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흥행 성공한 '좀비딸'과 실패한 '전독시', 무엇이 달랐나
2025년 여름 극장가의 기대작, ⟨전지적 독자 시점⟩과 ⟨좀비딸⟩의 주말 성적 희비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좀비딸⟩은 첫 주말 116만명을 모아 183만명이 봤지만, ⟨전독시⟩는 관객이 3만명대로 급감하며 박스오피스 랭킹 5위권으로 밀려났고, 아직 100만명을 넘지 못하고 97만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좀비딸⟩은 손익분기점 220만 달성이 눈앞이지만, ⟨전독시⟩는 600만명인 손익분기점을 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 영화여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지 못한 ⟨전독시⟩
⟨전독시⟩가 부진한 데에는 팬덤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기대를 하고 보러 갔는데, 현실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작품이 '독자 시점'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작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지점을 변경했고, '이건 ⟨전독시⟩가 아니'라는 팬들의 말이 초반 큰 타격이 되었다는 거죠. 이런 이야기는 처음 티저가 공개되자마자 나왔습니다. 원작에서 이지혜는 '해상제독'을 성좌로 두고 칼을 쓰는데, 영화에서는 총을 써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을 생각하면 칼과 총이 무엇을 떠올리게 할지 분명한데요. 제작진은 '설득 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CG의 퀄리티나 액션에 대한 지적을 차치하더라도, 일단 기본적으로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나타나는 '독자'에 대한 해석이 가장 큰 문제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애초에 김독자는 이 작품을 혼자서 읽었던 사람이고, '전지적 시점'을 가지고 작품 속에 존재하며 때로 적극적으로 작품에 개입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설득이 충분치 않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물론, 영화라는 한계는 분명했을 겁니다. 영화에서 웹소설의 호흡으로 전달할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김독자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고, 따라가고, 그리고 마침내 공명하는 순간을 영화의 러닝타임 안에서 만들어주기는 어렵겠죠. 그렇다면 최소한 영화여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야 했는데, 그 답이 '여름용 블록버스터'라면 원작 팬들의 입장에선 '굳이 전독시여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될 겁니다.
그래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나쁘지 않은 오락영화'라는 반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오락영화'라면 굳이 극장에서 돈을 내 가면서 볼 이유가 없습니다. 이 폭염 속에 극장을 찾고, 극장에서 두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를 보는데 집에서 편하게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오락영화와 비교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굳이? 싶은 거죠. 팬들이 '굳이 전독시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전독시⟩가 아니라 '오락영화'의 입장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 영화라서 빛난 ⟨좀비딸⟩
영화는 극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점유하는 예술입니다. 관객이 '보기로' 결정했다면, 다음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입니다. 반면 웹툰과 웹소설은 독자의 능동적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보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독자의 마음입니다. 내가 읽고,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원작을 가진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미덕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건 전부가 아니죠. 비주얼만으로 이뤄진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좀비딸⟩은 '살아 숨쉬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선보였을 뿐 아니라,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뼈대를 훌륭하게 구현해냈습니다. 딸 수아가 좀비가 되고, 수아를 훈련시키면서 여러 위기를 겪고, 가족의 비밀이 밝혀진다. 이 가운데 '가족애'라는 키워드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죠. 원작이 가지고 있는 개그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해되는 컨셉을 찾아내는 것. 실제로 스튜디오N에서도 "우리는 각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라며 "원래 독자들이 가진 인식과 포인트를 살리고, 새로 보는 사람들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잡는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원작에 대한 존중이나 원작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라는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좀비딸⟩ 역시 원작과는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이를테면 아빠 정환의 직업이 다르고, 수아의 캐릭터도 원작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가장 뿌리가 되는 근본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이미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새로운 재미를, 원작을 모르는 사람도 빠져들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거죠. 더 보고 싶으면 원작을 보면 되고요. 영화를 보는 내내 웃다가, 울다가 관객들이 즐거워 하는 것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 원작을 존중하라는 말과 번역
'원작을 존중하라'는 팬들의 요구는 원작을 있는 그대로 살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원작에서 보았던, 즉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즐겼던 것을 살려달라는 의미입니다. 이를테면 ⟨반지의 제왕⟩은 각색이 아주 많이 된 작품입니다. 원작에서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가진 캐릭터들이 삭제되기도 했고, 몇몇 에피소드는 아예 나오지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의 제왕⟩이 위대한 영화로 손꼽히는 건, 원작이 가진 장엄한 비주얼을 잘 살린데다 캐릭터들이 가진 서사와 중심 메시지를 잘 살렸기 때문입니다.
원작을 그대로 살리라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본 경험을 다른 매체에서도 최소한 비슷하게 느낄 수 있게 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번역에서는 원천 텍스트의 경험을 독자들이 번역 텍스트에서도 똑같이 느끼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경험이 같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거죠. 그 '경험'이 달라진다면 당연히 원천 콘텐츠의 체험자들은 원작을 바탕으로 무엇을 했는지 묻게 됩니다.
결국 번역가에게도, 원작을 바탕으로 2차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건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입니다. 피터잭슨이 ⟨반지의 제왕⟩을 만들고자 했던 건 그가 ⟨반지의 제왕⟩의 덕후였기 때문입니다. 아주 깊게 이해한 콘텐츠를 텍스트의 세계에서 영상의 세계로 옮기고 싶다는 욕망이 명작을 만들어낸 거죠.
'원작을 존중하라'는 말은 당연히 '유명한 콘텐츠니까 그 덕을 좀 보자'는 마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유명한 콘텐츠라면 독자들이 깊게 감명받은 지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살릴 것이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죠. 이건 사실 모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진 숙명입니다. 그런데 유독 큰 자본이 투입되는 곳에서 원작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심지어 지금은 많은 사례들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사례를 수도 없이 만나게 될 겁니다. 그 안에서 성공하는 콘텐츠와 실패하는 콘텐츠를 보면서 발전이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주말 극장가의 승자는 ⟨전독시⟩에 비해 적은 자본으로 만든 ⟨좀비딸⟩이었습니다. 콘텐츠는 '얼마나 삐까뻔쩍하게 만들었냐'가 아니라, '얼마나 재미있게 만들었냐'로 승부하는 곳입니다. 그 바탕에는 '얼마나 작품을 잘 이해하고 있느냐'와 바꾸더라도 그것을 얼마나 잘 설득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잘 알아야겠죠.
번역과도 닮아있는 원작을 가진 콘텐츠 창작에서, 독자들이 느끼는 것을 어떻게 증폭시킬지 생각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겠네요. 사실, 15년 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성공에도 덕후들이 자문하는 시스템이 있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갈 방향은 아주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