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 디자인 일기 2: 빗물 젖은 책을 보셨습니까?
‘뿅’은 뾰로롱의 자체 콘텐츠 중 하나로, 이름처럼 비교적 짧은 이야기들을 담는다. 앞으로, ‘뿅’에는 주 1회 주기로, 멤버들의 생동감 있는 문장들로 뾰로롱을 만드는 과정이나 관련 후기, 일지 등이 업로드될 예정이다. ‘뿅’의 세 번째 글은 편집장의 디자인 일기 2편으로, 편집장이 뾰로롱의 두 번째 책 『뾰로롱 26여름호 공간』을 내며 기획자 INDEX와 직접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쳤던 여러 가지 일화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뾰로롱 26여름호 공간』의 책 소개를 위해, 기획자이신 INDEX 작가님의 설명을 덧붙여 본다.
“독립출판만화 글잡지 뾰로롱 2호의 주제는 '공간'이다.
뾰로롱은 ‘공간’이라는 맥락이 가질 수 있는 대표적인 결들, 예를 들어 기호로서의 ’공간‘, 혹은 만화를 만들고 향유하는 물리적 현실로서의 ‘공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슨하거나 촘촘한 네트워크로서의 ‘공간’을 각 장의 머리말로 삼아 잡지를 구획화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뾰로롱 26여름호 공간』(이하 2호)의 디자인 일기를 공개한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드디어 공개할 수 있음에 웹 지면을 내어주신 SWI에 감사한 마음으로 적어본다.
*뾰로롱 편집장 김늪의 실제 일기
260317
오늘 처음으로 인터뷰가 아닌 다른 작가분과의 미팅이 있었고 부담감이 상당했고...결론적으로는 너무 잘 끝났다. 스탠다드하지 않고 쪼가 보이는 취향이 보이는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260331
일을 그만두려고 생각을 많이 했다. 그냥 뾰로롱도 그렇고 여러 가지 개인 작가 일도 말이다.
20260412
뾰로롱을 그만두는 것: 보류하기. 내가 만든 가족을 떠나지 말자. 떠나더라도 천천히 떠나보내자.
260430
뾰로롱 명의를 덱스(기획자 INDEX님 별명)님에게 넘기고, 나는 뾰로롱을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 뾰로롱 여름호 표지를 하고 있는데, 작가님의 표지가 멋지지만 그만큼 부담이 된다.
*그만두기를 그만두기
미야자키 하야오가 2001년 씨네21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애니메이션은 즐겁지 않다. 괴로운 작업이다. 38년간 애니메이션을 해왔는데,
그 삶을 돌아보면 드는 생각은, 힘이 들었다는 거다.”
주변 사람들이 잡지 만드는 일이 힘들지 않은지 물을 때가 많다. 사실 정말 힘들고 스트레스받아서 죽을 것 같다.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같이 일하는 INDEX 작가님께 여러 번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일기장의 몇 문장을 보면 알다시피 2호를 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지나갔고, INDEX님과 나는 정말 그만두려고 했다.
‘독립만화 씬에 아카이빙이 필요하지 않을까?’ 했던 한 줄기의 생각이 이렇게 커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이 글을 통해서, 디자인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내가 왜 그만두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돌아보려 한다. 왜 나는 그만두기를 그만뒀을까? 일기에 나오는 ‘스탠다드하지 않고 쪼가 보이는 디자인’의 책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상과 현실
2호의 디자인은 매우 중요했다. 3월 중순에 우리는 다른 작가분과의 이야기를 통해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동력을 얻었고, 무선 제본의 일반적인 디자인과 달리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했다.
INDEX님과 나는 ‘다이어리’ 컨셉에 맞춰서 아이디어를 폭발적으로 쏟아냈다. 가죽 표지의 다이어리, 표지가 천으로 되어서 앞표지가 비치는 책… 겉보기와 내용이 모두 좋은 ‘아트북’ 스러운 책을 만들고자 했다. 뾰로롱 인스타그램을 보면 이상한 릴스가 하나 있는데, 그 릴스는 뾰로롱 글자를 천 위에 인쇄하는 내용이다. 천을 구해서 그 위에 뾰로롱 로고를 새기고, 뒤의 표지가 비치게 하는, 고난도의 인쇄를 하고자 했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2호 디자인은 ‘폭신폭신한 질감의 다이어리’였고, 사양이 많이 높더라도 인쇄를 해보자고 했다.
뾰로롱에는 마스코트인 검은 고양이 ‘플루토’가 있다. 2호부터는 마스코트에 서사를 부여했다. 고양이 플루토가 이야기꾼 (독립만화 창작자)들을 만나며 여행을 떠나는 서사로 진행했다. 따라서 2호의 디자인은 플루토가 들고 다니는 여행책 및 다이어리 컨셉으로 출발했다. 여담으로 플루토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에서 따왔다.
