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의 신' 뜻 잇는 작품을 만드는 "데즈카 프로덕션", 타카유키 마츠타니 회장 인터뷰

2월 22일, 서울 홍릉 콘텐츠인재개발원에서 데즈카 프로덕션의 타카유키 마츠타니 회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데즈카 프로덕션의 타카유키 회장은 데즈카 오사무 선생 생전부터 함께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온 50년 경력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입니다. 타카유키 회장에게 데즈카 프로덕션의 비전, 그리고 데즈카 오사무 선생과의 추억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한국의 웹툰 독자 중에는 만화 “아톰” 보다 캐릭터 “아톰” 이 더 익숙한 젊은 층이 많습니다. 그런 독자분들께 데즈카 프로덕션에 대해서 소개말씀 부탁드립니다.

타카유키 마츠타니 회장 (이하 T):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완 아톰>을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본 사람보다 캐릭터 아톰을 알고 있는 젊은 층이 더 많지요. 애니메이션은 봤지만 만화는 안 읽어본 사람도 있고요. 저희는 애니보다 만화책에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정신이 더 잘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아톰> 만화판의 판형이 좀 큰 편이었어요. 그 오리지널 그대로의 모습을 읽고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캐릭터도 중요하죠. ‘헬로 키티’같은 경우도 스토리는 없지만 캐릭터는 굉장히 유명한 것처럼, 저희도 아톰도 캐릭터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만화책도 꼭 더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저희 데즈카 프로덕션은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데즈카 오사무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곳입니다.

Q. “망가의 신” 이라고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만화를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만화가 가지는 주제와 가치를 어떻게 보시나요?

T: 타인과의 교류, 그리고 그 관계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소중함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생명의 소중함 이랄까요. <밀림의 왕자 레오>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람뿐 아니라 동물, 나아가 지구 전체의 생명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가를 다른 존재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게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만화가 가지는 주제이자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전의 데즈카 오사무 선생이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철완 아톰>

Q.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작품을 주로 만들던 데즈카 프로덕션이 최근 <다가시카기> 2기 제작이나 <5등분의 신부>등을 제작하면서 다양한 작품들로 확장하는 것 같습니다. 데즈카 선생의 작품이 아닌 경우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T: 저희 회사에 직원이 백명 정도 있습니다. 그 절반은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는 인원입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TVA, 극장판 모두 기획부터 제작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저희가 작품을 기획하는 중에 다른 작품들의 제작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원들의 생활을 위해서 다른 작품들을 받지만 특별한 기준을 두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희가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제작하는 것이지요.

데즈카 오사무 원작의 <도로로>(1967)

Q. 데즈카 오사무 선생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로부터 지금은 거의 반세기 가까이가 지났습니다. 최근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계시는 <도로로>의 경우 50년이 넘은 작품인데요. 현대의 감각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과 원본을 그대로 살리는 것 사이에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균형을 잡으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T: 표현의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요. 예전에는 ‘셀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는 기법이 이제는 CG로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도 저희는 근본적인 부분, 그러니까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정신이 변하지 않도록 검토하고 검수하고 있습니다. <도로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짊어진 운명이라던지 하는 부분들에는 변화가 없지만 표현방식에서 좀 더 세련되게 바뀌는 식이지요. 전투씬에 대한 표현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식입니다.

2019년 다시 태어난 <도로로>

Q. 뿐만 아니라 데즈카 프로덕션에서는 최근 모바일게임 등으로 저변을 확장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T: 조사를 열심히 하셨네요(웃음). 저희에게는 아까 말씀드린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어떤 매체든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모바일게임 사업도 고려했습니다. 캐릭터에 익숙해지면 다시 원작이 된 만화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금전적인 부분을 떠나서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마음을, 정신을 전할 수 있는 매체로 다양한 부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회장님은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T: 데즈카 오사무 선생이 살아 계실 때 ‘어떤 작품을 제일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했습니다. “다음에 그릴 작품입니다.”라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단편들을 좋아합니다. 짧은 작품들 중에도 좋은 작품이 많습니다. 30페이지도 안되는 분량 속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즈 중에는 <블랙 잭>을 좋아합니다. 한 회당 20페이지 전후로 짧은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어요. 이렇게 작품을 그릴 수 있는 만화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부분이지요. 다른 단편중에는 <아메후리코조>가 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의 <아메후리코조>

Q.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세일러문>, <카드캡터 사쿠라>등을 통해 불고 있는 복간 열풍에 데즈카 프로덕션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회장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T: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저희에겐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현재 중점적으로 기획, 제작하고 있는건 ‘어린 아톰’ 시리즈입니다. 겉모습은 아톰이지만 크기가 작은 꼬마 아톰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어린 아이들이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있어요.

