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산업화 길목에서 - SWI PREMIUM

웹툰의 산업화 길목에서

# 플랫폼의 투자를 보는 시선

# 독자의 취향을 뛰어넘고 싶다면

# 수익만이 유일한 변수여야 할까

웹툰은 이제 산업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 고도성장에 힘입어 안정기로 접어들기 전 집중화, 고도화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퀄리티’나 ‘분량’은 이미 작가 개인이 혼자서 감당하기엔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개인 작가도 어시스턴트 없이 플랫폼 연재를 맞추기는 어렵고, 경쟁상대는 집단창작을 기반으로 한 스튜디오와 에이전시가 됐다. 작품을 읽고, 평가하는 입장에서도 개인 창작자의 주관이 아니라 판매를 위한 계산과 데이터 분석이 우선하는 작품들을 읽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잘 팔았으니 잘 했구나, 라는 말은 만화를 작가의 예술행위로 인한 결과물이 아닌, 상품으로만 보는 관점을 강화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산업화의 긍정적인 면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 만화-웹툰 시장에 ‘자본’이라고 부를 만한 규모의 돈이 돌기 시작한 건 분명 산업화의 공이다. TV를 틀면 웹툰 원작 드라마가 나오고, 영화 예매 순위에 웹툰 원작 영화가, 넷플릭스 오늘의 인기 TOP10을 채운 웹툰 원작 작품을 보고 있는 것 역시 산업화의 공이다.

# 플랫폼의 투자를 보는 시선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돈을 쥔 사람들은 투자를 원했다. 그리고, 웹툰이라는 판 안에서 가장 많은 돈을 쥔 것은 역시 플랫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는 막대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고, 이 자금으로 투자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네이버웹툰은 100% 지분을 확보한 자회사를 중심으로 스튜디오에 투자해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고 소개된 IP를 자회사를 통해 확장하고, 다시 그것이 네이버웹툰(나아가 네이버의) 매출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었다. 눈에 띄는 것은, 네이버웹툰은 기존의 기업들보다 새로운 기업들, 나아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경력이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스튜디오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반면 카카오페이지는 기존의 기업들에 주로 투자했다. 서울-대원-학산으로 불리는 3대 출판만화 출판사에 총액 400억원가량 투자했고, 인도네시아의 플랫폼인 네오바자르를 인수했다. 뿐만 아니라 디앤씨미디어, 투유드림 등 기존 콘텐츠 제작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업체들을 중심으로 투자를 이어갔다. 카카오페이지는 100% 지분을 보유한 종속기업을 만들기보다 투자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이는 IPO를 위한 기업 규모 불리기와도 연관이 있다.

플랫폼의 투자는 돈이 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플랫폼의 투자금이 다시 플랫폼의 이익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물음표가 생긴다. 자본이 효율을 쫓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자본이 효율 ‘만’ 쫓는 것은 생태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플랫폼의 연재 시스템을 보면 ‘효율’을 쫓는 것이 과연 만화와 웹툰이 그동안 만들어온 생태계에 대한 고민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네이버웹툰은 자회사 리코에서 웹툰을 제작해 네이버웹툰에 연재하기도 했고, 카카오페이지의 투자사들은 당연히 카카오페이지 중심으로 작품을 공급한다.

그러니까, 개인 작가들이나 소규모 제작사와 에이전시는 대형 플랫폼의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고, 플랫폼은 그렇게 투자한 회사의 작품들을 한정된 공간인 플랫폼의 화면 안에서 어떻게 선보일지만 고민하면 된다. 물론, 플랫폼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야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과 작품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제작환경이나 출발선상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면, 플랫폼의 현재 방식 자체를 고민해봐야 되는게 아닐까?

현재 시스템은 네이버웹툰의 경우 개인 작가의 작품과 웹소설 원작의 작품,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작품이 모두 한 공간 안에서 경쟁한다. 카카오페이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푸시 알람, 메인 화면 등 대표적인 프로모션에는 한계가 있고, 때문에 노출도가 낮은 작품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프로모션과 노출도를 결정하는 건 플랫폼이다. 투자한 쪽과 투자하지 않은 쪽, 어느 손을 들어줄지 선의에 맡기기엔 결과가 너무 치명적이다. 말하자면, 이건 웹툰의 ‘최고점’만을 위한 전략이다.

# 독자의 취향을 뛰어넘고 싶다면

당연히 인공지능이 분류하고, 개인 맞춤형 추천을 하는 것 역시 좋은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애초에 기존에 비해 큰 규모의 ‘자본’이 투입된 작품과 개인의 역량으로 만들어내는 작품이 같은 물리적 공간 안에서 경쟁한다는 점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작환경 자체가 다르고, 작품의 지향점이 다른 작품들을 한 공간안에 몰아넣고 1등을 놓고 다투라고 말하는 건 넌센스다.

