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쿠키만 사야할까? - SWI PREMIUM

왜 우리는 쿠키만 사야할까?

먼저 게임 이야기를 잠깐 해 보죠. 일본의 게임개발사 LEVEL-5와 넷마블이 협업하고, 지브리풍 캐릭터 디자인과 카툰렌더링 그래픽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던 게임이 있습니다. 다들 ‘지브리니지’가 아닐까 했지만, 막상 플레이 경험은 리니지와는 조금 달랐던 게임. 바로 <제2의 나라>입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게임 이야기를 꺼냈냐구요? 바로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BM) 이야기입니다.

먼저 제2의 나라를 플레이해보지 않은 분들께 먼저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게임 속에서 일종의 메타버스에 접속한 주인공(플레이어)이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며 ‘카오스’를 무찔러 위기에서 ‘제2의 나라’를 구해내는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는 됐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 한번 보죠. 먼저 업적에 따라 자동으로 달라붙는 ‘기간제 패키지’가 있습니다. 처음 스테이지를 돌파하거나 레벨을 올리거나, 새로운 보스를 잡고 퀘스트를 깨면, 심지어는 가챠로 새로운 아이템이나 펫(이마젠)을 얻어 강화를 해도 초반에는 거의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패키지가 나옵니다.

게이머 입장에선 악랄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에디터는 캐릭터 레벨 58을 찍고, 수없이 많은 과금 유도를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집요하게 ‘이래도 안 질러?’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게임을 보면서, 플랫폼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플랫폼은 구독자에게 ‘불쾌하지 않게’ 돈을 쓰고, 그에 맞는 효용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라는 것을요.

웹툰의 BM은 어떨까

지금까지 독자와 직접 연결되는 웹툰의 비즈니스 모델은 ‘쿠키/코인 구매’가 지배적입니다. 최근에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웹툰과 피너툰 등에서 런칭한 ‘자동결제’ 역시 쿠키와 코인 등의 재화 구매를 편리하게 하기 위한 기능이죠. ‘기다리면 무료’ 역시 기다리기 싫으면 재화를 구매해 해제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많은 게임들에서 ‘첫 구매 2배’ 이벤트를 진행했지만, 최근에 나오는 게임들은 이렇게 구매하는 재화들에 보너스를 주지 않는 경우도 있죠. 대표적인 것이 제2의 나라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재화 구매 자체는 재화를 통해 무언가를 구매하거나 뽑거나(가챠) 등의 목적을 위해 필요한 재화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2의 나라처럼 패키지를 세분화해 판매하는 것이 피로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재화 구매로 미리보기, 다시보기 등을 열어 보는 ‘재화 구매’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웹툰은 정해진 작품을 정해진 가격에 보는 것이고, 게임처럼 ‘좋은 아이템을 뽑을 수 있다’는 기대값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어차피 기다리면 무료가 되니 ‘지금 당장’ 작품을 보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우리는 매일 밤 10시~11시면 마치 던전을 돌 듯 옮겨 다니며 작품을 봅니다.

이것이 네이버웹툰의 방식입니다. 대규모 트래픽을 유지하고, 작품을 보는 독자들에게 ‘미리 보고 싶으면 보라’는 선택지를 주고, 굳이 그 선택을 하지 않아도 다른 작품들을 돌며 트래픽을 유지하는 것. 같은 시각에 플랫폼에 동시에 공개되는 작품들을 탐독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만약 흐름을 놓쳤다면 정주행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네이버웹툰의 방식은 매출을 신장시키기 어렵습니다. 어차피 다음 주에 원래 연재되는 것과 똑같이 연재될 거거든요. 네이버웹툰에서 쿠키를 질러도 5화 내외를 보고 그 다음엔 볼 게 없습니다. 내가 구매한 작품과 비슷한, 또는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을 보는데는 에너지가 들죠. 완결작이 기다리면 무료 방식으로 풀리긴 하지만, ‘지금’, ‘당장’ 연재되는 작품에 쏠린 트래픽에 비하면 낮은 관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네이버웹툰’은 국내에선 당장의 매출보단 트래픽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카카오페이지는 조금 다릅니다. 한번에 수십화를 쌓아놓고 기다리면 무료로 제공하니 누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고, 누구는 막대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상대적으로 뒤쳐진다는 기분이 들죠. 여기에 댓글도 네이버웹툰에선 회차별로 되어 있지만, 카카오페이지는 작품은 못 봐도 댓글은 볼 수 있습니다. 게이머들이 ‘꼽다’고 부르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꼬우면? 질러야죠. 여기에 오리지널 작품도 1,700작품이 넘습니다. 내가 지금 못 본 작품을 남들은 보고 댓글을 달고 있으면, 당연히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죠. 그 욕망을 자극하는게 카카오페이지의 방식입니다.