Q. 1989년에 나온 <밀림의 왕자 레오>같은 경우 한국에서도 굉장히 인기가 많았고, 현재 청년세대들이 많이 봤던 만화라 다시 복간할 가능성은 없는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T: 1989년생이 청년이 되었겠군요. 1989년은 데즈카 오사무 선생이 돌아가신 해이기도 합니다. 2월 9일에 돌아가셨지요. 당시에 TVA 3편을 제작하고 돌아가셨어요. 하나는 <성경 이야기>, 하나는 다른 오리지널 작품이고, 마지막 하나가 <밀림의 왕자 레오>였습니다. 한창 제작하고 있을 당시에 데즈카 오사무 선생이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였어요. 데즈카 오사무 선생이 마지막까지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유작이 된 <밀림의 왕자 레오>

데즈카 선생은 끝까지 함께 하고 싶어 했고, 주변 사람들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걸 알고 있었으니 병실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병실에서 회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작품을 보시다가 “저기 수정할 곳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구요. 사모님께서도 같이 보시면서 ‘퇴원해서 열심히 다시 만듭시다’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지요.

때문에 <밀림의 왕자 레오>는 저에게도 굉장히 특별한 작품이었습니다. 한번 꼭 만들어 보겠습니다.


Q. 2014년에 나이지리와 TV와 <아톰>의 TVA를 공동제작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외시장 개척등을 위해 ‘에듀테인먼트’등을 실행에 옮기셨는데요. 경과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T: 와, 정말 열심히 준비하셨군요(웃음). 일본의 인구는 1억명 정도의 시장이지만 세계에는 약 80억명의 시장이 열려있기 때문에 해외 진출에도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와의 프로젝트는 인연이 닿아서 시작했다가 중간에 멈춰버린 상태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톰 시리즈를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다른 문화권에 작품을 내놓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어렵다고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데즈카 오사무 선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과 사람간의 교류’를 통해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만큼 대단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해외에서 더 넓게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한국의 신동우 화백과도 오래도록 교류를 가져왔습니다. 안타깝게도 너무 일찍 돌아가셨지요.

Q. 세계 만화시장이 만화 자체로는 더는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회장님이 보시는 세계 시장 전망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T: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세계 시장의 규모에 비해 만화가 진출 국가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21세기는 정보교류가 활발해졌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해외시장의 여러 돌발요소들이 있겠지만, 그런 부분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서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Q. 처음 <오공배 만화교류회>와 공모전에 참가를 결정하실 때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T: 올해가 데즈카 오사무 선생 탄생 90주년, 사망 3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좀 더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작품들을 알리는데 힘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만화교류회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선생이 생전에 손오공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나의 손오공>이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하셨지요. 그래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철선공주>라는 중국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시고 대단히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철선공주>를 만드신 왕 감독님을 상해에서 만나기도 하셨구요.

저로선 올해 탄생 90주년, 사망 30주기를 기리기 위해서 첫 시작으로 한중일 3국의 만화교류회가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선생이 살아 계셨다면 젊은 만화가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분명 하셨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올해는 좀 특별히 나서게 되었습니다.


Q. 회장님이 보시는 한국의 웹툰과 만화시장은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시나요?

T: 50년 가까이 만화, 애니메이션계에 몸을 담고는 있습니다만, 데즈카 오사무 선생이 돌아가신 뒤로는 어떤 만화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 만화나 한국의 만화나 마찬가지구요. 읽어보고 의견을 물어봐달라고 하시면 공부해서 말씀드릴 수는 있겠지요(웃음).

데즈카 프로덕션의 타카유키 마츠타니 회장

Q. 삼국의 만화가들에게 업계 대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T: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말을 빌려서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어떤 표현으로 그리고 싶은지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런 생각이 바탕에 있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창작에 왕도는 없다고도 말씀하셨지요.

한창 데즈카 선생이 만화를 만들 때에는 지금처럼 도서관에 만화책이 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읽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심지어는 학교 운동장에서 만화를 불태우기도 했지요. 데즈카 오사무 선생은 “만화로 이런 것도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더 연구하고 몰입하셨던 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들은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니, 물론 깊은 고민으로 창작하고 계시겠지만, 보다 깊은 창작에 대한 고민을 통한 만화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끝으로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T: 정확한 눈을 가지고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또 작가들도 그걸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데즈카 프로덕션의 타쿠야키 마츠타니 회장은 날카로운 통찰과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다음 <철완 아톰>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사망 이후 만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감각은 여전히 날카로웠습니다. 혼란 속에서도 믿음과 우정, 그리고 생명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통해 평화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와 닿는 인터뷰였습니다. <밀림의 왕자 레오>를 꼭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인터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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