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의 공식 로고 (출처=국제패럴림픽위원회)
8월 11일 폐막식을 끝으로 제33회 파리 하계올림픽의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다.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5개 이상이라는 당초의 목표보다 무려 8개가 많은 13개의 금메달을 비롯하여, 예상치 못한 종목들에서 선전하는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덕분에 대회가 진행되는 2주 남짓 동안 많은 사람의 관심이 국가대표 선수와 경기, 종목 등에 쏟아졌고, 올림픽과 관련된 화제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사람들이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집에서 중계를 통해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 직접 파리로 향해 실시간으로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 경기 대신 올림픽 특선 프로그램 따위를 시청하며 분위기만을 즐기는 사람 등, 이외에도 많은 방법이 존재한다. 그것들과 더불어 올림픽이 끝난 이 시점에 제안하고 싶은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바로 만화를 통해 올림픽, 그리고 올림픽이 끝난 뒤에 시작되는 또 하나의 축제인 패럴림픽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다.
스포츠는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분야다. 종목마다의 정확한 룰이나 선수들, 관전 포인트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기꺼이 거기에 시간을 투자하는 팬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는 한편, 경기 관람을 위해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다. 후자의 사람들, 그러면서도 지난 몇 주 동안 국가대표 선수단을 응원하며 올림픽을 즐긴 사람들이라면, 만화를 통해 올림픽 스포츠의 이모저모를 알아가 보는 게 어떨까.
*만화로 보는 파리 올림픽의 화제 종목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는 유독 큰 주목을 받는 몇몇 종목들이 있었다. 모든 세부 종목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도 놓치지 않은 양궁과,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좋은 결과를 거둔 펜싱, 새로운 스포츠 스타들이 연이어 등장한 사격까지. 그리고 이 종목들과 더불어, 훌륭한 메달 성적뿐만 아니라 매 경기 드라마를 만들어 내며 보는 사람들을 두근거리게 했던 종목을 먼저 소개하려 한다. 바로 매 라운드 투혼으로 메달을 사수해 내는 모습을 보여준 유도다.
뜨거운 승부, 유도:
카와이 카츠토시 <띠를 조여라! 청춘의 유도 대항전> (전 16권, 학산문화사)
올림픽이 아니라 전국대회를 노리고, 국가대표 대항전이 아니라 승단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띠를 조여라! 청춘의 유도 대항전(이하 <띠를 조여라!>)>은 어떻게 보면 프로 스포츠의 세계와는 거리가 있는 만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등학교 부활동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만화 속 ‘열혈’의 정신은 과연 프로 스포츠, 그리고 올림픽까지도 이어질 수 있을 만한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유도는 허미미 선수가 여자 –57kg 종목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빠르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수들이 은메달 2개와 동메달 3개를 얻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유도의 정확한 룰을 알지 못해 마음 졸이는 경우가 많았으리라 추측한다. 유도는 ‘한판’으로 승리가 결정될 수 있는 종목이다. 즉, 기술을 걸어 상대의 등을 땅에 닿게 하는 데 성공하거나 하면 단번에 경기가 종료된다. 그만큼 짜릿한 승리를 맛보여 주는 종목이지만, 반작용으로 룰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서 승리 혹은 패배가 결정되었는지 아리송한 지점도 있었을 것이다.
<띠를 조여라!>는 1988년 연재를 시작해 벌써 30년 이상 된 만화지만, 경기 장면을 펼쳐 보면 몇 주 전 올림픽 유도 경기에서 보았던 익숙한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소매를 비롯해 상대의 옷깃을 쥐고 공격을 펼치려는 순간이 절묘한 완급조절과 함께 나타난다. 그래서 30년 전의 룰을 기반으로 그려졌더라도, 유도의 기본적인 룰과 경기 흐름을 익히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만화다. 다양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수많은 선수들을 등장시키며 독자가 유도라는 스포츠에 익숙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화를 통해 선수들이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며 경기를 운영해 나가는지 익힌다면, 이후 유도를 관람할 때는 전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경기를 바라볼 수 있을 테다.
획득한 메달 개수는 많지 않지만, 예상을 웃도는 선전과 스타성 있는 선수들의 등장으로 주목을 받은 종목들도 있었다. 타 구기 종목에서의 부진으로 생긴 아쉬움을 해소해 주었던, 탁구와 배드민턴을 만화로 소개한다.
