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NFT는 또 뭐란 말인가 - SWI PREMIUM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NFT는 또 뭐란 말인가

이 모든 사건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비플'의 그림. 거래된 그림 중 역사상 3번째로 비싼 작품이 됐다.

코로나 이전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봅시다. 2018년 비트코인 ‘광풍’이라고 부르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비트코인 가격을 이야기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비트코인으로 직접 무언가를 살 수 있는 건 몇 가지 안 됩니다. 가장 유명한 건 전기자동차 ‘테슬라’를 살 수 있다는 것 정도죠. 실물가치와 교환할 수 없지만, 교환가치가 있는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한다는 점에서 암호화폐는 투자 대상으로 각광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평가가 완전히 갈립니다. “비트코인의 상승을 이끌어내는 건 내일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뿐”이라는 평가와, “투자자산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쪽의 주장이 팽팽합니다. 시장은 이런 평가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고, 이제는 다른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웹툰인사이트 프리미엄 칼럼, 오늘은 ‘투자’로 주목 받고 있는 아이템을 이야기해 볼 겁니다. 그런데 이제 암호화폐를 곁들인.

* NFT의 등장: 대체불가능 토큰이 뭐길래

또 희한한 걸 들고 왔습니다. 이번엔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으로 ‘예술품 거래’의 가능성이 있다면서 주목받은 NFT(Non-Fungible Token)이야깁니다. 우리에겐 비교적 최근에야 알려졌지만, 이미 2019년에 약 2억 5천만달러, 한국 돈으로 약 2,840억원가량의 거래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건, 이 시장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짤방이 6억 8천만원. 짤 함부로 쓰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최근에는 여기에서 볼 수 있는 ‘Nyan Cat’의 GIF가 6억에 팔렸다고 하고, ‘비플’이라는 활동명을 쓰는 작가 마이크 윈켈만은 5천일간의 드로잉을 모은 “매일: 첫 5천일”이라는 작품을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 달러(한화 약 785억원)에 판매해 실제 거래가 일어난 예술작품 중 제프 쿤스, 데이빗 호크니에 이어 세번째로 비싼 작품을 판 작가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NFT는 블록체인 상에 특정 파일의 소유권을 저장해 복제 불가능하고, 위조도 불가능하며,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값을 부과해 저장하는 암호 디지털 자산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특정 디지털 파일과 그 소유권을 전자지갑 소유자에게 부여해 블록체인 안에서 그걸 보증한다는 말입니다. 블록체인에선 시스템을 관리하는 특정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에 참여한 기여자 모두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블록체인에 기여하고 있는 모두가 보증인이 되기 때문에 별도의 ‘인증기관’이 불필요합니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와 NFT가 다른 결정적인 특징은, 바로 NFT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비트코인을 구매하면 ‘어떤’ 비트코인을 구매하는지는 의미가 없지만, NFT를 구매할 때에는 ‘어떤’ NFT인지가 매우 중요해집니다. 하나하나의 NFT가 개별적인 가치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NFT는 ‘토큰’ 자체보다 ‘토큰이 담고 있는 정보’를 구매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점에 착안해 NBA는 르브론 제임스 등 유명 농구선수들이 경기를 했던 장면 클립, 이미지 등을 NFT로 판매해 지난해 10월부터 약 4개월동안 2,6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기록을 소유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아까 보셨던 고양이 짤이 2월 중순에 60만달러에 팔리면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 그래서 이걸로 뭘 하나요?

