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카오루 내한 특집] 다녀왔습니다! (1) : 라이브 드로잉쇼
지난 일요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던 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 국제도서전에는 〈신부 이야기〉, 〈엠마〉로 유명한 모리 카오루 작가와 관련된 총 3가지 행사가 열렸는데요. 도서전 기간 내내 (1) 〈신부 이야기〉 특별 전시가 진행되었으며, 28일 금요일 오전에는 모리 카오루 작가의 (2) 라이브 드로잉쇼가, 오후에는 (3) 사인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미처 그날 직접 다녀오지 못한 분들, 다녀왔지만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서울웹툰인사이트가 직접 현장을 다녀온 후기를 생생하게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28일 오전 11시에는 모리 카오루 작가님의 라이브 드로잉쇼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디지털 작업을 전혀 하지 않고 오직 종이에 연필, 잉크와 펜만으로 섬세한 그림을 그리시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님이기에, 드로잉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는 이번 기회는 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는데요. 그 기대를 방증하듯 선착순으로 진행되었던 드로잉쇼 신청은 오픈 후 단 2분 만에 매진되었습니다. (프레스석을 마련해주신 대원씨아이에 감사드립니다..!) 드로잉쇼 장소였던 책마당은 다행히 오픈된 공간이라 신청하지 못한 사람들은 회장 바깥에 서서 관람할 수 있었는데요. 덕분에 시작 전부터 책마당 바깥쪽은 드로잉쇼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본격적인 드로잉쇼 전, 작가님은 무대에 잠깐 올라 드로잉이 화면에 잘 잡히는지를 위해 테스트 드로잉을 진행하셨는데요. 그 짧은 시간에도 그림을 2개나 그리셨습니다! 테스트 종료 후 퇴장하시고 기대감에 부푼 사람들이 하나둘 좌석을 채워가고 있는 가운데, 회장 안에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어딘가 그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이 쭉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게임 등의 OST를 담당하며 음악 감독으로도 활발히 활동 중인 양방언씨가 담당한 <엠마>의 OST들이었는데요. <엠마> OST를 트는 것은 작가님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서정적이고 잔잔한 음악 덕분에 드로잉쇼의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이 본격적인 드로잉쇼 전 테스트로 그리셨던 그림들.
그리고 11시가 되자 드디어! 작가님이 무대에 등장하셨습니다. 얼굴 공개를 원하지 않는 작가님의 요청에 따라 드로잉쇼의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었는데요.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작가님은 둥글둥글하면서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이날 작가님은 ‘일부러 <신부 이야기>에 맞춰 입고 오신 건가?’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에스닉한 패턴의 벽돌색 드레스에 볼드한 장신구를 매치하신 모습이었는데요. 실제로 Q&A 시간에 같은 질문이 나오자 작가님은 패턴이나 무늬를 좋아해 평소에도 이런 옷들을 즐겨 입는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드로잉쇼는 무대 위에 마련된 책상에서 작가님이 평소에 쓰는 원고용지에 일러스트를 그리고 카메라로 공중에서 수직으로 촬영해 스크린에 생중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도구들 역시 평소에 사용하는 펜과 연필, 지우개였는데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말문을 연 작가님은 “한국에 처음으로 오게 되었는데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티켓을 구하기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며 인사말을 건네셨습니다.
그렇게 드로잉쇼가 시작되었습니다.
무대 위 책상에 앉아 작가님이 그림을 그리시면 그 과정이 화면에 송출되는 방식으로 진행된 드로잉쇼. 사진, 영상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작가님이 등장하시기 전 무대 사진만 찍을 수 있게 허용되었다.
*드로잉쇼, 마법의 시작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회장에서 모두가 숨을 죽이고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와중, 무대 스크린에는 텅 빈 파란 재단선의 원고용지가 비춰졌습니다. 연필을 쥐고 용지 위에 슥슥 선을 그려나가기 시작한 작가님은 먼저 얼굴형을 잡은 다음 눈과 코, 그리고 입의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드로잉쇼에서 대체 어떤 그림을 그리실지도 기대감을 자아내는 요소 중 하나였는데, 눈매를 그리시는 것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미르구나!