숨막히는 랠리, 탁구:
이은재 <펜홀더> (네이버웹툰, 연재중)
이은재 작가가 연재중인 <펜홀더> (출처=네이버웹툰)
탁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펜홀더’라는 제목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갈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탁구 국가대표팀은 탁구의 두 가지 그립법인 ‘펜홀더 그립’과 ‘셰이크핸드 그립’ 중 모두 셰이크핸드 그립을 사용한다. 셰이크핸드는 국가대표를 비롯해 대부분의 탁구 선수가 사용하는 그립으로, 포핸드와 백핸드의 전환이 펜홀더 그립에 비해 훨씬 쉽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작중에서도 “상대와 같은 재능이라면 펜홀더는 반드시 진다”라고 얘기할 만큼, 현대 탁구에서는 셰이크핸드 그립을 사용하지 않는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도 우리나라의 마지막 펜홀더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20년 전,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유승민 현 대한탁구협회 회장이다.
펜홀더 그립 연습상대가 없어 직접 자켓을 벗고 신유빈-임종훈 페어의 연습상대가 된 유승민 회장 (출처=올림픽공동사진취재단)
그러나 <펜홀더>는 제목처럼 펜홀더 그립을 사용하면서 최고에 도전하려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핸디캡이라고 여겨지는 펜홀더를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통해 베네핏으로 만들고자 하는 선수다. 때문에 만화를 보는 동안 독자가 가장 먼저 익히게 되는 것은 셰이크핸드 선수와 펜홀더 선수의 차이점이다. 어째서 펜홀더가 현대 탁구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지, 주인공은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지, 더 나아가서는 같은 그립 안에서도 제각기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 전형이 머릿속에 어렵지 않게 들어온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이 획득한 메달은 혼합 복식 동메달과 여자 단체전 동메달로, 개인전보다는 팀을 꾸린 경우에 더 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개인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쉽게 패한 신유빈 선수를 비롯하여 여자 단체전 선수들의 끈질긴 1:1 매치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펜홀더>의 등장인물들이 전력을 다해 보여주는 개인전 시합에 감동할 준비가 된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승리를, 배드민턴:
하마다 코스케 <하네배드!> (전 17권, 시프트코믹스)
배드민턴은 우리나라에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흔하게 즐기는 스포츠 중 하나다. 룰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고, 설령 몰라도 탁구와 마찬가지로 직관적인 구기 종목이기에 보다 보면 흐름이 눈에 익는다. 익숙하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번 올림픽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안세영 선수를 한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세영 선수가 보여준 것 같은 끈기 있는 배드민턴 경기를 기대하고 만화를 펼친 사람이라면, <하네배드!>의 초반부에는 필연적으로 실망하기 마련이다. 옛날 소년만화에서 볼 법한 서비스컷이나 스포츠의 열량을 담기엔 역부족으로 보이는 귀여운 그림체가 먼저 시선을 잡아끌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반 몇 권 이후부터는 그림체의 변화와 함께 승리를 향한 열정이 순식간에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하네배드!>는 스포츠물에서 클래식한 ‘재능과 노력의 대결’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지만, 그러한 주제나 전체적인 스토리에 앞서 경기 장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만화다. 배드민턴에 필요한 센스를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배드민턴만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며 귀엽게 눈물을 흘리던 주인공은, 단 몇 권 만에 승리에 대한 집념을 불태우는 선수로 변모한다. 그런 주인공을 비롯해 다양한 여자 선수들이 코트 위로 등장하여 서로 자존심을 건 시합을 펼치기 시작한다.
만화에서 시합에 임하는 선수들은 거의 광기에 찬 모습으로 그려진다. <테니스의 왕자>나 <썬더 일레븐>처럼 현실에서 불가능한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광기가 느껴지는 게 아니다. 시합에서 선수로서 드러내는 투지가 일정 수준을 넘어 광기로 나아가는 것이다. 3세트에서 상대를 농락하는 ‘악역 같은’ 플레이를 펼치는 안세영 선수의 경기 운영에 매력을 느낀 사람이라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로 ‘악역’을 닮은 선수들이 넘쳐 나는 <하네배드!>에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배드민턴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스포츠라고 한다면, 만화는 조금 색다른 맛을 보여주어도 좋을 것이다.
