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콘지회 인터뷰, "노조의 우산 함께 씁시다"

얼마 전 프리랜서 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이하 디콘지회)의 설립을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웹툰인사이트에서는 디콘지회 설립을 맞아 디콘지회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디콘지회의 설립부터 가장 중점을 두는 내용들, 그와 함께 앞으로의 계획들과 가입을 망설이고 계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불공정행위에 개별적인 대응밖에 할 수 없었던 프리랜서, 특히 지난 수년간 업계의 최전선에서 각종 부당행위와 집단적 괴롭힘에 시달려온 작가들이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업계의 환경이라는 틀 안에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서 디콘지회의 활동에 큰 기대를 갖도록 합니다.

2019년 스튜디오 창작 시스템이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디콘지회의 작가 권익을 위한 활동에 여러 조합원 분들의 힘이 모여 큰 성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Q.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좀 듣고 싶습니다. 처음 ‘노동조합’이라는 형태를 계획하게 되신 일이라던지, 준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싶습니다.
A. 작년 봄쯤에 서브컬쳐계 종사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변호사님께 상담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변호사님 말씀으로는 프리랜서들에겐 보호 체계가 없다시피 하니 단체화를 시도하는 게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당하게 계약해지를 당해도 회사는 항의 연락을 무시하면 그만일 정도로 프리랜서는 잘라내기 쉬웠으니까요. 연대나 협회 얘기도 나왔습니다만, 이는 노조와는 궤를 달리하는 단체라 변호사님은 노조를 추천했습니다. 실제로 노조 측에 연락도 해주셔서 연결이 쉬웠습니다.

지난 2월 3일 창립을 알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홍보내용

Q. 전국여성노동조합 산하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 지회를 설립하셨습니다. 다양한 자문과 조언을 들으셨던 것으로 아는데, 전국여성노조 산하로 결정하신 이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A. 노조를 결성하기에 앞서 여러 노조와 미팅을 가졌고, 각 노조마다 강점이 달랐기에 상급단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디콘지회가 전여노조 산하를 택한 이유는, 지금까지 연대하며 노조의 필요성에 공감해온 인원의 절대다수가 여성인 동시에 사용자가 불분명한 프리랜서이기 때문입니다.

전여노조는 불안정노동 영역에서 오래 활동하였기에, 직장교섭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단위 노동조합보다 활동의 폭이 넓습니다. 또한 첫 출범된 1999년부터 '마산MBC분회'를 설립해 여성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투쟁을 함께 해온 만큼, 디콘지회의 과제와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이런 강점에 이끌려 전국여성노동조합을 택하였습니다.


Q. 2018년 한 해 동안 매우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지회 설립 과정에서 현재 가장 시급하다고 느끼신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A. 가장 시급한 건, 대중에게 우리 디콘지회 조합원들이 처한 업계 현실을 널리 알리는 문제입니다. 예컨데, 웹툰 업계에 가장 보편적인 MG제만 해도 일반인들은 쉽게 알아듣기 힘듭니다. 웹소설도 마찬가지로, 아직도 많은 독자들이 카카오페이지의 "기다리면 무료"로 풀리는 회차가 작가에게도 정산이 된다고 믿습니다. 일반 대중만이 아니라 국회 의원실이나 행정부처 공무원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대로라면 우리 프리랜서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우리의 처우개선 운동에도 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디콘지회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같은 프리랜서라도 웹툰작가는 웹소설 업계에 어둡고, 웹소설작가는 일러스트 업계에 어둡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조합원간에도 서로의 업계에 대한 이해를 높여, 단결력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각 업계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 유투브 방송의 기획과 지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웹툰 작가가 고수익을 창출한다고 대중 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많은 작가들은 낮은 고료, 혹은 고료 없는 빚과 같은 MG제도, 높은 수수료와 밤낮없는 과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웹소설 작가들은 업체와 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료도 없이, 혹은 선인세도 없이, 불확실한 미래의 수익만을 바라보며 일절의 작업비 없이 집필을 이어가고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모든 저작권리를 낮은 매절가에 넘기는 일이 만연합니다. 이와 같은 열악한 실태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우선 웹툰/웹소설/일러스트 업계의 계약방식인 매절, 선인세, MG제도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해설이 필요할 것입니다.