물론 거대 플랫폼은 ‘낙수효과’ 같은 걸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인기작과 한 공간 안에 있으므로 발생하는 부수적인 트래픽 효과가 다른 작품들에도 전달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백 작품이 연재되고 있는 웹툰 플랫폼 안에서 썸네일과 제목이라는 작은 단서 하나만 가지고 독자들이 작품을 선택할 것이라고 믿는 건 순진함을 가장한 무책임이다. 순위의 고착화는 이를 증명한다.

플랫폼이 정말로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싶다면 작품의 성격에 따라 물리적 공간을 분리하고, 독자들이 보다 깊은 감상이 가능하도록 취향에 맞는 작품들이 모여 있는 ‘안전한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같은 시간을 들여서 봐야 하는 수백 작품 중에서 플랫폼이 우선적으로 추천하고, 더 많은 숫자가 따라오는 작품은 안전하다. 그렇게 성공을 거둔 작품과 비슷한 성격의 작품이 또 다시 추천메뉴에 오르고,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반복하다 보면 결국 그것이 ‘플랫폼의 성격’이 되고 만다. 이런 플랫폼 상황에서 독자는 취향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 독자의 감각보단, 대중의 일원으로 감상의 능력이 더 중요한 상황이 된다. 플랫폼이 자신들의 데이터에 따라 취향을 결정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플랫폼은 다양한 제작사에 투자를 하고, 투자사가 제작한 작품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바탕에는 ‘수익’이라는 기본 변수가 탑재되어 있고, 수익을 내지 못하는 실험적인 작품이나 도전적인 작품은 플랫폼에선 자리를 잃는다. 결국 개인 창작자가 소외되는 과정이다. 웹툰이 인기를 얻었던 건, 개인 창작자의 힘 덕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업이 발전할수록 개인 창작자는 자리를 잃고, 기획 작품과 투자, 그리고 소위 '블록버스터'만이 남는 현상이 가속화된다.

# 수익만이 유일한 변수여야 할까

물론, 상업 시장에서 수익은 중요한 변수다. 하지만 상업성만으로 작품을 평가하면 웹툰에는 더 이상 논의도, 평가도, 판단도 필요 없게 된다. 작품 자체보단 주변부의 현상들을 조명할 수 있을 따름이다. 다시 ‘돈’으로 돌아오면, 가장 많은 돈을 쥐고 있는 건 플랫폼이다. 달리 말하면, 플랫폼은 가장 많은 시행착오를 버틸 체력이 있고, 가장 많은 공간을 만들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플랫폼의 수직계열화와 문어발식 확장을 통한 몸집불리기는 다양성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아니라, 더 많은 수익을 위한 몸부림이다. 시장에서도 이런 틈바구니를 노리고 포스타입, 딜리헙 등 다양한 시도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주류와 비주류를 완전히 구분하는 것, 그래서 최고점은 높아지고 최저선은 그대로거나 더 낮아진다면 시장은 반드시 망가진다.

‘초경쟁’ 시장이니 알아서 잘 하라고 말하는 건 논점과 어긋난 반박이다. 이건 최고점을 늘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최저선을 끌어올리자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만화를 읽는 문화 자체를 바꿔버리고 있는 대형 플랫폼들은 최저선에 대한 고민 없이 최고점만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고점이 높아지면 최저선이 따라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최저선은 잊혀진다. 최고점만을 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 나름의 고민이 있겠지만, 그것이 작가가 일하는 강도를 계속해서 높이는 방식이라면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개인 창작자는 주 6일, 하루 11시간 가까이를 일한다. 개인의 노동시간으로만 보면 과로사 인정기준을 초과하고도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하면 최고점이 저만큼 높다’는 것 하나만 보고 달려가는 무한 경쟁은, 성공한 사람에게 최대한을 보장하지만 다양성을 담보할 수 없다. ‘팔리는’ 작품만이 가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행은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고 플랫폼 연재 작품은 장기 연재가 많다. 선수를 잡은 작품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유행을 따르지 않는 작품은 가능성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 고리를 끊을 방법을 찾고, 보다 다양한 작품이 독자를 만나도록 하자는 말은 '투자받은 작품을 끌어내리자'는 말이 아니다.

다시, 웹툰은 산업화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최고점 갱신을 향해 가는 웹툰 플랫폼의 모습은 최저선에 방치된 작가들을 패배자로 만들고, 순위권에 들지 못한 작품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장르의 유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장르 유행과 수익만이 유일한 결과물로 여겨지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독자의 입장에서 즐거움을 주는 다양한 작품들이 피로감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은, 더 이상 만화를 보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웹툰 산업화의 길목에서, 더 다양한 작품을 보고 싶다는 말이 욕심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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