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규제를 통한 웹툰의 고도화 전략이 필요한 때

최근 네이버웹툰의 몇몇 작품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기안84 작가의 <복학왕>에서 장애인을 비하했을 뿐 아니라 특정 직업군과 성별을 비하하는 대사가 지속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태국에서 연재되었던 <틴맘>의 경우는 미성년자의 임신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주인공의 태도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네이버웹툰이 청각장애인을 소재로 다룬 <Ho!>와 청각장애인 본인이 작가로 만화를 그린 <나는 귀머거리다>, 임신에 대한 경험을 내용으로 다루는 <아기낳는 만화>등이 연재되었던 플랫폼이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네이버웹툰 편집부가 자신들의 방향성을 잊고 자극적인 콘텐츠만을 생산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 웹툰 자율규제 연령등급안

작년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 중 "웹툰 자율규제 연령등급 기준에 관한 연구 결과 만화인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일상에서 간편하게 구독할 수 있는 웹툰이 급성장하면서 대중적으로 확대되자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규제를 시작했고, 이에 만화계가 반발하며 소위 '노컷 운동'으로 번졌던 사건 이후 만들어진 방안의 일환입니다.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하면 기존의 일원화된 정부 규제만으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은 상황에서 민간영역에 규제권한을 위임하거나 제작자의 자발적인 자율규제를 통해 정부규제와 결합되어 실행되는게 일반적입니다.

작년 공청회에서는 콘텐츠 제공자와 창작자에 의한 자율규제가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공론화된 절차에 따라 연령등급을 도입하는 한편 '자가진단표'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웹툰 자율규제 연령등급 기준에 관한 연구에 수록된 내용

이 연령등급안에는 주제, 폭력, 공포, 선정성, 언어, 약물, 모방위험과 차별 등 9가지 기준을 만들어 전연령, 12+, 15+, 18+등 4가지 등급으로 나누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차별'항목은 국내 콘텐츠 업계 최초의 사례로 점차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등급 자율규제안이 지켜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유통상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성인 등급' 작품에 대해서만 민원이 주로 몰리다 보니 성인등급인지 아닌지를 나누는데 급급하고, 연령별 등급안을 지키는데에는 소홀하지 않느냐는 지적입니다.

* 예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도

한편으로는 이런 자율규제안이 예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대중에게 유통되고 판매하는 작품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 역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편으론 예술가가 '문제적인' 요소를 짚어내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와 '고민 없이'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규제를 표현의 자유라는 같은 이름으로 묶어서 보호해야 하느냐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번에 문제로 지적된 작품들은 창작자의 의도를 곱씹어 보았을 때 그것이 '예술상의 불가피한 표현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작품들이라는 평가를 해볼 수 있습니다.

<복학왕>의 경우 청각장애인을 표현하며 말풍선 뿐 아닌 생각 표현까지 어눌한 발음으로 표기하고, 청각장애인의 행동을 어리숙하게 표현해 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틴맘> 역시 미성년 임산부 당사자의 모습이 아닌 남성인 작가가 상상으로 그려낸 모습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미 미국 등에서는 자율규제를 통해 업체별로 비슷한 자율규제안을 통해 전연령, 청소년 이용가, 보호자 지도 필요, 성인 이용가 등 다양한 등급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판매하고, 주로 10대 청소년에게 소비되는 작품인 만큼 세분화된 등급분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만화계의 연령등급-마블,디씨,코믹솔로지의 경우(웹툰 자율규제 연령등급 기준에 관한 연구 11페이지)

이런 상황에서 대중에게 쉽게 읽히게 한다는 명목으로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등장인물을 특별한 이유 없이 대상화하는 모습을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거기서 어떤 예술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밖에 없습니다. 설령 그렇게 얻어지는 예술적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재하는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만들고 차별을 조장한다면 분명 자율규제 등의 최소한의 방법으로 제한하거나, 독자에게 미리 경고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불편을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 플랫폼의 참여 없는 등급제

특정 작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독자에게 미리 경고하고, 연령등급에 따른 안내를 하는 방향으로 작가를 보호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이 이를 적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네이버웹툰의 경우 어떤 등급표기도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예술을 주관적인 판단으로 "예술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오픈 플랫폼이 아닌 MG / 고료를 지급받는 작품은 편집부의 '선택'으로 연재되는 작품들입니다. 그런 동시에 대중에게 작품을 널리 읽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회의 규약과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임의 경우 등급제를 마련해 게임에 접속할 때 가이드를 제시하고 경고하지만 웹툰은 2012년 자율심의안이 논의된 이후 2018년에야 연령등급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대응이 너무 느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지금이라도 플랫폼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편, 플랫폼의 책무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 전에 먼저 제대로 울타리를 정비하고, 자체적으로 발전할 방향을 만들었다면 꾸준히 논의하고 지켜나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결국 유통사인 플랫폼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제작사, 에이전시 등의 단위를 통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서 공유하는 한편, 편집부 구성원의 사회적 감수성 확대를 통해 무분별한 표현이 아닌 독자들을 설득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등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 대중매체가 된 웹툰의 미래

웹툰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대중매체가 되었습니다. 네이버웹툰의 월 평균 방문자는 5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더군다나 영화, 드라마 등의 원천 IP로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대중매체가 되었다면, 창작자와 편집자의 의식 역시 제고되어야 합니다.

이제 1조원을 넘어서고 '산업'으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웹툰이 보다 체계화되고, 분야별로 전문화되기 위해서는 대중매체로 소비되는 웹툰과 예술장르로서 소비되는 작품들의 세분화 역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만들어져 있는 자율규제안을 적용해보면서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는 것 보다는 수월한 대응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웹툰은 이미 대중매체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혼자 즐기는 만화가 아니라 다수의 대중이 즐기는 문화가 되었음을 인지하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작품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플랫폼에서는 플랫폼의 규모에 맞는 기준과 품격을, 제작사는 각자의 색깔에 맞춘 제작방식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기준과 논리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개인 창작자에게 의존하는 시스템에서 보다 체계적인 작가 관리와 리스크 관리, 나아가 작품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산업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진통과 논란을 미리 대비할 기회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물론 웹툰 자율규제안이 만능은 아니지만, 지금 현재 가장 오래도록 논의한 방안인 만큼 이를 활용한 적극적인 대처가 절실합니다.

웹툰은 다행히 산업의 규모로 성장하는 다른 콘텐츠 분야의 성장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양한 분야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자율규제 연령등급안과 같은 방안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업계에서 생겨나는 문제점을 활발하게 논의해 지금이라도 맞춤형 전략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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