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와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와난의 작품들. (출처=네이버웹툰)
흔히 청소년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청소년은 그저 ‘구실’일 뿐인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장르화 된 요소로 청소년이 쓰이는 경우다. 이를테면 학원액션물과 같은 장르에서 ‘진짜 청소년’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집이 없어>에는 나의 존재를,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으로서, 만화가 줄 수 있는 감동을 가득 느낀 ‘사람’의 고민을 느낀 우리의 마음에 깊이 파고 든 이 작품이 6년간의 연재를 마치고 완결됐다.
데뷔 16년차를 맞은 와난은 인터뷰 기록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의 작품뿐이다. 그래서, 와난의 작품세계를 모아서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 와난의 ‘가족’
<어서오세요 305호에!>, <HANA>, 그리고 <집이 없어>까지. 와난은 인간의 관계를 통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서오세요 305호에!>에서는 기존의 가족체계에 속한 김정현의 시선으로 작품을 풀어낸다. 그에겐 생경한 성소수자들의 세계, 그 안에서 ‘가정’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흔히 ‘정상가족’이라는 체계 안에서 살아왔을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키워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
김정현의 시선을 통해 홈(김호모), 쌍둥이 남매 오윤아와 오윤성, 백장미, 양주하와 같은 친구들의 상황을 지켜보는 ‘일반적’ 독자들은 김정현과 마찬가지로 정체성의 스펙트럼을 넓히며 세상을 ‘배워’ 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려지는 305호라는 공간은 와난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집’이라는 공간의 시작이다. <305호>에서 홈이 살고 있던 305호라는 공간은 홈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한 ‘일시적’ 공간이다. 일시적 공간은 도피처, 그러니까 ‘쉘터’로 기능한다. 잠시 위험-세상의 위협-을 피해 도망칠 수는 있으되 안식을 주지는 못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김정현이 들어오고, 오윤아와 오윤성이 거의 눌러앉아 살게 되면서 305호라는 공간은 이들의 ‘쉘터’에서 점점 ‘집’으로 변해간다.

<HANA> 188화 中 (출처=네이버웹툰)
비단 <어서오세요 305호에!>뿐 아니라 <HANA>에서도 와난은 주인공 ‘하나’와 주변인물을 통해 집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는 무라사키 연구소에서 실험당하던 피실험체였는데, 다른 피실험체 루비, 그리고 실험을 하던 연구원이던 허윤과 라라는 하나와 일종의 가족을 형성한다. 어른에 의해 상처받은 아이들이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도우려는 어른의 존재를 통해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188화 “그럼 됐어”에서 하나는 무라사키에게 “날 사랑해?”라고 묻고, 무라사키는 “…응, 사랑해..”라고 답한 다음 라라와 하나를 끌어안는다. 혈연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가족이다.
<집이 없어>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가족’이라는 테마를 활용하는데, 다양한 가족의 형태는 물론 혈연관계에 기반한 가족이 저지르는 폭력과 그로 인한 피해, 청소년기에 ‘집’, 즉 ‘가족’이 기능하지 못할 때 청소년들이 어떻게 방치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가족이 ‘과기능’할 때 청소년들이 어떤 상태에 놓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과정을 통해 와난은 가족의 형태에 대해 묻는다. ‘가족’ 형태를 벗어난 연대체의 형성,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사람들의 가능성을 작품을 통해 꾸준히 질문한다.
와난은 이 질문을 통해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공간은 변치 않지만 사람의 관계가 변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인물들을 그린다. 이를테면 김정현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홈을 받아들이는 과정, 하나가 연구소 사람들을, 연구소 사람들이 하나를 대하는 태도, 고해준과 백은영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누군가가 낯선 공간을 ‘집’으로 느끼는 과정을, 그리고 낯선 누군가가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 바탕에는 결국 이해와 사랑이 있다.

* 와난의 ‘공간’
와난의 작품에서 공간은 단순히 배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서오세요 305호에!>의 305호, <HANA>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허윤과 무라사키의 집, <집이 없어>의 제2기숙사는 모두 현실에서 도망친 주인공들이 만든 ‘도피처’ 또는 ‘쉘터’의 역할을 한다. 현실에 존재(또는 존재할 법)하면서, 사회가 규정한 ‘일상성’, ‘정상성’에서는 벗어난 위치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은 종종 ‘정상 사회’의 침범을 받고, 그 사회의 시선에선 ‘문제가 있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305호’는 일상의 공간인 아파트를 통해 ‘정상’ 사회 안에 이미 존재하는 소수자들의 공간을 그렸다. <HANA>의 10년 후를 그린 190, 191화에서 등장하는 무라사키의 집은 도시에서 벗어난 외곽에 지어진 주택이다. 인간에 의해 고통받은 존재들이 서로를 지지하는 독립된 공간이 <HANA>의 집이라면, <집이 없어>의 공간은 ‘학교 안’에 존재하지만 통제의 경계에 위치하고, 학교에 존재함으로써 가정의 폭력이나 과보호로부터 독립된 공간으로 존재한다.