‘돈 내고 볼 것이 얼마나 많은가’에서는 카카오페이지가 앞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도 네이버웹툰은 2019년 국내 매출액이 1,610억원, 같은 기간 카카오페이지는 2,480억원의 매출을 나타낸 바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만화를 ‘파는’, 즉 플랫폼 안에서 만화로 돈을 쓰게 하는데는 카카오페이지가 한수 위라는 얘깁니다.

BM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대표적인 플랫폼의 방식이 서로 다르다면, 플랫폼이 독자에게 ‘불쾌감 없이’ 과금을 유도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상상력이 동원될 수 있습니다. 저는 플랫폼 관계자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이니, 한번 여러가지 상상을 해보도록 하죠. 이건 어떤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철저하게 비즈니스 모델만 놓고 상상해본 결과입니다.

첫번째 상상으로는 멀티 엔딩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로맨스 작품에서 내가 미는 서브 주인공과 원래대로라면 절대 이어지지 않겠지만, 내가 원하는 트랙을 따라 열어보면 그 서브 주인공과 이어지는 엔딩을 맞는 걸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스튜디오에서 자체 제작하는 작품이라면 이런 멀티엔딩을 실험해볼 수 있겠죠. 마치 멀티버스처럼 다른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로 여러 개의 엔딩을 구성하는 것도, 원하는 결말을 따라서 읽어보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두번째 상상은 유료 버전과 무료 버전의 차이입니다. 야마카와 나오키의 <나는 100만명의 목숨 위에 서 있다>는 유료 버전과 무료 버전이 달라서 이슈가 됐던 작품입니다. 왼쪽과 오른쪽이 실제로 공개된 무료, 유료판입니다. 당시에는 ‘재밌다!’로 이슈가 됐고, 작품도 꽤나 흥행해서 애니메이션도 나왔습니다. 이런 식의 무료-유료 구분 말고, 분량을 통한 유료-무료 구분이 있을 겁니다. 이야기를 이해하는덴 문제가 없지만, 숨은 떡밥이나 자잘한 에피소드, 액션 씬 같은 것들이 유료 버전에만 있고 무료 버전에선 공개되지 않는 식의 상상이 가능합니다. ‘같은 작품’을 보지만, ‘같은 장면’을 보는 건 아닌 거죠.

세번째 상상은 ‘작가 구독’ 입니다. 사실 위 두가지 상상은 제작사나 스튜디오 체제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입니다. ‘무료 버전’과 ‘유료 버전’을 편집하고 제작하는데 추가 소요가 들어가니까요. 다만, 작가 구독은 팬덤 기반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보다 큰 가능성이 열립니다. 예를 들어 신작 런칭때 한시적으로 할인된 가격으로 미리보기를 ‘미리’ 구매해 놓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선 투자 개념으로 초반 몇회차를 보고 ‘여기에 뼈를 묻겠다’는 독자들이 작가를 미리 구독해놓는 방식입니다. 또, 기성 작가들 같은 경우에는 가격을 조금 올리고, 해당 플랫폼에서 연재중인 전작 등을 포함한 패키지를 내놓을수도 있습니다.

