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열린 인공지능 정상회의에선 상상해보지 못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2월 6일부터 11일, 파리에서는 'AI행동 정상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에는 60개국 이상의 정상과 시민단체, AI 전문가를 포함한 약 3,800여명이 모여 발제와 토론, 그리고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AI 선언문' 협약을 제안했습니다. AI분야 석학들의 강연, 각국 정상들의 기조발언 등 인공지능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간 정상회의를 간단하게 살펴보죠.

* 미국-영국 vs 나머지 국가들 : AI패권 경쟁 심화

자, 지금 AI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건 단연 미국입니다. 오픈AI, 앤트로픽, 미드저니 등 그저 이름을 들어 본 인공지능이라면 대부분 미국산이죠. 이런 상황에서 유럽을 비롯한 후발주자들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먼저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기 전에 제도적 뒷받침을 만들자는 이야기죠. 즉, 시간을 벌자는 이야깁니다.

당연히 미국의 입장은 다릅니다. 미국의 입장은 지금 미국이 잡은 패권이 흔들릴 수 있는 그 어떤 브레이크도 잡기 싫다는 건데요. 이 두 입장이 부딪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AI 선언문' 서명에 총 60여개국이 참여하기로 되어있었죠. 보통 이런 수준의 '정상회의'라면 사전에 실무단에서 조율이 되고, 대표단은 발표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미국과 영국은 이 정상회의에 참석해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정상회의에서 논의된 의제로는 1) 공익을 위한 AI, 2) 노동의 미래, 3) 혁신과 문화, 4) 신뢰, 5) 글로벌 AI 거버넌스 등 5개 의제가 핵심으로 논의되었는데, 이 결과로 도출된 선언문에 미국과 영국은 참여를 거부한 겁니다. AI 패권을 놓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와, 미국의 우방국이자 같은 언어권인 영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사례죠.

재미있는 건, 이 선언문에 중국과 인도는 참여했다는 겁니다. 2024년 12월 공개된 딥시크 충격이 한창이던 때 개최된 정상회의인데도 불구하고 중국, 그리고 인구 규모가 큰 IT강국 인도가 참여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미국 주도의 시장에서 차세대 패권을 잡겠다는 의지가 엿보이죠. 앞으로 인공지능 주도권을 둘러싼 패권 경쟁은 더욱 심화 될 겁니다.

* 확률적으로 움직이는 오리 실험과 인공지능

이런 거시적인 측면도 재밌었지만, 석학들의 강연 역시 의미있었습니다. 인공지능 분야의 석학 마이클 어윈 조던(Michael Irwin Jordan)은 강연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인류 역사상 단일 기술에 이렇게 많은 과장과 히스테릭한 공포가 서렸던 적은 없었다"며 "현재 우리의 인공지능에 대한 인사이트는 1950년대 이전에 개발된 인간 모방형 AI에 머물러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인공지능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파리 AI행동 정상회의에서 강의중인 마이클 어윈 조던 박사(출처=EU)
마이클 조던 박사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LLM(Large Language Model, 거대언어모델)은 마치 인간처럼 반응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인간이 쌓아 온 집합적 지식의 모음이다"라며 "단일 지능이 아니라 집합 지능(Collective Entity, 집합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정의했습니다.

