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저런’ 작품이 1등을 하지?” 라는 질문 - SWI PREMIUM

“어떻게 ‘저런’ 작품이 1등을 하지?” 라는 질문

에디터는 만화평론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석에서 웹툰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왜 ‘저런’ 작품이 1등을 해요?’, ‘’이런’ 시장 지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구나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라 많이 받는 질문임에도, 받을 때 마다 새롭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좀 해봤습니다. ‘저런’작품이 1등을 하는 것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이런’ 시장은 어떤 지점을 중점적으로 고민해야 할까?

* 저런 작품 이런 시장

먼저 ‘저런’ 작품, ‘이런’ 시장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야 이야기를 풀어내 볼 수 있으니까요. 먼저 ‘저런’ 작품, 그러니까 상위권에 있는 작품을 말합니다. 상위권에 있는 작품의 특징은 ‘유행하는 장르’의 첨단을 달린다는 겁니다. 학원액션물이나 로맨스 판타지 같은 유행하는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런 작품’은 곧 유행하는 장르들 사이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시장’은 비슷한 작품들 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작품이 많은 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왜 ‘그런’ 작품들이 인기가 많은 걸까요? 그건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보기 때문이죠. 1등을 한다는 건, 독자들이 선택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1등이니까(끄덕). 우리가 궁금한 건, 왜 독자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가? 일 겁니다.

* 고인물 독자들의 불만

자, 다시 ‘저런 작품’으로 돌아가봅시다. ‘저런’ 작품이 1등을 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디터 같은 사람들이죠. 에디터 같은 독자들은 1) 작품을 아주 많이 봤고, 2) 그래서 장르의 규칙에 익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3) 새로운 경험을 주는 작품을 기대하게 되죠.

만화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은 주로 어떤 규칙을 가지고 극을 만드는 장르물의 특성을 가집니다. 특히 흐름이 빠른 현대 웹툰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장르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익숙한 독자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장르적 특성에 기대 ‘이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빠르게 치고 나가는 방법을 택합니다.

여기서 에디터 같은 독자들이 불만을 가지는 지점이 나옵니다. 장르적 특성에 기대 빠르게 치고 나가다 보니 어딘가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저런 작품이 왜 1등이야?’라고 말하는 에디터 같은 사람들은 콘텐츠 업계 고관여자, 소위 ‘고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고인물들의 생각을 살펴보기 아주 좋은 작품이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입니다. 에디터는 작년 10월 28일에 <오징어 게임>을 두고 “<오징어 게임>과 가장 비슷한 글로벌 흥행작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라고 적었습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타고 글로벌 인기곡이 된 ‘강남 스타일’과 넷플릭스를 타고 글로벌 흥행작이 된 <오징어 게임>이 닮은 꼴이라고 봤습니다. 작품 자체의 미학보단 달고나, ‘이러다 다 죽어’ 같은 밈이 유행했던 것도 ‘강남스타일’의 말춤이 유행했던 것과 닮은 꼴이니까요.

잘 만든 작품이지만, <오징어 게임>은 고관여자, ‘고인물’에겐 너무나 예측 가능한 클리셰로 가득했습니다. ‘여기서 저렇게 될까?’ 싶으면 저렇게 되고, ‘거기선 그렇게 되겠지?’ 싶으면 그렇게 되는 작품은 오히려 오랜만이라 흥미롭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본 시리즈로 등극했고, 하나의 현상으로 소개되는 흥행작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고인물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조금 다른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었어요.

* 고인물 독자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럼 이런 ‘고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고인물들은 말 그대로 본 작품의 총량이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여기서 고인물은 ‘한 작품을 깊게 판 사람’이 아니라, ‘한 매체를 섭렵한 사람’으로 보는게 좋겠습니다. 에디터는 2006년부터 웹툰을 보기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팟캐스트에서 300편이 넘는 작품을 리뷰했고, 그보다 더 많은 작품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자격을 논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많이 봐서 고여버렸다는 얘깁니다.

‘많이 보는’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꾸준하게 작품을 보고, 여러가지를 비교해가며 즐길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1) 작품을 많이 보고, 2) 장르 규칙에 익숙해지는데 필요합니다. 그렇게 작품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취향이 생겨납니다.

소년만화 클리셰를 활용한 '밈' 중 가장 유명한 '사슬낫의 제니'. 만화 독자라면 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요?

그런데 소위 1위-상위권 작품들이 주는 경험(또는 자극)은 장르적 규칙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고인물들에겐 이미 충분히 익숙한 경험입니다. 그래서 ‘왜 저런 작품이 1등을 하느냐’는 불만이 나오게 되는 거죠. 여기서 다시 ‘저런 작품’의 특성을 살펴볼까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빠르게 치고 나가지만, 장르적 규칙을 적용해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비어버린 공간을 익숙한 설정으로 메꿔 대중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에디터는 보고 있습니다.