놀라운 점은 연필로 세밀한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대략적인 형태만 잡은 다음 바로 펜선을 올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펜대에 앞뒤로 펜촉이 달린 펜을 들고 G펜과 마루펜이라고 설명하신 작가님은 아미르의 얼굴에 펜선을 덧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몸통은 아직 덩어리만 잡힌 러프 단계인 와중에 먼저 아미르의 생기 있는 눈동자가 또렷하게 생겨나고, 이어서 코와 입에도 또렷한 펜선이 생겨났습니다. 게다가 눈동자의 까만 동공 부분을 칠한 도구는 무려 네임펜이었는데요. 너무나도 친숙한 문구가 작가님의 섬세한 일러스트가 그려지는 데에 쓰이는 게 어쩐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드로잉쇼가 종료된 후 스텝분이 작가님이 사용하신 도구들을 정리할 때야 남길 수 있었던 화구 사진. 드로잉쇼에서의 드로잉은 작가님이 평소에 쓰시던 화구들로 그려졌다.
이 마법 같은 광경에 모두가 집중하고 있던 와중, 작가님이 입을 여셨습니다. “뭔가 얘기라도 하면서 그릴까요? 질문 있으신가요?” 원래 작가와의 대화 시간은 드로잉쇼가 끝나고 난 이후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드로잉쇼와 Q&A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관람객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어 모리 작가님께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고, 작가님은 하나하나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한 손으로는 마이크를 잡은 채 답변을 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시면서.
*가족 중 대표로 온 팬부터 메이드복 입고 온 팬까지.. 쏟아진 질문들
작가님께 직접 말씀을 전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관람객들의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높은 퀄리티의 원고를 제시간에 완성하는 비결은 잘 쉬고, 잘 먹고, 잘 운동하고, 잘 자는 건강관리이며 단행본 표지 일러스트는 작가님이 3~4개 정도의 러프를 그려서 가져가면 편집부와 논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또한 영향받은 만화가로는 <애플 파라다이스>의 타케모토 이즈미, <몽환신사> 시리즈의 타카하시 요스케, <스피릿 오브 원더>의 츠루타 켄지, <고독한 미식가>의 다니구치 지로 등을 꼽았습니다.
모리 카오루 작가님이 언급하신 영향받은 만화가들. 왼쪽부터 순서대로 타케모토 이즈미, 타카하시 요스케, 츠루타 켄지, 다니구치 지로
출판사의 제의로 초청받아 오게 된 것이라는 작가님은 이번 한국 방문이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래도 전날 먹은 냉면이 맛있었으며, 내일은 서점에 가볼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아직 <신부 이야기> 원화전 계획이 없지만 일본에서도 미술관에서 제의가 와서 하게 된 것이라며 제의가 있다면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드로잉쇼를 보러 온 사람 중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작가님의 팬이었거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서점에서 <엠마>의 표지를 보고 반해 <엠마>로 일본어 공부를 했다는 분, 가족 모두가 작가님의 팬인데 본인이 대표로 왔다는 분, 대학에 떨어지고 힘들었을 시절 작가님의 만화를 보면서 위로받았다고 감사 인사를 전한 분, <엠마>의 영향으로 안경을 쓰고 있다는 분, 오늘 행사를 위해 작가님이 좋아하는 메이드복을 구입해 입고 오신 분까지. 또한 작가님이 작년 단편을 실었던 잡지를 통해 건강 악화에 대해 고백한 바 있는 만큼, 작가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인 이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드로잉쇼는 훌륭했지만 통역만큼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특히 행사 초반에 관객의 질문이나 작가님의 답변을 옮길 때 의미를 잘못 전달하거나 디테일을 생략해 뭉뚱그려 말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입니다. 드로잉쇼에서 망설임 없이 슥슥 그어지는 펜선을 두고 ‘그릴 이미지가 머릿속에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지, 혹은 즉흥적으로 정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만화의 스토리를 정할 때’로 바뀌어 전달되었고, 이전 드로잉쇼와 오늘 드로잉쇼의 연필 길이가 다른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펜’에 대한 질문으로 오역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유적이나 유물, 문양에 대한 관심에 대한 물음은 ‘한국의 역사적인 장소나 인물’로 통역되었는데요. 이에 작가님은 스메라기 나츠키 작가의 만화에서 한국 문화를 접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암행어사를 소재로 한 <이조 암행기>를 보셨다고 언급하셨는데요. 그 외에 10~11세기나 조선왕조에 대해서는 흥미가 있긴 하지만 잘은 모른다고 덧붙이셨습니다.