*비 오는 동대문에서…
천 인쇄가 되는 충무로 업체에 가서 가안을 뽑았다.
업체 사장님이 천의 이름을 모르셔서 근처의 동대문 종합 시장에 갔다.
동대문 종합 시장에서 천의 일부를 들고 다니면서 이름을 묻고 다녔다.
친절하신 사장님이 천 종류를 알려 주셔서 천 가게에 가서 이름을 알아냈다.
아트북 전문 인쇄업체에 가서 이에 관해 직접 상담받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천으로 무언가를 할 수도, 아트북 전문 업체와 일하지도 못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모두 자금 문제 때문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업체를 찾고 찾다가, 하드커버 B6 다이어리 판형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할 수 있는 인쇄소를 찾아냈다. ‘다이어리 꾸미기(다꾸)’의 키워드가 있기에 INDEX님이 촘촘히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서 스티커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짧은 시기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들을 했나 싶다. 그리고 책 배송이 오면서 더 큰 일도 있었다.
*비, 땀, 눈물
이상하게 이번 2호는 ‘비’와 연관한 일이 많이 발생했다. INDEX님과 동대문을 돌아다녔을 때도 비가 죽죽- 내릴 때였고, 단순히 ‘장마철에 작업을 해서’라기에는 유난히 비가 오는 일이 잦았다. 문제는 인쇄였다. 당연하지만, 종이와 습기는 전혀 성질이 맞지 않는다.
당시 인쇄가 2주가량 걸렸는데, 인쇄가 진행되는 동안 내리 비가 내렸다. 하지만 천재지변 문제로 인해 인쇄 기간을 조정하기에는, 북페어도 있었고 텀블벅(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후원을 해주신 분들에게 일정 기간 안에 인쇄해서 전달해 드려야했다. 게다가 책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고생을 해야 하는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빗물 젖은, 책을 보셨습니까?
책이 왔을 때, 예상과 비슷하게 인쇄가 되었고, 정말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100부 이상의 책을 점점 하나둘씩 꺼낼수록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60%의 책이 높은 습도로 내지가 울어있었다.
INDEX님께 연락드리고, 동료 작가 친구에게도 연락하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인쇄소에 컴플레인을 넣었지만, 인쇄소는 인쇄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그 사람들이 포장할 의무가 전혀 없다고 발뺌을 했다.
나는 각종 유튜브와 인터넷 검색을 했고, 실리카겔(제습제)과 비닐 백을 사서 책 한 권당 하나의 실리카겔을 넣어서 종이가 다시 펴지길 기도했다. 인터넷에는 냉동실에 책을 넣어두면 괜찮아진다고 했지만, 우리 집 냉장고에는 100권 이상의 책을 가득 넣을 만큼 공간이 크지 않았다.
다행히도 1책 1실리카겔의 효과를 봤다. ‘빗물 젖은 책을 보셨습니까?’라는 제목을 붙인 까닭은 ‘눈물 젖은 초코파이 드셔보셨습니까?’라는 밈(Meme)의 활용이다. 군대처럼 고된 생활을 빗댄 이 밈은 우리의 즐겁지만, 고된 뾰로롱 생활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썼다.
*저는 아직도 만화를 많이 좋아합니다
뾰로롱을 만드는 일은 재미있다. 재미있으므로 그만두지 않았다. 이 글을 통해 쓴 2호를 만들며 겪었던 일들만 해도 스펙타클하지 않은가. 행사장에서 어떤 작가가 내게 와서 ‘뾰로롱에 나올 수 있게 작업을 열심히 하겠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에게 이 잡지가 그러한 마음을 갖게 했다면 나는 일정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당분간 그만두기를 그만둘 것이다. 한국 출판만화 업계에 한 획을 긋겠다는 포부 같은 것은 없다. 나는 그저 창작자들의 성장담을 담고 싶다. 아직 그러한 마음이 꺾이지 않고 있다. 매번 뾰로롱 잡지 ‘편집장의 말’에 쓰는 표현이 있다. ‘저는 아직도 만화를 많이 좋아합니다.’ 나는 만화를 많이 좋아하고,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반짝거려 보인다.
내가 하는 일의 의의를 묻는다면 ‘덕질 영업하기’에 가깝다.
“아, 한국에 독립만화 있어요! 있다고요! 잡숴봐 한번, 맛있다니까! 여태까지 이런 거 진짜 있었다니까요?”
내가 30살이 되기까지 1년하고 2개월이 남았다. 일단 1년 2개월간 그만두지 않을 예정이다. 뾰로롱을 하면서 어떤 사람에게 독립만화를 영업할 수 있을까,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어느 순간부터 내일은 또 무슨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는 모험가의 태도가 되었다.
가보자, 뾰로롱.
인용 출처: https://cine21.com/news/view/?mag_id=34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