자, 장르적 재미를 알게 되려면 일단 작품을 많이 봐야 합니다. 그럼 어떤 작품부터 봐야 할까요? 쉽고 빠른 작품,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보는 작품을 보는게 좋을 겁니다. 일단 시작하려면 인기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런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네, 지금 상위권을 차지하는 ‘저런 작품’들이 있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해 장르적 장치를 교묘하게 숨기고, 익숙한 요소들을 전면에 드러내 사람을 빨아들이는 무시무시한 흡인력을 자랑합니다. 그러니 장르 맛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매혹될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저런 작품’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건, 웹툰 시장에 ‘새로운 독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장르에 익숙해지기 위한 신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찾는 관문이 ‘인기작’이고,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고, 이미 많은 작품을 보고 있던 사람들에겐 ‘왜 저런 작품이 상위권에 있지?’ 라고 말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뉴비’ 독자들은 고인물로 가는 과정에서 많은 작품을 보게 되고, 그 과정에 있는 거죠.

*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

그럼 고인물들의 불만은 쓸데없는, 그냥 고여버린 사람들의 볼멘소리에 불과할까요? 이걸 생각해보려면 독자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매출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제작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독자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에디터가 관심을 가졌던 건, 결제율이 높은 회차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하는 겁니다. 그게 독자들이 바라는 것을 정말로 보여줄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니까요.

제작사들은 결제율이 가장 높은 회차가 보통 ‘다음 회차에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있는’ 회차라고 이야기합니다. 긴장감 높은 상황에서 딱 끊기는게 아니라, 싸울 상대가 보이고 나서 끊기면 결제율이 올라간다는 겁니다.

착시 효과로 유명한 그림. 누군가는 젊은 여성을, 누군가는 매부리코 노파를 본다.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독자들이 보고 싶은 바를 구현하는 것이 대중예술의 덕목이라고 한다면, 서사를 전개하면서 독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지점을 계속해서 구현하는 것이 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보고싶어하는 것’만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그걸 선정적이다, 포르노그래피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부릅니다. 단순히 성(性)적인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뿐 아니라 폭력성을 주로 맥락없이 ‘소비되기 위해’ 강조하는 것을 부릅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품성이 무너지게 됩니다. 독자를 중심에 놓고 작품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키를 잡을 선장이 없으면 작품이 무너지는 거죠. 바로 이 지점이 ‘뉴비 독자들을 키우기 위한 상위권 작품의 인기’를 그냥 긍정할 수 없는 지점입니다.

*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앞서 언급한 ‘작품이 서사를 전개하면서 독자들이 보고싶어하는 것을 보여주는 능력’이 실력이라고 한다면,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잡는 방법 역시 거기에 있을 겁니다. 작품을 비판할 때 ‘똑같은 작품들만 나온다’는 비판을 하기에 앞서 왜 똑 같은 작품들이 나오는지 살펴봤더니 독자에 대해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독자지상주의로 가면 되는 걸까? 를 고민해 봤더니, 작품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에디터는 독자들의 수준을 걱정하고, 독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해석이 나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는 선택하는 사람이고, 작품의 경쟁은 작품의 선정성이나 폭력성이 아니라 작품이 보여주는 웹툰 고유의 미학에서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웹툰을 읽는 독자의 취향이 세분화될 테니까요. 이건 말하자면 작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네이버웹툰이 작품 최하단에 제공하는 큐레이션 페이지(좌), 카카오웹툰 작품 감상 최하단에 제공하는 페이지(우)

그러기 위해선 독자들이 ‘인기작품’에서 벗어나 자기 취향을 기를 수 있도록 유도하는 큐레이션이 필요합니다. 네이버웹툰앱 iOS버전에선 최근 업데이트를 통해 ‘태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작가별 작품을 모아볼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기도 하고, 카카오페이지는 독자 반응을 모아 제공하는 AI키토크를, 카카오웹툰은 ‘장르 해시태그’와 ‘유사한 작품’을 추천해주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죠.

여기에 단순히 플랫폼의 기능만이 아니라, 독자들이 웹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향을 이야기하고, 작품이 준 감동과 의미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에디터가 일하는 웹툰인사이트가 고민해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겠네요.

‘인기작’은 새로운 독자들의 유입창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작품’을 보는 독자들이 취향을 기를 수 있도록 다양한 작품을 추천하고, 또 함께 이야기할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겁니다. 새로 들어온 독자들에게 따뜻하게 열린 공간 말이죠. 내가 감동받은 작품을 추천하며 ‘잡솨봐!’ 하는 게, ‘요즘 독자들은 쯧쯧’ 하는 것 보다는 매력적이니까요.

‘저런 작품이 왜 1등이야!’ 하면서 화내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들에 대해서 정리하다 보니, 웹툰계가 다음으로 나가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지점을 찾아낸 기분입니다. 오늘의 칼럼도 여러분에게 생각해볼 씨앗이 되기를 바라면서, 다음 칼럼으로 찾아오겠습니다.

PREM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