동아시아의 다양한 전통복식을 그렸던 스메라기 나츠키 작가의 작품 중 조선을 배경으로 한 <이조 암행기>
작가님이 수많은 답변에 질문하는 동안 드로잉 역시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아미르의 왼손엔 활이 생겼고 이마를 덮는 천과 귀걸이도 형태를 갖추더니 그 위에 무늬와 장식이 하나하나 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무늬들은 정말로 아무런 밑그림 없이, 그러나 망설임 없는 펜터치로 하나하나 수놓아졌는데요. 보고 있자니 그림으로 한땀한땀 자수를 놓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머리 장식과 장신구에 세세한 무늬를 작가님은 별다른 참고자료를 보지 않고 그리셨습니다.
모리 작가님은 <신부 이야기>에서 배경이 되는 19세기 중앙아시아의 시대상과 관습, 문화, 의복을 하나하나 공들여 묘사하고, 후기 만화에서 직접 중앙아시아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고 밝히기도 하셨는데요. 그 당시에 대한 자료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데 어떤 자료를 참고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나마 러시아 쪽 자료들이 남아있어 사진집 등을 보고 있으며 박물관에 가서 사진을 찍어와서 참고하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타문화를 다루는 만큼 보는 사람이 해당 문화에 대해 좋은 이미지로 비칠 수 있도록 존경과 경의를 담아 그리고 있으며, 중앙아시아는 대부분 이동이 어려운데 우즈베키스탄이 개중 교통이 괜찮은 편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신부 이야기>의 애니메이션화나 실사화 계획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작가님은 본인이 직접 그리는 작품 외의 외적인 것들, 2차 저작권과 관련된 내용은 전부 ‘출판사’를 언급하셨는데요. 컬러 원화를 모아 큰 판형으로 내달라는 요청에는 ‘컬러 일러스트가 충분히 모이면 고려해보겠다’고 하셨지만 피규어를 내달라는 요청에는 다시 “그것은 출판사에…”라고 답하셨습니다. 2차 저작과 관련해 작가님의 의향보다 출판사를 먼저 언급하는 것에서 사뭇 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잠시 집중해서 그리겠습니다” “마감을 앞둔 기분이네요”
끊임없이 입과 손을 같이 움직이시던 작가님은 시간이 11시 50분을 넘어가자 ‘집중해서 그리겠다’며 잠시 질의응답을 멈추고 그림에만 전념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드로잉쇼만 감상하는 형태가 되자 모두 이전보다 더 집중한 채 화면 속 펜의 움직임을 함께 좇기 시작했습니다.
펜은 활을 쥔 아미르의 오른손, 그 손에 쥔 활, 그리고 옷의 긴 팔과 옷 주름과 뒷머리를 거쳐 갔습니다. 그리고 마카펜이 등장해 어깨와 옷 부분의 어두운 부분을 과감하게 덮었습니다. 자를 대고 직선으로 긋자 활시위가 생겼고 활에 음영과 디테일이 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연필로 길게 늘어진 목걸이의 형태를 잡힌 다음 그 위에 펜선이 얹어졌습니다.
모리 작가님이 그리는 선은 정확하지만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마치 그곳에 길이 이미 나 있는 것처럼 그저 쭉쭉 뻗어 나갈 뿐이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고 고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지만, 작가님은 드로잉쇼동안 이미 그은 펜선을 한 번도 고치지 않았습니다. 드로잉쇼 전체 시간 중 화이트를 사용한 것은 딱 한 번, 굵은 펜으로 넓은 면적을 칠하다 살짝 삐쳐나간 부분을 덮었을 때뿐이었습니다.
비록 이번 드로잉쇼는 촬영 불가인 탓에 과정에 대한 사진이나 영상이 남지 않았지만, 나탈리의 유튜브 계정에서 모리 카오루 작가가 밑그림부터 펜선, 스크린톤까지 일러스트를 완성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14년전 영상이지만…
게다가 모리 작가님은 휙- 휙- 하는 빠른 속도로 연신 선을 그었습니다. 이번 드로잉쇼를 보면서 작가님이 디지털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은 취향의 문제도 있겠지만 어쩌면 효율의 측면에서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방식은 수정도 간편하고 다양한 패턴과 모델링을 쓸 수 있는 등 많은 장점이 있지만, 평생을 펜과 종이에 그렸던 사람이 디지털로 작업 방식을 전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속도로 이런 디테일들을 즐겁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와서 디지털 방식을 익힐 시간에 손으로 직접 그리는 게 훨씬 더 빠르지 않을까요? 정확하면서도 빠르고 세세한 펜선의 움직임이 그저 경이로웠습니다.
