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에서 시작한 도서정가제 예외적용, 실상은 어떨까

대통령실에서 직접 도서정가제의 예외적 적용 여부를 묻는 국민토론을 열었습니다. 도서정가제 일몰기한이 다가옴에 따라, 장기 재고 도서에 한해 큰 폭의 할인율을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를 묻는 토론입니다.

대통령비서실에서 게시한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장기 재고 도서 자율할인 판매) 허용"(바로가기)에서 대통령실은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온, 오프라인 서점이 과도한 가격 할인율을 내세워 출판, 도서시장을 왜곡하는 문제를 방지하고, 중, 소규모 서점과 출판사들도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한다"고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독자가 보다 다양한 책과 유통경로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예외 없는 일괄적 규제에 따른 문제점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며 "장기간 팔리지 않은 재고 도서에 대해서도 가격 할인 폭을 10% 이내로 제한하여 악성 재고 도서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폐지값만 받고 처리하고 있어 소규모 영세서점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때문에 "지역 영세서점에 한해 일정기간이 지나면 장기 재고 도서의 자율적 할인 판매를 허용, 동네서점의 어려움을 덜어주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고 말하며 국민토론에 게시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1) 지역 영세 서점에 재고 떠넘기기?

하지만 장기재고 도서의 경우 서점에서는 반품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1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단행본의 반품 및 재생 실태 조사 연구"에 따르면 단행본의 반품률은 약 18.1%로 추정되며, 반품되는 책의 시장 규모만 1,918억원으로 추산됩니다. 이미 장기재고에 가까운 도서는 반품처리되고, 출판사가 이 도서의 처리를 맡습니다.

출처=출판문화산업진흥원 "단행본의 반품 및 재생 실태 조사 연구"

해당 연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반품 처리에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곳은 다름아닌 출판사들입니다. 출판사 155개, 지역서점 180개를 설문 조사한 결과 출판사의 54.2%가 '매우 문제 있다', 37.4%가 '문제가 있다'고 답변해 90%가 넘는 출판사들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출처=출판문화산업진흥원 "단행본의 반품 및 재생 실태 조사 연구"

이들 출판사들은 82.6%가 반품의 주된 사유로 도서판매 부진을 꼽았습니다. 또 그 다음으로는 매장 장기진열 도서 손상을 꼽았습니다. 이 외에도 과다 위탁, 배본주문 구조(58.1%), 배송중 손상도서 입고(52.9%)가 절반 이상이 꼽은 반품 사유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팔리지 않는 책을 과다하게 주문하게 되는 유통구조를 손봐야 하는 문제라는데 대부분의 출판사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겁니다.

출처=출판문화산업진흥원 "단행본의 반품 및 재생 실태 조사 연구"

반면 지역서점 180곳은 출판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분포를 보였습니다. 매우 문제있다고 본 곳보다 '문제있다'고 본 곳이 42.2%로 나타났는데, '매우 문제있다'를 더해도 54.4%로 과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전체 90%에 육박하는 출판사에 비해 절반 수준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출판문화산업진흥원 "단행본의 반품 및 재생 실태 조사 연구"

그렇다면 지역서점들이 가진 문제의식은 어떨까요? 지역서점들이 가진 반품 문제점의 대표적인 사례는 '매입처'의 반품 불가 조치가 74.5%로 꼽혔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매입처의 반품 처리(장부반영) 지연, 반품 규정 부재, 반품처리 비용 부담 순으로 꼽혔습니다. 매입처라면 결국 출판사나 총판 등의 거래처가 될텐데, 이들이 반품을 거부하기 때문에 반품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실의 말을 빌려 '인하폭을 크게 해달라'는 말은 있는 반품도 못하게 하니 차라리 염가에 팔게 해달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책은 입고가가 있습니다. 이는 보통 정가의 60~70% 수준에서 결정됩니다. 악성재고라고 해도 입고가보다 낮게 팔면 손해가 됩니다. 그런데 악성재고는 할인율을 크게 해야 하고, 결국 할인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만원짜리 책을 7천원에 들여온 서점은 30% 할인을 하면 남는게 없습니다. 그런데 판매하는 직원도 있어야 하고, 진열하는 등 인건비가 들어갑니다. 애초에 그렇게 할인해봐야 남는게 없이 손해만 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팔아야 한다면, 그건 정말로 재고처리, 즉 입고 없이 현금 융통을 위해 마지막 판매를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폐점 정리를 쉽게 해 주기 위한 제도라면 그건 어딘가 좀 이상하죠?

2) 콘텐츠가 아니라 당장의 판매고?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미 출판계가 알고 있습니다.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도서판매 부진이 상수라면 그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는 겁니다. 새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선 재능있는 젊은 작가들이 '갈만한 곳'이라고 생각해야겠죠. 그런데 최근 몇몇 출판사들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작가에 대한 존중이나 저작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아몬드>의 손원평 작가가 겪은 저작권 계약 없는 뮤지컬 사건이나, 신경숙의 표절 사건을 언급했다가 삭제 요청과 출간 불가 통보를 받은 장강명 작가의 사건, 고은의 복귀처럼 지상파 뉴스에 나온 굵직한 사건, 그리고 출판계가 내놓은 2차적 저작물을 전부 묶어놓고, 10년을 기간으로 하는 '표준계약서'까지. 지난 1년간 에디터가 굳이 찾아보지 않고 기억나는 건만 이렇습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 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답답합니다. 출판사가 콘텐츠의 질을 올리기 위한 노력보단 일단 눈앞의 이득을 챙기고자 하는 건 아닌지 염려되는 지점이죠.

출처=대한출판문화협회

사실 지역 서점의 입장에선 책을 열심히 파는게 본인들에게도 이득입니다. 그런데 팔아도 이득이 크지 않고 시장은 축소하는데, 반품까지 막아버리면 재고를 떠안으라는 말 밖엔 안 됩니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소명의식이 있어도 힘든데, 재고까지 손해 보며 팔라고 말하는 건,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 문화강국도 무너진다'는 표어를 걸었던 기개와 비교해보면 조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도서정가제를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닐 겁니다. 유통 개혁을 위해서는 정말 지난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본인들의 일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하기 싫고 어렵고 갈등을 빚게 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문제 해결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연구 보고서를 살펴보면 이번에 나온 내용과 대치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20년, 출판계는 동네서점과 작은 출판사가 사라진다며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재고를 할인해서 손해를 보더라도 현금을 융통하는 것이 어떻게 동네 서점을 살리는 길이 되는지, 에디터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실에서 올린 국민토론 페이지에는 사흘만에 850개에 육박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댓글은 '도서정가제 완화'나 '폐지'같은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제는 놔두고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 이제 그만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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