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카오루 내한 특집] <신부 이야기>, 19세기 중앙아시아로 여행하는 연출의 힘

〈신부 이야기〉, 〈엠마〉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 모리 카오루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습니다. 모리 카오루의 독특한 필치와 장인정신, 그리고 환상을 그려낸 아름다운 세계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SWI에서는 모리 카오루의 방한을 기념하여 ‘모리 카오루 내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모리 카오루의 대표작인 〈신부 이야기〉와 〈엠마〉, 그리고 모리 카오루라는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의 이야기를 만나볼 시간입니다.


모리 카오루 작품 <신부 이야기> 2권 표지. 이미지 제공 = 대원씨아이

한국에선 2010년부터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있는 모리 카오루 작가의 <신부 이야기>는 19세기 격동의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여러 부족 문화를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강대국들(특히 러시아)의 등장과 함께 전통문화와 신문물 사이의 갈등과 비극을 다룬다. 하지만, 작가는 결국 넓은 중앙아시아의 이곳저곳에 사는 각 부족의 신부가 된 사람, 신부가 될 사람, 신부가 되기를 고민하는 사람, 신부를 키워내는 사람, 신부가 되었던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고집스럽게 다룬다. 덕분에 부족 단위의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단절된 개인의 삶보다는 모두가 서로를 위해 직접 몸을 써서 해내야 하는 일과가 존재하는 삶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협력의 에너지와 공생의 에너지의 의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단절되어서도 대부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우리 현대인의 삶에 빠져 있는 에너지가 무엇인지를 뭉클할 만큼 체감시켜 주는데,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모리 카오루의 <신부 이야기>는 큰 의미가 되는 작품이다.


* 자연스러운 생활상 묘사로 발산되는 협력과 공생의 에너지

<신부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국가나 도시가 아닌 낯선 19세기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의 다채로운 문화를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출을 통해 생동감을 전하고자 노력한다. 이 이야기가 가진 첫 번째 힘은 바로 가감 없이 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연출이다. 예를 들어, <신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열두 살의 새신랑 ‘카르르크 에이혼’과 스무 살의 신부 ‘아미르 하르갈’ 부부의 생활을 보여주는 1권에서 신부 아미르는 아무렇지 않게 화살을 들고 들판으로 나가서 귀여운 토끼를 사냥해 온다. 그리고 유목민 출신의 새신부의 놀라운 사냥 솜씨에 유목을 포기하고 정착한 신랑의 가족들 모두가 놀라는 사이, 늘 있었던 일인 것처럼 아미르는 사냥해 온 귀여운 토끼의 배를 칼로 가르고 요리를 시작한다.

그뿐 아니다. 길 잃은 새끼 양의 주인인 우마크의 집에 양을 돌려주고 하룻밤 묶게 된 주인공 부부는, 천막은 금방 추워진다며 자연스럽게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서로 껴안고 잠을 청한다. 또 2, 3권에선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중앙아시아의 시장을 묘사하고, 5권의 쌍둥이 자매 라일라, 레일리의 결혼식이 펼쳐지는 ‘축하연(전편)’에선 신랑 측이 몰고 온 양 떼를 축제를 위해 어떻게 잡아야 양의 고통도 최소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때 부족의 남성들이 어떤 기도를 하는지, 그리고 숨통을 끊은 양의 껍질과 피부 그리고 장기를 어떻게 담는지를 젊은 세대에게 꼼꼼하게 설명하고, 그 재료를 받아 부인들은 축하연을 위한 요리를 만든다. 7권, 모든 것이 행복해 보이는 신부 아니스의 ‘결연 자매’ 편에서도 결연 자매를 찾고자 하는 아니스가 찾아 들어간 여성 공중목용탕의 모든 등장인물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상화된 시각이 아닌, 목욕탕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노출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보통 이런 장면은 등장인물 간의 감정의 극대화해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쓰이거나, 과잉된 감정을 연출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지만, <신부 이야기>에선 그들의 삶 속의 그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연출된다. 삶이란 그런 법이니까. 그리고 이런 연출은 1권부터 최근에 출간된 14권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이를 중앙아시아에 머물고 있는 유럽에서 온 백인 의사 스미스가 존재를 통해 좀 더 독자가 감정이입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도 독자에 대한 작가의 배려가 느껴진다. 독자가 소위 ‘제3세계’를 보며 느낄 놀라움과 생동감에 동의해 줄 익숙한 캐릭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는 <신부 이야기>의 체감을 위한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연출은, 독자로서 정말 빠져들 수밖에 없다.