그럼 이걸로는 뭘 하는데요? (<코미디언>, 마우리치오 카텔란, 벽에 바나나와 덕테이프, 2019)

사실 이런 질문은 예술품 소장에도 똑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 가스레인지 위 보다는 박물관이 어울리는 물건들을 개인이 소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죠. 현대미술에서, 작품의 가치는 아주 거칠게 말하면 ‘작가의 창의성에 얼마를 지불하느냐’로 결정됩니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하는 현대미술 거래의 대부분이 ‘경매’라는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돈을 내기로 한 만큼 가치가 부여된다’는 사례는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벽에 바나나를 덕테이프로 붙인 ‘작품’이 12만달러(약 1억 4천만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에디터가 벽에 바나나를 붙인다고 그게 팔리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트페어의 벽에 바나나를 붙여 작품이라고 부르기로 한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행위는 작품이 됐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게 의미가 부여되는 걸 ‘아우라(Aura)’라고 부릅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가 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 아우라는, 결국 작품의 역사적 맥락, 작가의 생애, 심지어는 이전 소유주와 같은 배경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현대 예술 거래에선 ‘프로비넌스’라고 부르는 일종의 증명서가 아주 중요합니다. ‘기원’으로 번역되는 프로비넌스는 작품의 역사적 맥락, 작가가 제작한 시기, 이전 소유주들의 기록, 전시되었던 장소와 같은 정보들이 적혀 있는 증명서입니다.

프로비넌스의 예시. 작가부터 제작년도, 이전 소유주 또는 소유 기관등의 정보와 현재 위치까지 기록한다.

그런데 이 프로비넌스도 위조할 수 있습니다. 히스토리 채널의 “전당포 사나이들(Pawn Stars)”를 보면, 증명서의 진위 여부를 두고 감정사를 부르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드디어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합니다. NFT는 ‘대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위조 역시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특정 NFT에 이 프로비넌스를 입력하면, 기존의 프로비넌스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NFT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당연히 NFT는 기존의 복잡한 구조를 상대적으로 단순화할 수 있습니다. 프로비넌스를 준비해 온 갤러리와 그것의 진위여부를 가려줄 전문가, 공증할 변호사 등을 선임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더리움을 구매하고, 그걸로 소위 ‘가스비’라고 부르는 수수료를 내는 등 우리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 보다는 훨씬 복잡하지만, 기존의 예술품 거래 보다는 훨씬 간편합니다. 그냥 NFT 토큰을 구매한 다음, 실제로 만나 진품 여부를 체크한 다음 해당 작품을 받아오면 됩니다.

???: 디지털 아트의 가치가 진품 때문에 떨어진다고?

더 급진적으로는, 아예 실제 작품 자체가 쓸모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트위터에서는 ‘불탄 뱅크시(Burnt Banksy)’라는 계정을 운영하는 인젝티브 프로토콜에선 NFT 토큰 판매를 위해 뱅크시의 그림 원본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실물과 디지털 아트가 같이 존재하면 실물의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물을 없애면, 작품의 가치는 NFT로 옮겨가 대체 불가능한 진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차피 그림은 인쇄가 가능한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NFT에 저장되니, 현실세계에 있던 ‘진품’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통해 오로지 NFT만이 진품이 된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오히려 진품 때문에 디지털 아트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그 맥락, 즉 프로비넌스에 적힌 정보에 값을 매기고 있다면 NFT 역시 진품이 없어도 가치가 있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이쯤 되면 머리가 어질어질 해 집니다.

