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부천만화축제 집담회 : 스튜디오 창작 파헤쳐보기

‘이:세계’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가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4일간 한국만화박물관 일대에서 열렸습니다. 여러 프로그램과 행사들이 준비된 가운데 10월 1일 토요일에는 업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현재의 만화·웹툰의 뜨거운 현안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컨퍼런스가 진행되었는데요. 총 3개 세션으로 구성된 집담회 중 2번째 세션은 현직 스튜디오 대표들과 만화 연구가들이 모여 현재의 웹툰 생태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튜디오 창작에 대한 논의를 펼쳤습니다. 장상용 초이락컨텐츠컴퍼니 웹툰사업팀장이자 만화연구가가 모더레이터로 진행을 맡고, 이훈영 툰플러스 대표, 김지연 클로버툰 대표, 이재민 평론가가 패널로 자리했는데요. 집담회에서 오간 내용을 문답식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 왼쪽부터 이훈영 대표, 장상용 팀장, 이재민 평론가, 김지연 대표

Q. 웹툰 스튜디오에 대해 소개를 한다면?

▷ 이훈영 : 공짜로 웹툰을 보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 웹툰은 돈 내고 보는 것이 되었다. 웹툰 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웹툰의 퀄리티도 상승했고, 그렇게 웹툰 제작이 전문화, 분업화되면서 능률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웹툰 스튜디오의 탄생은 웹툰 산업의 호황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웹툰 스튜디오의 장점은 무엇인가?

▷ 김지연 : 개인 작가의 가장 큰 불안 요소는 연재가 끝나면 수익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튜디오는 회사기 때문에 출근하면 월급이 나온다. 그리고 개인작가가 차기작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는 것과 다르게 스튜디오에서는 공백기 없이 여러 작품을 한 번에 제작할 수 있다.

▷ 이훈영 :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다. 개인 작가는 휴일이 있어도 다음 원고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지만 스튜디오에서는 자기 할 일만 마치면 퇴근할 수 있다.

▷ 김지연 : 스튜디오의 경쟁력은 작품을 쌓아 두는 것이다. 처음에 회차를 쌓을 때는 힘들지만 한 번 만들어두면 외국에서 오픈할 때 비용은 0이지만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이것이 정말 매력적이다. 개인이 여러 작품을 200화씩 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너무 힘든 일이지만 스튜디오는 가능하다.


Q. 무엇이 스튜디오라고 명확히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것 같은데 스튜디오의 핵심 정체성은 뭐라고 생각하나?

▷ 이훈영 : 구성원인이 몇 명인지보다는 분업이 잘 되어있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분업화 속도가 얼마나 디테일하게 조율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 이재민 : 시스템이 핵심이다. 현재는 과도기라서 어디까지가 스튜디오고 아닌지 명확한 선을 긋기가 어렵지만 고용계약서를 쓰고, 근로기준법에 맞춰 일하는 직원이 있으면 스튜디오로 볼 수 있다.


Q. 스튜디오는 집단 창작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집단 창작 시스템은 과거에도 있었다. 대본소 시절 작가 밑에 문하생이 제자로 들어가서 배우는 화실 시스템인데, 화실과 스튜디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 김지연 : 제가 실제로 화실에서 문하생 생활을 했었는데 문하생은 화실에 들어가서 배운다. 월급 없이 차비정도만 받으면서 각종 잡일을 도맡아 하고 어깨 너머로 배운다. 하지만 스튜디오는 들어가서 배우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 이훈영 : 합리적인 구조로 분배가 가능하다는 게 도제식 시스템과의 가장 큰 차이다. 4대 보험이 적용되고, 실력있는 직원은 스카우트를 받고 다른 곳으로 이직할 수 있는 점 등이다. 또한 작품에 대한 기여도가 있다면 인센티브 등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다.

▷ 이재민 : 책임을 누가 지느냐의 차이다. 도제식 시스템은 작가가 권리수입을 다 가져가고 책임도 작가가 진다. 스튜디오는 회사가 책임을 진다. 도제식 때는 작가가 모든 저작권을 소유했지만 스튜디오에서는 저작권을 나눠 갖는 등의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Q. 현재 스튜디오에서 저작권 분배를 하고 있나? 저작권에 대한 논의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나?