Q. 사실 프리랜서 노조는 지금도 분야에 따라 여러 단체들이 활동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노조법과 노동법이 서로 달라서 회사가 교섭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사실 프리랜서는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 조합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은걸로 아는데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지요?

A. 사실 교섭문제는 산별노조보다 상대적으로 해결이 용이한 기업노조도 애를 먹는 부분입니다. 노조가 정당하게 단체교섭권을 행사하더라도, 사측이 교섭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일단 노조지위확인 소송부터 걸고 업무방해와 손해배상 소송을 차례로 걸면서 교섭에 불응하는 수법이 이미 메뉴얼화 됐기 때문입니다.

영화산업의 노사정 이행협약 체결의 주체중 하나인 전국영화산업노조

그래서 산별노조인 우리 역시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지만,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경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차례에 걸친 노사정 이행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다수의 사용자 교섭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매년 더 많은 한국영화 기업들이 협약 체결 당사자로 교섭 테이블에 들어온 성공적인 케이스입니다. 따라서 우리 디콘지회는 최대한 많은 작가들과의 단단한 연대로 대표성을 확보하여 교섭력을 높이는 데 힘쓸 예정입니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이미, 노조로 조직되기 전부터 단결된 투쟁과 시위로 불통을 고집하던 레진코믹스와 교섭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레규연 활동 경험이 있습니다. 레진코믹스 작가들과 동료작가들이 연대해 대표성을 확보했기에 가능한 일이며, 이때 얻은 성과 (지각비 폐지, 계약서내 독소조항 수정)등은 레규연이 아닌 다른 레진작가들도 모두 혜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하우에 노조의 조직력을 살리면, 더 큰 성과도 얻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Q. 지난 몇년동안 업체와의 불공정계약, 문하생등에 대한 착취, 성폭력, 일부 ‘독자’들의 사이버불링 등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는데요. 어떤 부분에 가장 역점을 두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모든 사항이 중대하지만 우선, 불공정 계약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노조 초반부터 현재까지 계약서를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불공정 사항을 검토하고, 표준계약서에 필요한 조항을 추리고 있습니다.계약서를 제출하고 월마다 모임을 가지면서 전여노조와 함께 질의를 이어나가며 검토했습니다.

서울시, 경기도의 프리랜서 조례안을 설립하는데 있어서도 의견을 모아 전달한 바 있습니다. 전여노조 위원장님과 함께 웹툰작가/웹소설작가/일러스트레이터 작가들이 프리랜서 조례안을 만드는 서울시 공정경제과와 면담을 하였고 웹툰, 웹소설, 일러스트 업계의 불공정 사항이 무엇인지, 표준계약서에 어떤 조항이 필요한지를 정리하여 제출한 것입니다.

당연히 문하생 착취, 성폭력, 사이버 불링 사항도 모두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사이버 불링 방지, 문하생 착취 근절, 성폭력 피해 복구 및 예방에도 물론 적극 연대할 것입니다.

Q. 만드시면서 어떤 고민과 어려움이 있으셨을지 이해가 갑니다. 당장의 활동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A. 우선, "프리랜서 노조의 필요성"을 동료작가와 대중에 알리는 게 선결과제라 생각합니다. 사실 준비위원회는 디콘지회 설립 소식을 안내한 이후에 "왜 전국여성노동조합을 택했는가?" 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받으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프리랜서 노조는 불법", "지회는 협회라 노조가 아니다"라는 질타부터 받았습니다. 이는 노동운동과 노조 조직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빚어진 오해입니다. 따라서 우리 디콘지회는 동료 작가들이 그릇된 오해로 노조가입을 꺼리지 않도록, 프리랜서에게 왜 노조가 필요하고, 어떻게 가능한지를 언론, 각종 SNS, 자체 방송과 커뮤니티 등 다양한 매체로 알리고자 합니다.

Q. 만화분야가 아닌 곳에서 가장 큰 연대를 보내주신 분들이 있다면 어떤 분들이 있을까요? 또, 다른 분야에서 프리랜서 노동조합을 통한 연대를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팁이 있을까요?

A. 을지로위원회, 참여연대, 청년참여연대, 민생경제연구소,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 한국여성민우회, 게임개발자연대에서 응원의 말씀과 함께 지지와 연대를 보내주셨습니다.