프로모션이 단순히 노출 빈도를 조정하는게 아니라, 신작에 실질적인 구독효과까지 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한정판 구독 특전으로 독자에게 무언가를 제공할수도 있을 것이고, 그걸 통해서 작가와 독자들이 조금 더 끈끈하게 관계를 맺을 수도 있을 겁니다. 개인 작가에게 우선적으로 이런 방식이 사용된다면, 지금 나오고 있는 스튜디오 제작체제에 쏠려있다는 비판을 (충분한 팬덤이 모인다는 가정하에) 완화할 수 있는 장치가 될수도 있습니다.

현실적 문제 : 도서정가제와 큐레이션

이런 상상은 꽤 재밌습니다. 특히 장기 연재작의 경우 한번 보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마음의 소리> 같은 경우 한번 정주행을 하려면 대략 20만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말이 20만원이지, 그렇다고 해도 소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행본으로 11권을 사도 10만원이 채 안 되는데, 3일 대여권으로만 20만원을 내야 하니 마음먹기부터 어렵죠. 이때 ‘완결작 기간 패스’가 있다면? 가격을 보고 안 보려던 사람도 구매를 고민해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런 생각을 플랫폼은 안 했을까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에디터가 들여다보는 건 겉 표면일 뿐이고, 그 여러 곳의 표면들을 들여다보고 연결시키는 것 정도입니다. 그럼 그 표면을 들여다봤을 때, 플랫폼이 다양한 BM을 실행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도서정가제가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제작-보관-물류로 이어지는 체인에서 비용이 발생하는 출판과 달리, 디지털 콘텐츠는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 다만, 콘텐츠를 큐레이션하고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더 다양한 실험을 하고 거기서 경험을 얻으려면, 실질적인 이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도서정가제는 디지털 콘텐츠의 상상력 자체를 막고 있습니다. 기다리면 무료 모델 외에 다른 방법을 실행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고, 대부분의 콘텐츠를 소장이 아니라 대여 형태로 구매해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도서정가제는 대여에는 적용되지 않거든요.

뿐만 아니라 2010년대 초 유료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 쏟아졌던 악플을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합니다. 웹툰=무료라는 인식이 많이 지워진 지금에도 그때의 트라우마는 현재형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도서정가제입니다. 도서정가제는 10% 이상의 할인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웹툰은 도서로 분류되진 않지만, 이전에 ‘웹툰’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을 때 웹툰에 ISBN을 발행받아 등록하면서 이어져 왔습니다. 그전까지 만화는 당연히 출판이었으니까, 관례를 따라 간 거죠.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고 있습니다.

또다른 이유는 큐레이션의 문제입니다. 프로모션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역시 중요합니다. 이 상상력이 실행된다면, 플랫폼이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작가와 협상을 하게 될 겁니다. 물론 프로모션에서 플랫폼의 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압도적인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플랫폼의 힘은 결코 무시하거나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때문에 플랫폼이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프로모션이 다양성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높은 이익을 안겨주고, 더 많은 것을 플랫폼에게 안겨줄 수 있는 작가나 스튜디오, 제작사에만 프로모션이 해당된다면, 이 상상력은 아무 쓸모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작품의 가능성이나, 웹툰이 가진 힘이 아니라 오로지 ‘판매량’만으로 결정한다면 글쎄요, 그것이 굳이 웹툰이나 만화의 형식을 가질 필요는 없는 거죠.

이렇게 상상력을 실현시키는 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계약, 분배의 문제, 형평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적절한 큐레이션과 프로모션 방법에 대한 검토와 검증이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이런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은 현재의 문제를 개선할 수도, 검증할수도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플랫폼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지금, 국내 시장이 해외 시장의 부속품이 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플랫폼의 존재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덜 불쾌한 방법으로, 심지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 자체가 닫혀 있는 건 아예 다른 문제죠.

이런 상상력은 결국 작품을 ‘진짜로 읽는’ 독자들을 늘리고, 작품을 구매하는 독자들에게 효용감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독자들이 작품을 읽는 행위 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하고, 거기에 팬심을 더해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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