서로 다른 집합적 지식의 모음에서 들어온 질문에 대해 올바른 추론을 내리기 위한 과정이 현재 LLM이라는 설명으로, 마이클 조던 박사는 "불확실성, 유인(인센티브), 집단 행동에 대한 논의가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라고 전하면서 "미시경제학적 사고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확률적으로 행동하는 오리 실험'을 소개했는데, 호수에 있는 오리들의 동쪽에 2/3확률로 먹이를 두고, 서쪽에 1/3확률로 먹이를 두는 행동을 반복해 오리가 이를 학습시킵니다. 보통은 먹이가 있을 확률이 높은 동쪽으로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리들은 2/3이 동쪽에, 1/3이 서쪽에 이동해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움직인다는 겁니다. 개별 오리에게는 불확실한 선택일 수 있지만, 이렇게 행동하면 전체적으로 균등하게 먹이를 배분할 수 있다는 것도 같이 '학습' 한다는 거죠. 단일체라면 동쪽에 갔다가 서쪽으로 가는 것이 기대값을 가장 높일 수 있는 방법이지만, 집합체에겐 전체를 분산시키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마이클 조던 박사는 이 점에 착안해 LLM 역시 불확실성(먹이가 어디에 있을지 모름)을 기반으로 시장 매커니즘을 통해 최적화되는 유인 설계(확률상 높은 곳이 아니라 흩어지는 것이 전체에 유리하다)를 통해 조정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단계의 인공지능을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인간처럼 사고하는 일반인공지능)과는 거리가 먼 집합체로 이해해야 제대로 발전시키고 쓸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 의도와 목적이 있는 상호작용이 LLM의 미래다


그걸 위해서 단순히 데이터 교환이 아니라, 의도와 목적이 있는 상호작용이 LLM을 발전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신인 작가가 이전에는 플랫폼을 통해 독자와 연결되는 2자 시장이었다면, 이제는 여타 브랜드 등과 연결되는 3자 연결시장이 구축되었다는 겁니다.

웹툰으로 예를 들면 물음표가 먼저 생기지만, 음악 분야에서는 이미 현실이 됐습니다. 먼저 2자 시장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밴드인 웨이브 투 어스(Wave to Earth)는 유럽에서 투어를 준비중인데, 이 밴드는 스포티파이에서 인공지능 분석과 추천 과정을 통해 청취자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었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바이럴된 바밍타이거 역시 마찬가지죠.

3자 시장은 한동안 밈으로 핫했던 칠가이를 예로 들 수 있겠는데, 3년만에 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알고리즘을 타고 퍼날라지면서 케이스티파이 등과 협업해 다시 상품을 만들어 독자에게 판매하거나, NBA가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 때 적절한 젊은 아티스트의 곡을 사용해 독자에게 추천되거나 하는 등의 과정입니다.

이전에는 이 과정이 수익화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 과정 자체가 수익화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미시경제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마이클 조던 박사의 강연 핵심입니다. 즉, 아마추어 시장이 수익화되고 있고, 거기에 집합체인 LLM이 사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모두가 보는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이 최대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인공지능을 통해 확률적으로 선택받을 가능성이 있는 콘텐츠를 분석하고 그것을 수요가 나올 확률이 있는 곳과 연결시켜 모두가 만족할만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거죠. 이전까지는 플랫폼의 중개를 받아야만 수익화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노출 자체를 수익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나오고 있으니 유인책도 마련되고 있다고 본 겁니다.

웹툰에서 이런 현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다름아닌 인스타툰입니다. 플랫폼에서 독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알고리즘을 통해 브랜드에게 소개되고 브랜드가 다시 자신의 수요층에게 독자와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는 거죠. 이 과정에서 LLM에 주목하지 않고 있던 시장 설계, 그리고 유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마이클 조던 박사의 강연의 또 다른 핵심은 LLM은 AGI가 아닌, 집합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조던 박사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LLM은 AGI가 아니라, 인간이 포함된 새로운 형태의 공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컴퓨터 과학, 통계학, 경제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공학을 발전시킬 때 LLM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거죠.


파리에서 열린 인공지능 정상회의는 꽤나 의미깊은 행사였습니다. 인공지능 패권 경쟁 구도를 볼 수 있는 실시간 장이기도 했고, 한편으론 강연들에서 LLM을 기반으로 한 현재의 인공지능이 나아가야 할 길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기조강연에서도 'LLM' 기반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AGI와는 다르다는 점이 기조강연이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지브리풍으로 그려줘'라는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인공지능의 본 목적이 아니라, 집합지능으로서 역할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말이 아직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미 우리 현실 가까이에 온 것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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