을지로위원회, 참여연대, 청년참여연대의 경우 디콘지회와 함께하는 레규연 활동 때부터 많은 도움과 연대를 준 단체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 게임개발자연대에서도 역시 디콘지회와 함께하는 WFIU연대 출범 당시에 축사를 전해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게임개발자연대와는 노조 가입 초기에 특히 긴밀히 소통한 바가 있습니다. 게개연이 IT 노조등에 먼저 가입한 만큼 조언을 구했던 것입니다.

연대를 계획하시는 분들께 드리고싶은 말씀은 게임개발자연대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처럼 기존 노조와 연관된 단체에게, 혹은 기존 노조에게 직접 조언을 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노조 가입 이전에 연대 결성 및 활동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노조 가입과 지회 결성으로 이어진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동일한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이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한 연대가 소중한 바탕이 된 것이지요.


Q. 사실 아직은 트위터 등 SNS로 직접 만날수 있는 창구가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고민하고 계신 부분이겠지만, 더 다양한 연령대와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분들을 만날 계획이 있으신가요?

A. 이제 막 조직화가 이루어진 단계라 아무래도 당장은 창구가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추후에는 이런 창구를 하나둘씩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님과 함께 할 수록 디콘지회의 대표성도 커지고, 단체교섭력도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웹툰/웹소설/일러스트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안정화가 된 이후에는 웹컨텐츠를 생산하는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과 함께하려 합니다. 처음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지회명도 "디지털 컨텐츠 창작노동자 지회"로 명명하였습니다.

Q. 사실 만화등 업계에서는 실태조사가 몇년째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효과는 미진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처럼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기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이 부분이 정말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 웹툰, 웹소설, 일러스트계 실태조사 등을 위해 준비하고 계시거나 진행중인 사항이 있을까요?

A. 맞습니다. ‘당사자의 목소리’로 실태를 전달하고, 기록을 남기고 널리 알리는 과정이 절실합니다. 디콘지회는 이를 위해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노조가 중심축이 된 “국회토론회” 를 준비중입니다.디콘지회는 교집합인 레규연 활동 때부터, 트위터 상에서 1년 이상 꾸준하게 실태 설문조사를 이어온 "외주표준단가 정상화를 위한 설문조사" 계정과 꾸준히 연계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교집합, 연계 단체인 WFIU 연대에서도 업계 종사자가 직접 설문지를 작성, 일러스트 분야를 세분화하여 실태조사를 시행중입니다.디콘지회는 이러한 기존 활동을 기반으로 연대단체, 연대자들과의 연계, 협력을 통해 조사 항목의 밀도와 참여도를 더욱 높여갈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기존 실태조사의 분산보다는 일원화, 집중이 필요하단 판단이었습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모으고, 직접 전달하고, 제언까지 하려고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 디콘지회는 콘텐츠 진흥원에서 시행하는 웹툰계 설문조사에 협력을 요청받아 조합원들에게 참여를 권장한 바 있습니다.당사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담기지 못하는 기존 실태조사에 염증을 느낀 작가들이 기존 설문조사를 외면하고 있어 콘진원 설문조사를 담당하는 용역업체측에서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기존 실태조사에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기는 것 또한 중요한 만큼 이후로의 연계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Q. 아직 가입을 망설이고 계신 분들께 가입하면 기대할 수 있는 장점등이 있는지 이야기해주신다면요?

A. 첫번째로는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입니다. 현재 디콘지회는 전여노조 자문노무사를 통한 법률지원은 물론, 비영리공익법인인 “벗”으로부터도 법률상담 지원을 약속 받았습니다. 또한, 방문상담이 어려운 디콘지회 노조원을 위해 "직장갑질 119"처럼 오픈카톡방 개설해 운영하는 계획도 논의중에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노조원간의 정보공유와 공동대응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업체로부터 피해를 입어도 침묵할 수밖에 없어 가장 기본적인 피해회복 요구조차 포기하거나, 반대로 대중 앞에 위험한 공론화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조에 가입한다면,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이런 부담을 노조와 함께 나누게 됩니다.

아직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노조가입을 보험처럼 여기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디콘지회는 기업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계약 상대방(사측)에 노조가입 사실을 알릴 필요도, 의무도 없습니다. 조용히 머릿수로 힘을 키워주시면서 노조의 우산을 함께 쓰시되, 사측과 트러블이 생길 때 노조의 투쟁력과 협상력으로 해결을 도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마음으로 편히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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