* 배경보다 인물, 인물의 표정 묘사에 집중한 연출

두 번째 연출에 있어 흥미로운 지점은 새로운 장소의 시작을 배경부터가 아닌 인물의 얼굴로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 인물들의 미세한 얼굴의 변화를 점층 클로즈업해 들어가는 연출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가 소개하는 이 작품 속 이국의 특이한 문화를 체감시키는 것과 동시에 상황에 따른 인물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독자들이 체크해달라는 시그널이기도 하고, 또 결국 작가가 작품에서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언하는 연출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 하나의 챕터를 구성할 때 창작자가 꼭 독자에게 제시해야 하는 것으로 인물, 사건, 배경이 있다. 이것은 기본적인 재료로 이것이 독자에게 주어져야 작가의 의도대로 이야기를 따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창작자가 이것을 전달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제시하는 것은 바로 배경, 혹은 시대다. 배경이나 시대가 먼저 제시되어야 독자들이 이 이야기가 어떤 세계관 속에서 펼쳐질 것인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부 이야기> 1권의 첫 페이지는 이제 막 두꺼운 면사포를 들어 올린 아미르의 놀란 표정 한 컷, 그런 아미르를 올려다보는 열 두 살 카르르크의 놀란 표정 한 컷, 마지막으로 그런 두 사람의 묘한 교감 사이로 난감해하고, 불편해하는 주변인들의 얼굴이 한 컷 그려져 있다. 시대 혹은 장소를 알 수 있는 배경이 중심이 되는 컷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이 작품이 어떤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할 것인지 작가가 선언하는 것과 같은 연출이다. 만약 이 작품이 중앙아시아의 부족끼리의 싸움과 시대의 격랑 속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었다면, 중앙아시아의 드넓은 초원과 그 초원의 동식물 혹은 지배자의 땅, 국기, 부족의 영토 등을 보여주면서 시작했을 것이다. 싸움 후 1화가 시작되었다면 그 넓은 평야에서 전투로 죽어간 사람들을 먼저 보여주며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를 연출로 선언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부 이야기>는 그 중요한 첫 페이지를 아미르와 카르르크의 첫 만남 그리고 난감한 주변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이 작품 속에서 펼쳐질 앞으로의 이야기가 이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것이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연출을 통해 독자에게 보낸다. 그리고 모리 카오루는 14권까지 이런 기조를 최대한 지켜내고 있다. 같은 의미로 2권의 첫 도입부에서도 아미르라는 인물을 먼저 보여준 다음에 그녀가 향할 장소를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3권의 시작도 배경부터가 아닌 시장의 사람 얼굴부터 시작한다. 이처럼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 혹은 짐승을 포함한 살아있는 생명을 먼저 보여주는 방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극적인 효과를 위한 순차 연출’과는 달리 우리를 곧바로 그 현장으로 던져 놓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제3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생동감을 곧바로 전달하는데 탁월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같은 페이지에 점층으로 묘사되는 인물의 얼굴과 그 속에서 변화된 미세한 표정 변화 또한 이야기를 템포를 조절하고, 본인의 그림이 가진 장점을 살린 연출 방식이다. 만화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멈춰 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독자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감정을 통해 연기를 하며 읽어야 한다. 이는 곧 만화가 꽤나 소비자에게 참여를 요구하는 표현 도구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만화 서사의 전개에 있어 스토리라인의 개연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시그널이다. 이 시그널을 통해 독자가 어떤 감정이 들게 할 것인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물의 표정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모리 카오루의 수려함을 넘어선 그림의 퀄리티는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좋은 요소이지만 그것과 함께 큰 매력 포인트는 바로 등장인물들의 큰 눈과 함께 짓는 다양한 표정들이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때 표정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표정은 기술을 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또 성장하는 10대 캐릭터들이 주류를 이루는 <신부 이야기>에선 그 순간순간마다 주인공이 감정을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도구로 좀 더 중요하게 활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점층을 통한 표정을 변화를 한 페이지 속에서 반복해서 보여주는 방식의 연출은 본인의 그런 그림의 강점과 서사가 가능 지점을 잘 활용한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연출은 잘못하면 흔히 말하는 ‘대갈치기’(얼굴만으로 컷을 활용해 연출하는 것)이 되어 전체적인 미장센을 어지럽히게 될 수도 있는데, 모리 카오루의 노련하게 디자인한 출판 연출은 독자에게 이런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놀랍다.