그림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하고 약 10분간 말없이 드로잉에만 전념하던 작가님이 문득 뱉은 말. “지금 마감을 앞둔 기분이네요.” 장내에 웃음소리가 감돌았습니다. 손길은 아미르의 상반신 아래쪽으로 내려와 다시 간단한 러프 스케치 후, 화살 통을 잡는 오른손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위치한 화살깃에 세세한 선들이 추가되었고, 검정 사인펜과 더불어 네임펜이 다시 등장해 음영 부분에 거침없는 먹칠을 더해나갔습니다.
*감격의 드로잉 완성!
모두 무아지경으로 드로잉에 몰입하고 있던 12시 10분경, 작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한 5~10분이면 완성됩니다~” 그걸 들으면서 든 생각. '아니 벌써 완성이라고?'
먹칠한 부분에서 빛과 닿는 경계부에 펜선으로 세세한 명암선이 더해지고, 긴소매 위에는 불꽃같은 문양이 새겨지고, 땋은 뒷머리에는 명암과 머릿결선이 추가되고, 머리 두건과 목 그림자에는 명암선이 더해졌습니다. 그렇게 전체적인 디테일 정돈이 완료되고 난 뒤, 거대한 떡지우개가 등장하며 시작된 폭풍 지우개질! 연필 스케치를 다 지워내고 작가님이 지우개 가루를 털어내자 회장 안에는 이 경이로운 ‘쇼’를 목도한 사람들이 보내는 아낌없는 박수 소리로 가득찼습니다.
마무리로 작가님은 마카펜으로 멋지게 森薰라는 이름을 써넣으셨고, 왼쪽 아래에 작게 <신부 이야기> 후기 만화에 등장하는 귀여운 마스코트 콩알이도 그려 넣으셨습니다. 또한 그 옆에는 이 드로잉쇼가 치러진 날짜, 2024년 6월 28일도 새겨졌습니다. 작가님은 ‘작품 제목도 쓸까요?’ 하고 묻고는 우측 상단에 연필로 위치를 잡은 다음 <신부 이야기>의 원제 『乙嫁語り』도 써넣으셨습니다. 정말로 완성! 드로잉쇼를 통해 완성된 일러스트를 보면서, 이 원화는 대체 누가 갖게 되는 것일지 그 익명의 누군가에게 부러움이 솟구쳤습니다.
* 다시 재개된 ‘작가와의 대화’, 여전히 드로잉과 함께
예정된 드로잉쇼 종료 시각은 오후 1시 30분이었지만 아미르 일러스트가 완성된 시각은 약 12시 20분경이었는데요. 1시간가량 남은 만큼 다시 Q&A 시간이 재개되었습니다. 드로잉쇼를 Q&A와 병행하시며 진행한 분답게 “낙서라도 그리면서 할까요~”라고 하신 작가님은 이번엔 연필로 가볍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 그려진 건 바로 엠마!
작가님은 드로잉쇼에서 세밀한 무늬나 패턴을 그릴 때 아무런 참고자료를 두지 않고 마법같이 슥슥 그리셨지만 ‘외우고 있진 않다’며 평소에는 꼭 자료를 옆에 두고 열심히 참고하면서 그린다고 밝혔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을 그릴 때도 상상만으로는 그릴 수 없다며 꼭 참고자료를 보면서 그린다고 말했지만 ‘한 번 해볼까요’라며 즉흥적으로 말을 그리기 시작하셨는데요. 자료 없이도 훌륭한 말 그림이 완성되자 모두 박수를 보냈습니다.
