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파이와 백신 음모론, 그리고 플랫폼의 책임 - SWI PREMIUM

스포티파이와 백신 음모론, 그리고 플랫폼의 책임

스포티파이의 CEO, 다니엘 에크

스포티파이는 전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입니다. 2021년 4분기를 기준으로 스포티파이의 이용자는 전세계 3억명 이상, 유료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1억 8천만명에 달합니다. 스포티파이의 월 결제액이 한국 기준으로 10,900원이 최소 이용료니까, 이걸 기준으로 계산하면 스포티파이가 유료 구독자에게서 걷어들이는 돈만 매월 2조원에 육박합니다. 2021년 스포티파이의 수익은 109억 달러, 우리 돈으로 13조 900억원에 육박합니다.

그리고 스포티파이는 지난 2020년 칼럼에서 에디터가 소개한 바 있습니다. ‘더 열심히 음악을 만들라’고 아티스트를 다그치고, 팬들과 소통해 접점을 넓혀서 스포티파이에서 더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하면, 지금처럼 많은 아티스트들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포티파이는 이번에는 아티스트와 싸웠습니다. 바로, 팟캐스트 때문입니다.

* 스포티파이의 지금을 만든 사업모델, 팟캐스트

에디터는 팟캐스터도 합니다. 그래서 스포티파이의 한국 진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스포티파이의 지금을 만든 건, 바로 팟캐스트였기 때문입니다. 팟캐스트는 오디오판 유튜브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팟캐스터들이 스포티파이에 방송을 업로드하면 자동으로 맞춤형 광고를 붙여 수익을 낼 수 있었고, 덕분에 무료로 방송하던 팟캐스터들이 수익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서버도 안정적으로 제공해준 덕분에 애플이 미적지근하게 대응하던 팟캐스트 시장에서 스포티파이가 엄청난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작년, 스포티파이는 신사업에 팟캐스트 광고 확대와 녹음, 편집, 후보정까지 모두 제공하는 서비스를 오픈하겠다고 알렸습니다.

이렇게 팟캐스트가 강세를 보이면서, DC의 배트맨을 활용한 오리지널 오디오 드라마 등 신사업으로 확대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팟캐스트는, 말하자면 스포티파이의 지금을 만든 사업모델 중 하나입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렇습니다. 2021년 2분기, 스포티파이의 팟캐스트 광고 수익은 627% 성장했습니다. 62.7이 아니라 627이 맞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돈을 쓸어담고 있는 거죠.

* 스포티파이의 오리지널과 닐 영

이렇게 돈이 되면, 당연히 스포티파이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겠죠? 앞서 언급한 배트맨 오리지널 드라마 외에도 다양한 팟캐스트에 돈을 말 그대로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미국의 코미디언 출신 팟캐스터 ‘조 로건’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 로건은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라는 팟캐스트를 만들기로 하고 1억 달러(한화 약 1,200억원)규모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스포티파이에 독점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가였습니다.

전직 코미디언이자 현직 논평가, 조 로건(Joe Rogan)

그런데 이 팟캐스트를 두고 ‘Heart of Gold’로 유명한 전설적인 뮤지션, 닐 영(Neil Young)이 ‘이 팟캐스트를 내리거나, 내 음악을 내려라’ 라고 스포티파이에 요구합니다. 바로, 조 로건의 팟캐스트가 미국의 안티 백신 운동에 힘을 싣는 백신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스포티파이는 이 요구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닐 영은 스포티파이에 자신의 음악을 서비스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 움직임에 일부 뮤지션들이 동참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 다니엘 에크 “우리는 책임 없다”

그런데 스포티파이의 CEO 다니엘 에크는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고, “조 로건의 방송에는 나도 동의하지 않거나 불쾌하게 여기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할 기회를 얻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자랑스럽지 못한 콘텐츠도 보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에크는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로건의 팟캐스트 청취자는 회당 1,100만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발언은 지난 2월 3일(현지시간) 스포티파이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타운홀 미팅에서 나왔습니다. 회사 직원들에게 다니엘 에크는 “우리는 발행인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면서, 해당 팟캐스트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책임은 아니니 돈만 벌면 된다는 메시지를 내보낸 겁니다. 당연히, 이후 스포티파이의 주가는 17%나 폭락했습니다.

그러자 닐 영은 아예 스포티파이의 직원들에게 “당신들의 영혼이 잠식되기 전에 그곳을 떠나라”고 말했고, 다른 뮤지션들에게도 “당신들의 창작물을 선보일 공간으로 스포티파이보다 더 나은 곳을 찾아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계속되자,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 부부, 영국 해리 왕자 부부 등 스포티파이에서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는 유명인들도 스포티파이와의 계약을 해지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문제가 여기까지 커지자, 결국 스포티파이는 조 로건의 최근 팟캐스트 에피소드 70건을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닐 영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다니엘 에크다. 그에게서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라면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364달러까지 올랐던 스포티파이의 주가는 지금 2018년보다 낮은 160달러대까지 추락했습니다. 돈을 벌려다가 돈으로 혼쭐나고 있는 거죠. 여기까지가 지난 1월 말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스포티파이vs닐 영의 논쟁으로 촉발된 사건입니다.

