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우오토 작가 내한 인터뷰
최근 애니메이션화가 된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라는 작품, 다들 아시죠? 서울시와 서울경제진흥원이 주관하는 글로벌 창작위크가 11월 1일부터 2일까지, 명동 재미로와 서울예술대학 일대에서 펼쳐집니다. 그 행사에 우오토 작가가 방문하는데요. 우오토 작가는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이야기의 힘, 나의 이야기”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엽니다. 우오토 작가의 강연에 앞서 서울웹툰인사이트에서 먼저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오토 작가와의 일문일답을 공개합니다.
*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에 대해
Q.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이하 <지.>)는 넓은 테마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인데요, 종교와 과학에 이르기까지 넓은 테마를 다루시면서 집중하신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요?
우오토: 종교와 과학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도 관계가 있어요. 종교와 과학은 동시에 성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에서도, 과학에서도 ‘의문을 품지 않는 것’은 폭력이예요. <지>에서는 종교와 과학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그걸 통해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게끔 하고 싶었어요. 사회적 통념으로는 종교가 ‘낡았다’거나 ‘무섭다’고 느껴질수도 있는데요, 작품 속에서 그걸 깨고 종교의 긍정적인 면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Q. <지.>에서는 인물로서의 주인공이 없다고 느껴져요. 작가님이 생각하신 <지.>의 주인공은 어떤 것일까요?
우오토: <지.>에서는 호기심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자체가 거대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하기도 하죠. 그건 어떤 한 명에 의해 세상이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여러 존재가 여러 곳에서 동시에 세상을 바꿔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협력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인류의 발전을 일으켰다고 믿기 때문에 한 인물이 주인공이라기보단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호기심’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Q. <지.> 1부와 최종장의 라파우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처럼 여겨질 만큼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라파우로 시작해서 라파우로 끝나는 작품, 독자가 발견하게 되는 변화, 하지만 주인공은 아닌 사람이잖아요.
우오토: 인간에게 호기심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라파우는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그 거짓말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변하죠. 인간의 호기심은 내재되어 있지만, 그 호기심은 어떤 사건을 만나 발현됩니다. 그렇게 신념이 증명을 위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그 변화를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같은 사람이 다른 여러 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1부에서는 자기 희생이 들어가 감동을 주는 드라마틱한 면이 부각되었다면, 최종장에서는 같은 사람임에도 나쁘게 보이는 건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렇기 때문이죠. 거기서 오는 '기묘한 리얼리티'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한 면만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1부의 라파우는 호기심 때문에 신념에 대해 의심하고, 반대로 신념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었죠. 라파우는 호기심 덕에 변화한 신념을 택하고 마지막에 자살을 택했습니다. 같은 캐릭터지만 1부와 최종장의 라파우가 다르게 보이는 건, 최종장에서 ‘지성’을 추구하는 것이 위험할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예요. 그런 면에서 라파우와 라파우를 대결시켜서 독자들에게 이 지점을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었죠.
* 우오토와 만화
Q. 작가님께서 만화가로 데뷔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오토: 저는 네살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열 살 무렵 <바쿠만>을 보면서 ‘이렇게 하면 만화가가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고, 열 세살 때부터 잡지에 투고했고, 열 아홉에 단편 <가작>으로 데뷔했습니다. 첫 장편은 <100M>라는 육상을 소재로 한 청춘물이었습니다.
Q.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만화’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작가님의 작품에 영향을 준 만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우오토: 작가에겐 하고 싶은, 전달하고 싶은 것을 쉽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괜히 작품을 알기 쉽게 만든다는 핑계로, ‘이런 걸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라고 짐작해서 본인이 생각하고 있지 않은 걸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작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밀고 나가는 만화가 좋은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작가가 갖춰야 할 ‘태도’라기 보단, ‘강도’, 또는 ‘강함’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런 강함을 가진 작가가 만든 만화가 좋은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영향을 준 만화는 <도박묵시록 카이지>, <기생수>, <사채꾼 우시지마>, <데스노트>, <핑퐁>과 같은 작품들이예요. 이 작가님들의 공통점은 내가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또박또박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작품이라는 점이죠. 때론 차갑고 냉정하다고, 가혹하다고 여길 수 있는 요소도 있지만, 독자들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존경하는 작가님들이예요. 대중성을 쫓기보다, 작품성을 추구하는게 작가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작품 속에 고문 장면 등 잔인한 묘사가 많은 건 의도된 것일까요?
우오토: 물론 이런 잔인한 장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물론 성장 과정에서 제가 작품을 보면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준 충격도 분명 영향이 있었겠죠. 그런데 <지.>에서는 고문을 하는 이단심문관 노바크가 고문하는 대상을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 이단이나 악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거라 더 잔인하게 그려야 했어요. 말하자면 노바크는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죠. 그래서 그 고문 장면을 넣었어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끔찍한 일이 인간을 어디까지 타락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잔인한 장면을 봤을 때 "위험한 걸 봐버렸다"는 느낌, 그리고 그래서 오는 소름돋는, 몸이 얼어붙는 감각이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답으로 어떤 '진실'을 봐버렸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지점에서 오는 감각이 제 취향에 가까워요. 그런 '차가움'에서 오히려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차가운 표현이 있어서 인류애와 같은 따뜻함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Q. 작가 지망생 중에는 한 컷의 그림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느라 전체 이야기를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지망생들에게 작가님께서 응원이나 조언을 해 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우오토: 작가 본인이 ‘완성도’를 추구하기 때문에 타협이 안 되는 경우가 있지만, 오히려 ‘알맞게(適当(てきとう)) 하는 것’이 작품을 만들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알맞게’라는 게 요령을 피우면서 하는 것은 아니고,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타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작이라고 말하는 작품들에도 구멍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작가가 그 구멍에 빠져들어서 메우려고 하면 이야기가 논문이 되기 쉽죠. 그 구멍이 있음에도 사랑받는데는 이유가 있잖아요. 그 사랑받는 이야기와 자신의 취향, 그리고 독자들의 반응 사이에서 ‘알맞은’ 타협점을 찾는 것이 프로의 태도죠.
그리고, 저는 일본의 만화가로서 웹툰은 출판만화와 소설과 영화만큼이나 다른 언어를 가진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웹툰에 1:1로 적용될수는 없겠지만, 이야기의 본질로서는 통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의 리듬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어떤 장면에서는 집착적으로 세밀하게, 어떤 장면에서는 힘을 빼면서 리듬을 만들어서 독자들이 힘을 빼고 그린 그림으로 보이더라도 독자들이 ‘의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출판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칸 나누기’를 통한 연출인데요, 이걸 잘 하면 스토리나 그림이 부족하더라도 독자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거든요. 물론 이건 웹툰과 비교하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웹툰에서는 직접 적용되긴 어렵지만, 이야기의 리듬이라는 측면에서 더 고민해본다면 앞으로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우오토 작가와의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됐습니다. 만화에 대한 열정과 달변으로 즐거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힘에 대해서, 강연 소식으로 또 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오토 작가님의 첫 한국 방문에 대한 소감을 전해드리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Q. 한국에 방문한 계기와 소감
우오토: 한국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공항에 내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만나게 되어 아직 소감이랄 건 없지만(웃음), 거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도쿄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편의점에서 진열된 상품이나 그런 디테일한 부분에서 완전히 달라서 한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