차기작에 대한 것은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그리고 싶은 것은 많이 있으며, 현재 19세기를 그리고 있으니 그보다 더 오래된 시대, 한 10세기쯤을 그려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현대 일상물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품이 많이 드는 시대극을 그리는 이유로는 직접 본 적 없는 시대와 장소가 더 흥미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현대적인 요즘의 것들보다 옛날 것들이 좋으며, 스스로가 시대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이후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작가님이 말씀하신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는데요. 한 팬이 좋아하는 영화가 있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 “영상을 잘 안 봐서요”였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책과 만화만 보신다고… 질문자가 자기는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자 작가님이 “아! 웨스 앤더슨은 저라도 알아요. 많이 보진 않았지만.”이라고 말해 장내에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에디터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작가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질문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 손을 10번 넘게 들고 나서야 가까스로 질문할 수 있었는데요. ‘웹툰인사이트’인만큼 웹툰과 관련된 내용으로 질문했습니다. 한국은 물론 이제 일본에서도 웹툰을 비롯해 디지털 작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와 작가님은 앞으로 디지털 작업을 하실 의향이 없으신지를 여쭤보았는데요. 작가님은 종이와 펜으로 그리는 그림을 사랑하기 때문에 요즘의 흐름이 안타까우며 앞으로도 디지털 작업을 할 생각은 거의 없다고 답변하셨습니다. 게다가 사심을 담아 원래는 조르크를 그려달라 하려고 했으나 이미 조르크를 그리셔서 카르르크를 그려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회장 안 뭇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한 하르갈 3인방과 저의 요청을 듣고 작가님이 그려주신 카르르크&아미르..♡
캐릭터에 대한 질문도 여럿 있었는데요. 작가님은 <신부 이야기>의 캐릭터들 모두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들 즐겁게 그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아미르나 아제르는 좀 더 멋지게 그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반면 별생각 없이 간단하게 그릴 수 있는 캐릭터는 스미스라고. <엠마>, <셜리>, <신부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작가님이 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들을 넣어 만든 캐릭터이며, 본인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는 ‘파리야’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 익숙지 않아 우당탕탕했던 부분이 닮았다네요. 더불어 카르르크가 성장한 모습을 더 빨리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늦어졌다며, 곧 나올 거니 기다려달라고 하셨습니다. 기대됩니다 성장한 카르르크!
작가님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길고 긴 곡선이라고 합니다. 특히 여성의 곡선이 아름답다고 하셨는데요. 여성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있을 때 스스로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귀엽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귀여워~’라고 생각하며 그린다는 귀여운 일화를 전해주셨습니다. 또한 악역 캐릭터가 잘 등장하지 않는 이유로는 작품을 봐주는 독자들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기는 것은 슬프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그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드로잉쇼에서 그려진 신부들. 결연자매를 맺은 아니스&샤린, 그리고 14권에 처음 등장한 아제르의 신부 자한 비케.
여러 답변들에서 모리 작가님은 그림을 정말 사랑하시고, 그림 그리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사람이며, 아주 일관되고 확고한 취향을 가진 분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슬럼프가 있었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확답하시고, 요즘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어 ‘지금이 가장 즐겁다’라고 하신 점들이 그랬는데요. 또한 집중하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도 작업시간도 정하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작업하며, 요즘은 음악도 틀지 않고 가끔가다 커피 마시는 게 전부라고 답변하셨습니다. 마치 김연아 선수의 유명한 짤방 ‘(스트레칭할 때) 무슨 생각을 해…그냥 하는 거지’가 떠오르는 답변이었습니다. 메이드에 대한 사랑도 여전해 최근 있었던 즐거운 일로는 ‘잡지에 8페이지짜리 단편 메이드 만화를 그린 것’, 최근 심장이 두근거린 일로는 ‘메이드…’라고 답변하기도 하셨습니다.
아직 파리야를 그리고 있는 와중이었지만, 시간은 어느새 1시 반이 되어 행사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1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무려 10장의 연필 그림을 그리시고, 질문도 한가득 받아주셔서 이보다 더 알차게 진행될 수 없음에도 끝날 시간이 되니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만화가는 정년이 따로 없으니 건강 관리를 잘해서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겠다’고 한 작가님은 ‘다음에 또 올 테니 더 많은 사람들이 사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퇴장하셨습니다. 그 말 꼭 지키셔야 합니다 작가님!!
(2)편에서는 사인회와 전시회 후기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2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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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행사를 위해 무려 메이드복을 입고 드로잉쇼를 맨 앞 줄에 앉아 관람하셨던 분과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오늘 드로잉쇼를 직접 보니 어떠셨나요?
중학생 때부터 <엠마>를 좋아해서 작가님의 팬이 되었는데요. 상상 이상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작가님이 눈앞에서 실제로, 저와 같은 공간에서 드로잉하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는 말밖엔 나오지 않네요. 일본에서 하고 있는 <신부 이야기> 원화전은 못 가봤는데, 오늘 드로잉쇼를 보고 나니 꼭 가보고 싶어졌어요.
Q. 오늘 메이드복을 입고 오신 이유는?
모리 카오루 선생님이 메이드복을 정말 좋아하시기 때문에 입고 왔습니다. 정확히는 메이드복과 바니걸 의상인데, 바니걸은 입을 자신이 없어서 메이드복을 입었습니다. 저 또한 <엠마>를 보고 메이드복을 좋아하게 되었는데요. 이번 드로잉쇼 참가 신청에 성공하고 바로 오늘 입을 옷을 구매했습니다.
Q. 바라시는 게 있다면?
한국에서도 작가님의 원화전 전시가 열리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