* 플랫폼의 책임이 정말로 없을까

그런데 우리는, 다니엘 에크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발행인이 아니라 플랫폼이다. 우리는 콘텐츠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정말로 그럴까요? 플랫폼에 연재하는 콘텐츠에 주는 돈은 어디서 나올까요? 스포티파이는 어떻게 조 로건에게 1억달러를 약속할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구독자들이 낸 돈이겠죠. 1억 8천만명이 내는 돈. 그래서 에디터도 스포티파이 정기결제를 해지했습니다. 지금까지 썼던 음악 플랫폼 중 가장 제 입맛에 맞았지만 어쩔 수 없죠. 안티백서를 위해서 돈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다니엘 에크의 저 말은 비단 다니엘 에크만이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 겁니다. 감히 입밖으로 꺼낼 생각을 못할 뿐, 다른 플랫폼들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최근, 한 스트리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시작된 가짜뉴스가 촉발한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그 스트리머는, 자신의 댓글을 관리하던 어머니가 1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올해 초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티백신이나 백신 음모론과 같이 세상을 해롭게 하는 콘텐츠뿐 아니라 소위 ‘사이버 렉카’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거기에 책임을 질 플랫폼, 여기서는 주로 유튜브에 대한 자성 요구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칼럼을 준비하는 동안 그 논의는 다시 뒤로 밀렸습니다. 가짜뉴스로 사람을 죽이는데 빌미를 제공한 유튜버는 120만 구독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웹툰계에도 비슷한 논의가 항상 존재했습니다. <복학왕>이나 <헬퍼> 논란이 그랬고, 악플로 연재를 중단한 작가의 사례가 그렇습니다. 그때 작가는 자신의 잘못이나 무지, 또는 몰상식에 대해 사과하고, 플랫폼은 ‘작가 관리 소홀’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플랫폼의 입장은 간단합니다. 콘텐츠가 내 거라면 책임을 지겠고, 그게 아니라면 책임질 수 없다. 이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모든 플랫폼의 공통 입장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넷플릭스가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넷플릭스가 책임을 집니다. 이 책임에는 콘텐츠에 개입하는 정도, 그리고 이후 소위 ‘망했을 때’의 리스크를 포함합니다. 유튜브의 경우 유튜브는 콘텐츠에 아무 권리도 없습니다. 대신 어떤 콘텐츠를 올려도 유튜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내 것이면 책임을 지고, 내 것이 아니면 책임지지 않겠다. 흠잡을 데 없는 비즈니스적 마인드죠. 그런데, 그 콘텐츠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100만명이 넘게 듣는 팟캐스트에서 백신 음모론이 사실인 양 떠들거나, 백만명이 넘는 곳에서 가짜뉴스를 떠들어서 사람이 죽게 만드는 일.

그리고 하루에 수백만명이 오가는 플랫폼에서 악플로 연재를 중단하는 작가가 생기거나, 주간 연재를 하기 위해 지금의 건강을 해치는 작가들, 경쟁에 지쳤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다니엘 에크의 말을 듣고 자신을 탓하게 되는 창작자들까지. 문제는 한없이 복잡하게 보입니다.

자, 간단하게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소득을 얻으면 세금을 냅니다. 에디터도 연말정산을 하고, 개인사업자들도 소득세를 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생각 해 봅시다. 플랫폼이 소득을 얻기 위해 창작자를 선별했다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플랫폼 사업자가 창작자들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랐던 것처럼, ‘콘텐츠에 개입해서 잘못될 가능성을 없애라’는 식의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돈이 되더라도 헛소리에는 헛소리라고, 악성 유저는 그래선 안된다고 선을 그으라는 거죠. 보호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다수의 평범한(또는 아직 나빠지지 않은) 사용자, 그리고 유독하지 않은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도 책임은 질 수 있습니다.

최규석 작가의 "송곳" 中

누군가는 이런 말을 ‘검열’이라고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걸 자정작용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백신 음모론, 가짜뉴스와 악성 댓글이 자라는 토양은 ‘그래도 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책임이겠죠. ‘법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이 최고선이 된다면, 그건 세상이 법가사상의 시대, 춘추전국시대로 돌아갔다는 얘기 같아서 조금 슬프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에서 수 백만, 수 천만을 넘어 이젠 억 단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랫폼을 운영한다면, 단순히 사용자를 떠나 '주류'로 자리 잡은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은 이 고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곳에서 기꺼이 사용료를 내고, 또 기꺼이 시간을 보내는 사용자들이 있다면 그 플랫폼은 존재만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니까요. 그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때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꽤나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 이런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겁니다. 플랫폼은 더 큰 돈을 벌게 될 거고, 우리는 그들에게 더 큰 책임을 요구하게 되겠죠. 그리고 아마, 플랫폼은 그 책임을 거부할 겁니다. 마치 다니엘 에크처럼요. 그 모습을 보게 되기 전의 신호를 한번 이야기해 봤습니다. 재미는 없지만 필요한 이야기라고 여겨지길 바라면서, 다음 칼럼을 준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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