*이제는 패럴림픽, 그리고 LA 올림픽으로
올림픽이 끝나면, 정비 시간을 가진 후 패럴림픽이 시작된다. 패럴림픽은 장애인 선수들이 4년간의 노력을 겨루는 국제대회로, 우리나라에서는 17개 종목에 83명이 선수로 출전한다.
림을 가르는 철썩이는 소리, 휠체어 농구:
이노우에 다케히코 <리얼> (15권, 연재중, 대원씨아이)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리얼> (출처=대원씨아이)
1999년부터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부정기 연재중인 <리얼>은 휠체어 농구의 매력과 선수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노우에의 필치로 그려낸 매력 넘치는 그림과 연출은 물론, 농구 코트 안에서는 선수로, 코트 밖에서는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체험을 하게 되는 장면은 이노우에의 <슬램덩크>와 비교해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농구 코트로 가는 길은 <슬램덩크>에선 강백호의 지각 에피소드 정도에서 스치듯 지나가지만, 코트 밖에서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깊은 감명을 얻는다. 패럴림픽의 극복 서사를 넘어, 인간을 이해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4년 후, 다음 하계올림픽은 202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4년 후 돌아올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현재 주목할 만한 포인트가 있다면 바로 새롭게 추가된 종목과 부활한 종목들이다. 크리켓과 라크로스가 약 120년의 세월을 넘어 복귀하였고, 플래그 풋볼과 스쿼시가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 최고의 프로야구 리그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인 만큼, 야구와 소프트볼의 부활은 필연적이었다. 지난 도쿄와 파리에서는 제외되었던 야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어 돌아온다.
야구는 오래전부터 만화로 자주 그려지는 스포츠였다. 일본에서는 <거인의 별>을 비롯해 <H2>, <메이저>, <크게 휘두르며>, <다이아몬드 에이스> 등의 야구 만화들이 꾸준히 히트해 왔고, 한국에서도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대표되는 명맥이 다양한 야구 웹툰들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다른 스포츠 만화들과 비교했을 때, 야구 만화는 룰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인공의 포지션이 대부분 투수이기 때문에 야수들의 포지션과 그에 따른 역할에 대해선 잘 모르는 채 만화를 보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한국과 일본 모두 자국에 프로야구 리그를 보유 중이기 때문일까.
많은 야구 만화가 이미 야구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전까지 야구를 보다 쉽게 알아갈 수 있는 만화를 소개한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
돌석 <낫오버> (네이버웹툰, 연재중)
돌석 작가의 <낫오버> (출처=네이버웹툰)
<낫오버>의 주인공은 다른 야구 만화들과 마찬가지로 공을 던지는 투수와 공을 받는 포수다. 1화에서 두 주인공이 만나 경기를 하는 장면에서도 역시 포수 입장에서 바라보는 투수의 모습을 보이면서 두 포지션의 역할과 재능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한다. 그러나 투수인 주인공이 치르게 된 고등학교 야구부 입단 테스트에서, 감독은 포지션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동일한 테스트 내용을 거치게 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타격에 필요한 요소, 수비에 필요한 요소, 그리고 투수에게 필요한 요소를 순차적으로 알아가게 된다.
그다음으로 제시되는 테스트는 준비된 4명의 타자를 한 명의 투수가 상대하고 실점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만화는 투수가 어떤 생각을 거쳐 구종을 선택하고, 타자는 어떻게 공을 예측하고 타격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선수로서의 자질이 드러난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여러 야구 용어들은 분명 생소할 수 있지만, 만화를 보다 보면 야구라는 스포츠의 전체적인 메커니즘이 천천히 그리고 분명히 전달된다. <낫오버>는 독자에게 캐릭터를 전달하는 것과 스포츠로서 야구를 이해시키는 것, 두 가지를 모두 훌륭히 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화다. 즉, 앞으로도 야구와 관련해 펼쳐질 내용이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과거 부모님께 큰 상처를 받은 투수와 동료와의 갈등이 있었던 포수, 두 주인공이 어떤 배터리가 되어 시합에 임하게 될지도 기대해 볼 만한 포인트다. 막 시작된 <낫오버>의 연재를 따라가며 돌아올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전까지 야구와 한 걸음 더 가까워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