▷ 이호영 : 우리 회사의 경우 10명 중 8명이 그림을 그리고 2명이 스토리를 쓴다. 스토리 작가가 순수 자기 스토리를 쓰는 경우에는 저작권 개념이 있다. 회사가 외부 작가와 계약할 때와 동일하게 월급 외에 비용을 얹어준다. 그림작가에게 저작권을 챙겨주는 것은 지금으로선 어렵다. 인센티브를 주는 편이다.

▷ 김지연 : 우리도 저작권을 챙겨주진 못하고 인센티브를 준다. 회사는 모든 책임을 안고 간다. 잘되면 좋지만 안 되면 회사 책임이다. 또한 회사에서 다 기획하고 봐준 경우는 작가가 저작권을 인정받기가 어렵다.

▷ 이재민 : 창작과 제작을 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창작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제작은 본떠서 찍어내는 것이다. 내가 낸 각색안을 회사가 수용했다면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도 있겠지만, 회사가 정해준 그대로 만들면 인정받기 어렵다.


Q. 스튜디오에 적합한 작가는 어떤 작가일까?

▷ 이호영 :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즐거운 사람이 있고, 자기 이야기를 보여줘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스튜디오에 들어오면 너무 괴롭다.

▷ 김지연 : 정말 공감하는 게 회사는 아무래도 수익성을 생각하기 때문에 요즘 유행하고 인기 있을 것 같은 장르와 작품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 성향이 너무 강해서 고독하게 자기 작품을 하는 사람은 스튜디오에 오면 힘들어진다.


Q. 그렇다면 스튜디오에서는 직원을 뽑을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나?

▷ 이호영 : 인성이 1순위다. 기본적으로 협업을 하기 때문에 말을 배려 있게 하는 것들이 제일 중요하다. 어쩌면 그림실력보다도 더.

▷ 김지연 : 매우 동감한다. 그림은 가르치면서 할 수 있지만 타고난 성정은 어떻게 하기가 참 어렵다. 그림 그리는 이들 중에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많은데 같은 말을 해도 더 상처 받고 그러기 때문에 배려해서 말하는 것 등이 참 중요하다.


Q. 스튜디오는 재택 근무도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재택 근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김지연 : 개인적으로는 출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에 근무하고 이후에 본인 시간을 갖는 게 회사에도, 개인에도 좋다. 정말 일을 잘하는 데 집이 멀고 이러면 재택으로 하는 게 좋지만 가끔 재택을 하면 연락이 두절되고 작업물이 안 오는 경우도 있다. 하도 작업물이 안 와서 전화해보니 바다에 놀러가 있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 이호영 : 동의한다. 코로나 때문에 1년간 재택근무를 했는데 별 문제가 안 생겼다. 분업화가 잘 되어있고 다들 그 공정을 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직장인이니까 출퇴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창작자는 ‘좀 놀고 저녁에 할까?’ 이렇게 해도 되지만 스튜디오는 내가 작업물을 넘겨야 다음 공정이 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Q. 스튜디오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점점 레드오션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 이호영 : 폭발적으로 성장한 만큼 반동의 데미지가 올 수 있고 그게 지금이 아닌가 싶다. 작년에 많은 자본이 투입되었지만 많이 망하기도 했다. 이건 획일화 때문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나가 잘 되면 같은 걸 계속 만들어내는데 독자들은 냉정하다. 한두번은 보지만 서너번은 안 본다. 새로운 흐름이 나오기까지 향후 2~3년은 암흑기가 되지 않을까.

▷ 김지연 : 동의하지만 이 업계는 얼마나 빨리 시작했는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로 좌우되는 게 아니라 콘텐츠로 좌우되는 곳이다. 수익으로만 판가름하면 수익이 안 나는 순간 바로 접어야 하기 때문에 오래 지속하려면 콘텐츠에 대한 애정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같다.

▷ 이재민 : 아직 레드오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대형 플랫폼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회사 작품을 전면에 내세워서 광고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겨울은 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만화산업 전체를 뒤흔들진 않을 것이다. 노블코믹스가 돈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게 만화적 가치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기엔 좀 어렵지 않나. 창작 중심 스튜디오가 나오면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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