* 주제와도 연결되는 세밀한 문양과 패턴

세 번째로 <신부 이야기>를 감상하는 분들이 가장 먼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부분은 바로 각 부족의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복의 디테일, 그리고 의복 위에 실제로 작가가 그렸을 숨 막힐 정도로 촘촘한 패턴 문양들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단순히 아름다운 포장지로 쓰이고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작품 연출에 큰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1권의 제1화부터 작가는 선언한다. 이 만화의 제목은 <신부 이야기>이고, 이 작품은 이 두 사람이 중심이 되어 흘러갈 것이며, 그런 그들을 불편하게 혹은 걱정스럽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그들이 속해 있는 세계관은 수많은 문양과 디테일한 장식을 통해 우리가 평소 보고 느끼는 세계와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문양과 패턴들은 단순히 작가의 취향에 맞춰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의 주제와도 연결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카르르크의 누나인 세이레케의 삼남인 꼬마 로스템의 경우 자꾸 마을에 건축 공예를 하는 아저씨를 찾아가 귀찮게 이것저것을 묻는다. 이때 파이프를 물고 건축 공예에 집중해야 하는 장인은 작업에 방해된다며 아이를 내쫓거나 하지 않고 묻는 질문에 대답을 차곡차곡 내어놓으며 로스템에게 건축 및 건축 공예와 관련된 내용을 전승한다. 그리고 이때 로스템의 표정은 매우 중요한 시그널로 쓰이는데, 그의 눈이 장인의 손으로 조각되어 있는 다양한 문양으로 향해있기 때문이다.

또 세이레케 가족의 장녀인 티레케의 경우 부족 문화에 맞춰 여성들은 수를 놓는 것을 배우는데, 그 소녀가 매를 너무 좋아해서 자꾸 매를 형상화한 자수만 놓는다. 그리고 세이레케는 그것이 걱정이었는데 어느 날, 증조모, 조모, 모녀가 모두 모여 앉아 자신들이 수놓은 자수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다양한 패턴의 무늬들을 티레케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속에는 6대 조모님이 만든 패턴도, 고조모가 만든 패턴도 있으며 언젠가 티레케가 놓게 될 자수의 화려한 패턴도 이렇게 남아 전승될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이처럼 작품에 등장하는 화려한 문양과 패턴들은 단순히 작품을 꾸며주기 위한 요소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주제를 우리에게 전달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로 연출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만화가 왜 매력적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공동체'와 '사람'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신부 이야기>

정리하자면 <신부 이야기>는 시집갔거나 가게 될 신부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19세기 격동의 중앙아시아에 사는 부족 이야기이고, 그 속에서 단절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뿜어져 나오는 협력과 공생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이것은 지금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극적인 배경부터 들어가는 연출보단 현장 속 사람의 얼굴에서 곧바로 장면이 시작되는 연출을 자주 활용하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승되는 과정 속 인물이 성장 혹은 변화하는 과정을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대와 문화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다양한 문양과 패턴들은 단순히 장식 혹은 작품의 포장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도구를 활용한 인물의 성장과 전승에 연결시켜 독자에게 하나의 큰 덩어리로 체감시키고 있다. 이런 지점에서 본 <신부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이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감성과 느낌을 체감시킨다는 점에서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효율성의 극대화가 주는 다양한 요소들로 우린 삶의 질을 높여왔다. 틀면 나오는 깨끗한 물, 주문하면 배달되는 양식, 대가를 지불하면 얻을 수 있는 옷과 물품, 아프면 찾아갈 수 있는 다양한 전문 병원과 또 그렇기에 생긴 여가 시간을 재밌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그 증거다. 그러나 이런 효율성이 우리에게 많은 이로움과 여유를 제공하는 만큼이나 잃거나 잊고 살게 만드는 것들도 있다.

유전자의 명령대로 “먹어라, 성장해라, 번식해라, 죽어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삶에 꼭 필요한 물은 틀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져 강과 호수 혹은 바다로 이어지는 사이에서 우리가 받아 마시고 있다는 것. 살아있는 짐승을 잡아 죽여야만 우린 고기를 섭취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은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도축해 부위 별로 정돈해 준 것이며, 그걸로 누군가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 그때 벗긴 가죽으로 만들 옷도 결국 누군가의 한 땀 한 땀이 모여 내가 입게 된다는 것. 이 이외에도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요소도 결국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로 발전해 왔다는 감각은 도시 사회, 특히나 표면상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 보이는 현대 사회에선 결여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혼자 모든 것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의 삶, 그 중심엔 자연과 인간 그리고 나와 우리라는 관계가 서로를 돕고 서로를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모리 카오루의 <신부 이야기>는 우리가 바쁘고 고독한 도시 사회를 벗어나 우리라는 공동체의 존중과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라는 존재에 관해 매우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2024년의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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