* 그래서 NFT가 만화랑 무슨 상관인데요

자, 이제 웹툰과의 관계를 찾아봅시다. 웹툰은 애초에 디지털로 서비스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 의미에 가치를 부여하고 평가합니다. 초경쟁시장인 웹툰 시장에선 엄청나게 많은 팬들이 생겨나죠. 예를 들어서, <슬램덩크>의 “왼손은 거들 뿐” 이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을 내가 소장할 수 있다면? 또는, <마음의 소리> 1화를 내가 소유할 수 있다면? 이런 의문에서 NFT와 만화의 연관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웹툰의 역사를 내가 소유할 수 있다면? NFT의 가능성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런 게 팔리겠어?”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트위터의 CEO 잭 도시가 최초로 올린 트윗이 NFT로 250만달러(28억원)에 팔렸습니다. 그건 의미가 좀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누군가는 <마음의 소리> 1화를 자신이 소유하는데 돈을 낼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소유하는게 말이 되냐구요? 애초엔 땅 역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누군가 선을 긋고, 여기에 가격을 매기기로 하면서 '부동산(不動産, 움직이지 않는 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거죠. 진품을 불태우고 NFT가 대체 불가능한 진품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세계에선,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VR웹툰을 만드는 걸로 잘 알려진 웹툰 기술 개발사 코믹스브이에서는 NFT를 통해 VR 갤러리를 만들고, 작품의 특정 컷이나 일러스트 등을 NFT를 통해 판매해 수익금을 배분하고, 예술품 거래와 마찬가지로 재판매 될 때 수익금의 일정 부분을 원 저작자에게 돌려주는 갤러리를 만들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작품활동의 부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될 가능성도 생깁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디지털로만 만들어지기 때문에 ‘메타버스’라고 불리는 가상세계에서 오로지 ‘나만 볼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물론, 이런 시선도 한계는 있습니다. 수백억원을 호가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건’은 만에 하나씩 튀어나오는 천재들의 이야기고, 지속적인 작품활동을 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말하자면 아트바젤 마이애미의 벽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이는 것과, 에디터가 바나나를 붙이는 것과는 많은 차이만큼이나 큰 벽이 있다는 말이죠. 더군다나 애초에 만화는 원화가 있지만, 디지털 제작이 주류가 된 지금은 원화 개념도 드물고, 복제를 통한 다수의 소비가 기반인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이 오히려 NFT 거래의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만화 전체에 해당되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주류매체인 웹툰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다른 가능성: 대안 플랫폼과 NFT

주류매체인 웹툰은 ‘압도적 다수가 감상하는’것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렵다면, 독립만화는 어떨까요? 작가주의적 작품,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감상하는 만화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킹스오브레온이라는 밴드는 NFT로 앨범을 내서 2주간 200만 달러가량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앨범 가격은 50달러(한화 약 6만원)였다고 하니 한정판 패키지라면 나쁘지 않은 가격입니다. NFT를 통해 직거래를 해 수수료를 없애고, 팬들에게 그만큼의 특전을 더 챙겨주고 작가는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중개자인 플랫폼이 사라지니까요.


킹스 오브 레온의 앨범은 NFT를 통해 발매된 최초의 앨범이 됐습니다.

NFT는 결국 ‘탈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해 볼만 합니다. 네이버-카카오를 벗어나면 페이스북이나 같은 계열사인 인스타그램, 그것도 아니면 딜리헙이나 포스타입 등의 대안 플랫폼까지, 계속해서 플랫폼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작가들에겐 NFT가 대안 선택지로 주목받을 수 있습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들의 부가수입 뿐 아니라, 독립작품을 판매하는 용도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추가로 어떤 이벤트로 인해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딜리헙, 포스타입 등의 대안 플랫폼과 텀블벅 등을 통한 크라우드펀딩이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자리를 잡은 지금 상황에서, ‘탈 플랫폼’ 하나만을 위해 NFT에 진입하기엔 불확실성이 큽니다. 특히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독립만화일수록, NFT는 시도에 들어가는 비용과 알아야 하는 새로운 시스템 자체가 큰 장벽일 수 있습니다. 또한 NFT라는 시스템 자체가 가지는 맹점도 존재합니다. 현재 NFT 거래소인 오픈씨에서는 전자지갑으로 직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하고, 토큰 발행에 대한 증명등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적극적인 큐레이션을 할 주체가 필요하고, 가짜 거래를 통한 불법적인 상속 등 편법과 불법을 오가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한 얘기는 NFT의 현재와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가능성이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도전해볼 체력과 자본이 있는 곳부터 도전하고 있고, 일반인과 거리가 먼 곳에서 존재하는 것 같던 암호화폐와 NFT, 그리고 블록체인이 앞선 밴드 ‘킹스오브레온’의 사례처럼 대중음악 앨범 정도까지는 거리를 좁혔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거리가 가까워지다 보면, 개인 작가들에게 문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NFT는 예술과 예술의 한 분야인 만화에 ‘플랫폼을 벗어나 작가 개인이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눈여겨봐야 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도대체 NFT가 무엇인지, 그리고 만화와 웹툰 시장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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