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이 유통사를 바꿨는데, 한국 웹툰에는 무슨 영향이 있을까?

미국의 만화 유통시장은 사실상 독과점 시장입니다. 70% 가까운 만화 유통을 담당하는 거대 기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다이아몬드 유통(Diamonds Distribution)입니다. 단순히 만화 유통 뿐 아니라 가격 통제부터 심하게는 판매량을 위해 작품에 간섭하려고 하기도 했고, 나아가 미국 코믹스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코믹북 스토어들을 꽉 잡고 있는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 기업이 코로나19 이후 흔들리는 모양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미 2020년에는 DC코믹스가 '다이아몬드와 결별한다'고 선언했고, 그 때문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북미지역 수퍼히어로 이슈 판매량 집계가 불가능해져 에디터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다이아몬드 유통을 통해 판매되는 만화의 40% 가량은 마블, 35% 가량이 DC였습니다. 그러니까 DC가 빠진 다이아몬드 코믹스는 위기에 봉착했죠.

* 왜 마블은 다이아몬드를 버리고 펭귄을 택했나

2021년에는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며 현행 유지는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2022년 들어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DC가 빠진 지금, 다이아몬드 유통의 매출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마블코믹스 역시 새로운 유통사를 찾아 다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펭귄 랜덤하우스 퍼블리셔 서비스(PRHPS)'입니다.

펭귄 랜덤하우스는 전세계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입니다. 거기서 운영하는 PRHPS 역시 글로벌 유통 구조를 갖추고 있고, 그만큼 영향력이 큽니다. 특히 유럽,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공화국, 중국 등지에 근거를 두고 전세계 모든 대륙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유통은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개 유통사일 뿐이고, 심지어 내수 전략에 올인한 유통사입니다. DC코믹스는 다이아몬드와 결별하면서 '코믹북 스토어를 운영하는 소상공인과 상생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이후 출간한 스페셜 커버판 판매는 '온라인 쇼핑몰을 가진 코믹북 스토어'로 한정했고, 직접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블 역시 같은 생각일 겁니다. MCU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히트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은 지금 만화 판매량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다이아몬드 유통에 묶여서 내수에만 집중하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네이버웹툰이나 카카오페이지와 협업하면서 얻은 글로벌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이후에 나온 발표라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 무엇이 달라지나

다이아몬드 유통의 CEO 스티브 제피는 "(우리는)40년 가까이 마블과 계약을 맺어왔으며, 앞으로도 마블의 상품을 판매할 것"이라고 못박으면서 "이번 마블의 발표가 우리와의 단절을 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공급 역량에도 문제가 없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부사장이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변화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을 퍼부었던 DC코믹스의 사례처럼 마블이 아예 연을 끊고 한번에 돌아서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이전과는 달라지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글로벌 확장입니다. PRHPS의 제프 에이브러햄 대표가 "마블의 인기있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전 세계의 더 많은 팬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 만큼, 마블의 PRHPS 계약은 '글로벌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22년 5월 슈피허이로 이슈 판매량 순위. 마블과 DC가 사라졌다.

두번째는 사실 독자들 보단 연구자들이나 저같은 글쓰는 사람들에게 더 영향이 있을 내용인데, 바로 단일화된 판매량 파악이 안 되어 명확한 순위 파악을 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DC코믹스는 판매량이 아니라 별도의 인덱스를 제공하고, 마블도 PRHPS에서 물류를 시작한 2021년 10월부터 순위권에서 밀려나 현재 '수퍼히어로 코믹스'의 순위는 IMAGE, BOOM!, DARK HORSE, IDW등 양대 출판사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출판사들이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 우리에겐 무슨 영향이 있을까?

일단 마블-DC를 축으로 한 공고한 '오프라인 시장'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 미국 시장은 아예 접근조차 너무나 어려운, 슈퍼히어로로 꽉 묶인 단일 체계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시장이 급속도로 변하고, 특히 온라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웹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마블의 인피니티 코믹스

보다 적극적인 것은 마블입니다. 마블이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 '마블 언리미티드'에서 지난해 9월부터 서비스를 하고 있는 '인피니티 코믹스'는 정확하게 웹툰과 같은 스크롤 방식입니다. 아니, 아예 네이버웹툰 등에서 선보인 마블의 스크롤 방식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리지널 인피니티 코믹스로 개발된 작품은 10대 초반, 또는 영유아 등 어린 독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할 것 같네요.

DC코믹스는 슈퍼캐스팅 프로젝트를 통해 네이버웹툰과 협업해 '지금 당장 성과를 내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온라인, 스크롤 방식을 접목하고 있다는 건 마블과 DC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에서 글로벌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그렇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전의 공고했던 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거죠.

여기에 심지어 <나 혼자만 레벨업>은 단행본 판매량 줄세우기에 도전중입니다. 한국 콘텐츠, 웹툰 원작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시장이 이해하기도 전에 콘텐츠가 독자들에게 반응을 얻고 있다는 건, 꽤나 고무적인 일입니다. 주로 일본 만화를 수입하는 YEN PRESS는 한국 만화 전문 임프린트 IZE PRESS를 설립하겠다고 말하기도 한 만큼, 미국 만화시장의 변화가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온라인에서 자리를 잡아놓은 네이버웹툰이 온라인에서 공고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출판시장에 거꾸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출판시장의 지배자인 마블과 DC가 온라인 전환을 위해 기존 유통체계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상황이 앞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올 IZE PRESS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IP확장이 더 활발해질 올 가을부터 본격적인 증명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3줄 요약

1. 마블코믹스가 유통사를 글로벌 유통사인 PRHPS로 바꿨다

2. 당연히 글로벌 진출이 목표고, 여기엔 웹툰의 스크롤 방식 채용도 한몫했을 것.

3. 웹으로 진출해 출판시장 진입을 앞두고 있는 웹툰, 미국 출판시장 혼란은 호재로 작용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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