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 온라인 콘텐츠 관세를 들여다 본 이유 - SWI PREMIUM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 온라인 콘텐츠 관세를 들여다 본 이유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에디터는 학창시절 만화를 보려면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 보거나, 책방에서 발매일에 맞춰 신간을 구매해야 했다. 물론 그때에도 ‘스캔본’은 유행했고, 당시엔 그게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던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다. 합법적인 루트만 보면 만화책은 ‘실물을’ 구매해서 보는 방법이 거의 유일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보다 윗세대로 넘어가면 청계천이 주요 무대로 등장하곤 한다. 일본 만화를 사보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비디오 테이프를 구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불법적인 경로로 밀수되는 경우는 논외로 하고, 정식 경로로 판매되는 콘텐츠의 경우에는 ‘실물’을 번역하는 소요가 필요하고, 결국 국내 출판사가 해외 출판사로부터 판권을 구매해 국내 정식발매를 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별도의 작업을 거쳐 국내에서 생산해 판매하기 때문에 로열티를 제외하면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피규어나 프라모델 등의 굿즈는 직접 수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수입할 때 관세가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 관세가 뭔데?

해외 직구를 해본 사람이라면 ‘개인통관고유부호’를 받아본 적이 있을텐데, 이때 발행받는 ‘개인통관고유부호’ 역시 관세청에서 발행하는 개인 식별 부호다. 물건이 국경을 넘어갈 때 관세청에서 확인 작업을 거치고 일정 금액 이상에는 세금을 매기거나, 허위신고된 물건이나 마약류 등 법으로 금지하는 물건을 압수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기업과 기업이 거래할 때에도 마찬가지 작업이 이뤄지는데, 이렇게 물건이 국경을 넘을 때 매겨지는 세금이 바로 관세다.

관세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성곽과 같은 역할을 한다

관세는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발전이 필요한 국내 산업이 해외 산업에 잠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보호무역용 카드다. 최근에는 미중무역분쟁처럼 정치적 이유로 분쟁이 생겼을 때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건들에 관세를 인상했고, 중국 역시 보복조치로 미국산 물건에 대해 관세를 올려 전세계 경제가 출렁이기도 했다.

관세는 보호무역의 가장 기초적인 장벽이기 때문에 이를 없애기 위한 협상을 하는 것이 자유무역협정(FTA)다. 이 과정에서도 보호가 필요한 일부 품목에는 관세를 유지하거나 점차적으로 없애고, 우리가 유리한 부분은 바로 무관세로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협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특히 농산물과 관련된 부분이, 상대국에서는 자동차 등 공산품의 관세를 유지하고자 한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 왜 온라인 콘텐츠에 관세를 매기자고 할까?

문제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디지털 콘텐츠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10년대를 지나면서 스마트폰 보급률이 PC 보급률을 넘어서게 됐다. 시장 통계 전문 기업 스태티스타에서 추산한 전세계 스마트폰 보급률은 35억대로, 전세계 인구 중 사용자는 약 44.9%에 달한다. 아이폰과 앱스토어를 운영하는 애플이 앱스토어 수수료로만 벌어들인 매출액은 한국 돈으로만 67조원, 이 중에서 애플이 받은 수수료는 30%에 달하는 20조 3,800억원이다. 이렇게 ‘돈이 되는’ 콘텐츠가 디지털로 많이 몰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콘텐츠의 힘이 약한 국가들에서 ‘온라인 콘텐츠에 관세를 매기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KITA에서 파악한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 시장 전망. 디지털 시장은 코로나19를 만나고 압도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디지털 콘텐츠는 물리적인 장벽 없이, 즉 국경 없이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다 보니 세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이점이다. 여기에 그동안 콘텐츠는 ‘정식 발매’를 통해 사실상 관세와는 관련 없는 수입 창구를 거쳐왔다고 말했다.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에서는 전자적 전송, 즉 디지털 콘텐츠 수출입에는 무관세 선언을 했고, 그동안 별 이의 없이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이 선언이 이루어지던 20년 전 당시엔 디지털 콘텐츠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으니까. 말하자면 성장산업었던 디지털 콘텐츠가, 이제는 세계를 지배하는 공룡이 되면서 문제가 생겨났다.

