라가면 등 각종 만화 패러디가 가득하다.

듀선생님 방의 나우시카 포스터와 피규어는 진짜였습니다…! 듀선생님이 직접 보여주심

D : ​네 맞아요. 논문에서 애니메이션 텍스트를 분석한 적도 있었고, ‘오타쿠와 연애’를 주제로 글을 쓴 적도 있었습니다. 기획하신 분께서 청탁을 주시면서 “듀선생님이 오타쿠니까 오타쿠와 연애로 써보시면 어떨까요?”라고 하셔서, 앗 내가 오타쿠라고 그렇게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한가 하고 잠시 반성했습니다. 그 글을 쓴 당시에는 요즘 청년들이 자폐적이고 오타쿠화 되어가고 있다는 담론이 대두되던 때라 ‘오타쿠가 뭐가 나빠!’ ‘오히려 새로운 주체성, 바로 뉴타입이다!’하는 논조로 글을 썼습니다.


절대 교훈 같은 건 주지 않겠다

Q. 만화에 그리셨듯 대학원에서 각종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으셨는데 그래도 대학원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D : ​저도 번아웃이 와서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연구도 제대로 안 하면서 대학원에 남아 있으면 다른 연구자들에게 민폐’라는 말도 들었지만, 대학원을 나가도 다른 무언가를 할 자신이 없었어요. ‘지방대 고학력 비정규직 문사철 여성’이 처음부터 어떻게 다시 스펙을 만들어 가야 할지 고민이 컸거든요. 그 상태로 마치 마감을 미루듯이 ‘나 어떡하지…’ 하다 보니 시간이 계속 가서 버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를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만화 연재는 연구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아직 연구를 통해 해명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오타쿠가 되어간다고 해도 그게 어떤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변화라고 해명을 하고 싶었던 것처럼, 노동이 어떻게 지역에서의 삶을 구조화시키는지 해명을 하고 싶습니다. 한 때는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지금은 다시 그럼에도 내가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좀 더 주변에 민폐를 끼치더라도 대학원에 찰거머리처럼 붙어있고 싶은 마음입니다.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에 나온 듀선생이 대학원을 간 이유


Q.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 외에 다른 작품을 하실 생각도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D : ​제가 한 치 앞의 미래도 계획하지 않고 살아온 인생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디비피아에서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를 연재하는 것 외의 계획은 없습니다. 사실 지금도 매주 꼬박꼬박 새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허덕이고 급급히 쳐내고 있는 실정이라 욕심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물론 고료를 주는 연재 제의라면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D : ​어떤 선생님이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를 보시고 ‘듀선생님은 “그래도 오늘도 열심히 연구를 하자!”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맞습니다. 제 모토는 ‘절대 교훈을 주지 않겠다’입니다. 진지한 연구자로 여겨지지 않더라도, 게재불가가 되더라도, 논문보다 만화를 더 많이 그리게 되더라도, 박사학위 논문을 못쓰더라도, 꾸벅꾸벅 졸고 낙서만 하는 연구자라도, 그래도 연구자로 버티고 살아보자! 이런 거니까요. 앞으로도 열심히 교훈 주지 않는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를 그리도록 하겠습니다.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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