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 디자인 일기 1: 만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뿅’은 뾰로롱의 자체 콘텐츠 중 하나로, 이름처럼 비교적 짧은 이야기들을 담는다. 앞으로, ‘뿅’에는 주 1회 주기로, 멤버들의 생동감 있는 문장들로 뾰로롱을 만드는 과정이나 관련 후기, 일지 등이 업로드될 예정이다. ‘뿅’의 첫 포문을 여는 글은 편집장의 디자인 일기 1편으로, 어쩌다 편집장이 뾰로롱의 잡지 디자인을 직접 맡게 되었는지 그 고단하고 재미있는 여정의 시작을 이야기하려 한다.


독립만화 아카이빙 ‘글’ 매거진인 ‘뾰로롱’을 만들면서 많은 순간이 소년 만화 같았다. 소년 만화가 떠오르는 순간은 매우 힘들거나, 성장했다고 느낄 때였다. 많은 사람이 알겠지만, 소년 만화는 동료, 모험, 액션 등을 키워드로 하는 신체적/정서적 성장물이다. ‘뾰로롱’을 통해 많은 성장을 했고, 단기간 많은 굴곡을 겪었다. 나는 뾰로롱의 편집장이자 디자이너 역할을 맡고 있다. 디자인과를 다녔지만, 매번 디자인하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뾰로롱 멤버를 모집할 때 디자이너 멤버를 구하고자 했고, 그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가 구하는 멤버의 조건은 ‘독립만화’를 좋아하거나 잘 아는, 출판물 디자인을 할 줄 아는 디자이너였고, 그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디자이너를 구하면서, 새삼 기획자인 INDEX 작가님이 너무나도 흔쾌히 요청을 받아주신 편인 것을 느꼈다.

창간호 발간 당시 원고는 어떻게든 정리가 되어가고 당장 누구라도 디자인해야 했기에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해야 했다. 편집디자인을 하면서 나는 대학교 4년 간의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이 기억났다. 조금 과장을 더 보태면, 처음 디자이너를 꿈꾸고, 가장 먼저 디자인에 배신당했을 때의 기억이 나를 뒤덮었다.

누군가는, “까짓거, 그냥 하면 되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정도의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부정해 온 깊은 이야기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정말로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작업하기도 했다. 단순히 디자인 툴이 어렵고, 기술 자체가 어렵기보다는 압박감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에 눈물 흘렸던 것 같다. 나는 나에게 매우 엄격한 사람이고 당연히 뾰로롱을 만드는 일에 관해서도 엄격했다.

게다가 디자이너를 구하는 데 여러 변수가 있었기에 멘탈이 좋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디자인 일을 하기로 한 당일에 예정자의 잠수로 좌절해야 했다. 그 디자이너는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고, 그렇게 베스트 프랜드를 잃고 몇 개월간 벙쪄있기도 했다.

창간호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가독성’이었다. 지금 보면 디자인적 측면에서 좀 어설픈 부분도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가독성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시중에는 예쁘지만 잘 읽히지 않는 잡지들이 많은데 우리는 그런 부분들을 지양하고자 했다. INDEX 작가님과 나는 만화책 단행본과 동일한 크기를 선택했고, INDEX 작가님이 그린 귀여운 무선 제본 잡지가 완성되었다.

운이 좋게도 26가을호부터는 SNS와 홍보를 담당하는 디자이너 멤버가 새로 생겼다. 새로운 디자이너에 대해서 이야기는 올해 초 공연에서 만나게 된 친구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같은 디자인과여서 공통점이 많아서 친하게 지내던 중 ‘이 사람이 멤버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이너 멤버에게 칸새나 하고싶은 만화전 루키즈를 같이 가거나 행사를 초대하며 독립만화에 관해 은근슬쩍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이전에 디자이너 멤버 자리에 대한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도 흔쾌히 허락받아 멤버로 함께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창간호 26여름호와 지금 만드는 26가을호의 지류 디자인을 계속 맡고 있다. 지류 디자인을 하면서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기거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학에 다니던 중, 아무도 나에게 디자인 감각이라든지 실력에 대해서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비난하던 사람은 오직 나였다. 예상치 못하게 뾰로롱 잡지를 만들고 판매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들었다. ‘레이아웃이 독특하고 예뻐요.’, ‘디자이너가 작업하니 역시 다르네요.’ 등등의 의견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어버버-하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덕분에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다. 창작자나 작업자로서 작업에 대한 자신감은 아주 중요하고 귀하다. ‘뾰로롱’의 편집장으로서 일을 하면서, 내가 그동안 누리지 못한 피드백을 받고 상처받았던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매우 고마운 일이다.

최근 내가 쓴 글과 작업에서 감성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다분히 감성적일 수밖에 없다. ‘뾰로롱’을 만들면서, 단기간 생각보다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뾰로롱’을 디자인하며 가장 친한 친구도 잃었고, 이리저리 부딪히고 상처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동료를 얻고 디자인의 감각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만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왜 이 고통스러운 일을 반복하냐고 묻는다면, 오직 그 마음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이 되지 않고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많은 걱정을 하지만 나는 낭만이라고 말하며 철없이 웃는다. 일단, 2026년 10월 초 현재의 작성 시간으로 나는 독립만화가 매우 재밌다.

이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디자이너 혹은 작업자들에게 바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온갖 고통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들여다보며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존경을 보내는 표현이다. 이번 디자인 일기 1에서는 개괄적인 ‘뾰로롱’ 디자인에 관해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디자인 일기 2에서는 정말 부딪혔던 일화들에 대해서 말해볼 것이다. 특히, 26여름호를 만들기 위해 비를 맞고 동대문을 돌아다녔던 일화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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