2017년 WTO 각료회의에서 인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네시아가 제기한 ‘무관세 선언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갈수록 디지털 콘텐츠의 영향력과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저개발국 입장에선 고도로 발전한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자국 시장이 커질 기회조차 잡지 못하게 된다는 우려가 나왔다. 동등한 출발선은 아니더라도 ‘출발’ 자체는 가능해야 할 것 아니냐는 목소리다. 그러니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 적용이라는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 디지털 콘텐츠 관세, 현실적 어려움과 그럼에도 준비한 비장의 한발

관세를 매기는데 현실적 어려움도 분명히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우리나라에서 바라보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다. 아마존에서 출시한 OTT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국내에 정식으로 진출하지 않았지만, 한국 이용자를 막지 않는다. 지금 당장 가입해서 무료 혜택은 물론 월단위 결제까지 모두 즐길 수 있다. 심지어 많은 콘텐츠에 한글 자막까지 지원한다. 만약 국내에 수입되는 해외 콘텐츠 모두에 관세를 매기자는 주장이 이상적으로 작동하려면, 국경 밖 공해(空海)상에서 영업하는 이런 콘텐츠는 어떻게 될까? 여기까지 오면 다시 원론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디지털 시장에서 ‘국경’이 의미가 있을까?

따라서, 관세를 도입하겠다는 국가들의 선언은 최악의 경우엔 ‘정식 수입 루트’를 모두 차단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현실성은 낮지만,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내 콘텐츠가 위협받고 있고, 그와 연계된 산업들 역시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심지어 하필이면 이 때 코로나19가 덮치며 영화를 비롯한 ‘현장 소비’중심의 콘텐츠 산업은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그때 가장 큰 특혜를 본 것이 바로 넷플릭스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일부 국가들이 ‘관세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말하자면, 존폐 위기를 건 비장의 한발인 셈이다.

* 디지털 콘텐츠 관세 도입은 어떤 의미일까?

만약 디지털 콘텐츠에 관세가 정말로 붙게 되면 당연히 콘텐츠 시장의 수출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필름(또는 파일이 든 전송매체 등)이 실제로 넘어오기 때문에 관세 6.5%가 적용되고 있는데, 이걸 가정해서 한국무역협회(KITA)에서 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콘텐츠가 관세로 인해 입을 수 있는 손실은 2019년 기준 한화 139억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 특히 수출 규모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한국 콘텐츠는 가장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미중무역전쟁처럼 정치적 의도에 따라, 국가의 재량에 따라 관세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불안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이번 정부 들어 판로를 개척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시장은 이번 디지털 콘텐츠 무관세 철폐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 역시 향후 시장의 불안을 키우는 요소 중 하나다.

* 우리나라는 어떤 입장일까?

우리나라의 상황은 조금 복잡하다. 우리나라는 콘텐츠를 많이 수입하던 나라에서, 동시에 많이 수출하는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웹툰의 경우, 2020년 콘텐츠진흥원 만화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제는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수출국이 됐다. 물론 넷플릭스 등 해외 플랫폼의 콘텐츠가 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곤 하지만, 국내 OTT 플랫폼 역시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에겐 콘텐츠 제작 역량이 있고, 경쟁력도 갖췄기 때문에 무관세 원칙 유지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

물론 국가의 주요 정책사업 중 하나인 ‘신남방정책’은 인도, 인도네시아 등 이번 무관세 원칙 철폐를 주장한 국가들을 향하고 있다. 때문에 분명히 무관세 원칙 유지를 말하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콘텐츠 시장 상황이 ‘무관세 원칙 유지’가 유리하다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긴 어렵다.

관세와 관련된 내용을 들여다보며 정책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무관세 원칙 유지를 주장하면, 상대 국가의 우리 콘텐츠 규제까지는 받아들여야 협상이 진행된다. 우리나라 역시 넷플릭스법 등을 통해 해외 플랫폼을 규제하고, 우리나라 플랫폼을 지키기 위한 (부족하나마)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무규제로 진입하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긴 어렵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웹툰의 시각에서 '관세'를 들여다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지금 당장 우리에게 문제가 되진 않을지도 모른다. 전세계의 흐름과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실제로 대두될 확률은 높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데에도 고개를 끄덕이고, 해외 수출이 용이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에디터와 같은 사람들에겐 고민이 필요한 주제다. 과연 디지털 시대에, 물리적 국경이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국내 산업’을 보호할 수 있을까? 수입되어 정발된 책을 빌려 보다가 디지털로 다운로드 받는 삶을 살게 된 사람들. 물리적 국경이 중요하던 시대를 살다가 디지털 시대로 넘어온 우리에겐, 아직까지 너무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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