와난 작품 속 공간들. <HANA>(좌), <어서오세요 305호에>(중), <집이 없어>(우)(출처=네이버웹툰)
노암 촘스키는 “인지 바깥에 있는 것은 미스터리, 인지의 범위에 들어온 것은 ‘문제’”라고 정의했다. 말하자면 ‘정상’ 사회의 존재들에게 이 공간들은 ‘미스터리’의 공간이다. 존재할 것이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지의 영역 바깥에 있는 공간이다. 와난은 ‘현실에 존재할 법한’ 공간을 그려내고 ‘정상’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와난이 던지는 질문을 인지 바깥에서 미스터리로 여기던 독자들에겐 인지 안으로 끌어들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난의 공간은 일시적이다. <어서오세요 305호에!>에서 정현과 홈은 격주에 한번 만나지만, 더 이상 같이 살지는 않는다. <HANA>에서 무라사키의 집은 마침내 모두가 만나지만, 그들에겐 각자의 삶이 있다. <집이 없어>에선 졸업이 이들에게 부여된 시간이다. 각자의 공간은 ‘영원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집’이다. 아일랜드의 소설가 더못 볼거(Dermot Bolger)는 저서 <저니 홈(The Journey Home)>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은 당신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스스로를 창조하는 공간이다. 설명할 필요 없이 마침내 당신이 되는 곳이다.”(“Home was not the place where you were born but the place you created yourself, where you did not need to explain, where you finally became what you were.”)라고 말했다.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스스로를 찾는 탐구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와난의 공간은 작품 속에서 ‘집’의 역할을 한다.

* 와난의 ‘시트콤적 서사’
와난이 연재한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는 혈연 관계를 벗어나 동질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만드는 연대체로서의 ‘가족’, 그리고 그 가족이 안온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 공간을 두고 여러 사람의 서사를 다루는 장르 중에는 시트콤이 있다. 시트콤은 특정 인물(또는 집단)이 특정한 공간 안에서 겪는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낸 장르다. 시트콤에서 인물들은 서로 오해하고 이해하기를 반복한다.

<어서오세요 305호에!> 1화. '시트콤으로 생각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출처=네이버웹툰)
이를 테면 와난이 1화에서 밝힌 것처럼, <어서오세요 305호에!>는 시트콤의 특징을 명확하게 지키고 있는 작품이다. 김정현은 홈을, 홈은 김정현을 오해하고, 오윤아와 오윤성 남매는 서로를 오해하는데, 이 모든 이야기는 305호에 찾아오면서 독자들을 만난다. <집이 없어>역시 백은영을 중심으로 다양한 오해가 갈등을 만들고, 그 갈등이 일시적으로나마 해소된다. 시트콤 역시 오해, 위장, 우연이 갈등의 주요 요소인데, 위 두 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인물간의 오해, 위장, 우연이 겹치면서 서사가 이어진다.

'프렌즈'(좌), '내가 네 엄마를 만났을 때'(중), '빅뱅 이론'의 공간들 (출처=각 시트콤 공식 홈페이지)
또, 시트콤에서는 제작과정 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간이 한정되는데, 이를테면 <프렌즈>, <내가 네 엄마를 만났을 때>, <빅뱅 이론>등을 떠올리면 연결되는 공간이 그렇다. <어서오세요 305호에!>와 <집이 없어> 역시 마찬가지로 특정한 공간을 두고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시트콤의 방식을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HANA>는 작품 속에서 공간을 배제함으로써 마지막에 도달하는 공간, 즉 무라사키의 집이 하나에겐 ‘집(Home)’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이용해 시트콤의 과장된 인물들이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만화적 재미를 더한다는 점도 와난이 시트콤적 요소를 더해 서사를 꾸려나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주간연재와 스크롤의 특성상 등장인물이 많아지면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시트콤적 서사구조를 통해 인물의 관계, 즉 캐릭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도 탁월하다.

와난은 가족이라는 테마를 통해 ‘정상’사회가 끊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소위 ‘천륜’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동시에 좌충우돌하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관계가 이뤄지는 공간에서 생겨난 인연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공간은 일시적이지만,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공간, 그리고 다른 어떤 설명도 필요없이 편안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한다. 와난의 인물들은 이 과정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이것이 여정의 종료를 의미하진 않는다. 김정현은 사회로 나갈 것이고, 하나는 신체의 성장을 통해 어른의 삶을 살아야 한다. 고해준과 백은영 역시 졸업 이후의 삶을 산다. 작품을 읽는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의 집이 되어줄 관계를, 그리고 나를 재창조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며 살아갈 것이다.
와난은 흔히 우리가 영원하길 바라거나 영원할 것이라 믿는 가족과 집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한 사람으로 홀로 서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집과 서로를 인정하고 지켜주는 관계로서의 대안적 가족을 이야기한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와난은 작품을 통해서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에게 ‘다음이 있다’고 말해왔다. 아름다운 시절이 끝날 수 있듯, 고통의 시간도 끝나고 마침내 우리를 다음 단계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정현, 하나, 해준과 은영처럼, 우리는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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