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위국일기〉 야마시타 토모코] 우리는 계속 고독하겠지만, 그래도
〈위국일기〉야마시타 토모코 작가님이 한국을 방문해 한국팬들과 사인회 및 독자와의 만남을 진행한 날,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을 내주신 작가님 덕분에 작가님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야마시타 작가님은 국내에는 〈위국일기〉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2005년에 데뷔해 현재까지 20권이 넘는 단행본을 발간한 다작 작가이신데요. 작가님의 첫 한국 방문이자 첫 한국에서의 인터뷰인만큼, 〈위국일기〉를 포함해 폭넓은 작가님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야마시타 작가님이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셨던 덕분에 에디터도, 작가님도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질문하고 답변했던 특별한 인터뷰였습니다. 인터뷰 후에도 작가님이 직접 한국어로 된 초안을 읽고 검수해주셨다는 점!
※ 인터뷰 질문 중 일부 질문이 독자 Q&A와 겹쳐 Q&A에서 답변해주신 내용을 인터뷰에 함께 담았습니다.
Q. 사인회와 독자와의 만남 자리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국 독자분들을 만나본 소감은 어떠신가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사인회 자체가 7년만이라 정말 오랜만에, 그것도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하는 사인회라 많이 긴장됐었는데요. 와주신 분들이 너무 열정적이고 잘 대해주셔서 정말 즐겁게 진행했습니다. 일본에서 사인회를 할 땐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한국의 분위기는 일본과는 조금 다른 점도 재미있었어요.
Q. 오늘 말씀을 전부 한국어로 하셔서 오신 분들이 많이 놀라워하기도 하고 기뻐하시기도 했는데요.
문법 공부는 독학으로, 대화는 최근 3개월 정도 한국어 학원을 다니며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사실 오늘 해주신 말씀들을 전부 다 확실히 알아듣진 못했는데요. 그래도 대략적으로는 알아들을 수 있어서 답변도 한국어로 해드릴 수 있었어요. 제가 한국어로 말하면 다들 좋아해주실 것 같아서 좀 노력했어요.(웃음)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던 <위국일기>의 결말, “저는 만족했어요”
Q. 이번 사인회는 한국에서 영화 <위국일기> 개봉을 기념한 것이기도 한데요. 작가님은 영화 <위국일기>, 어떠셨나요?
영화는 제가 직접 만든 작품이 아니니까 코멘트하기 조금 조심스러운데요. 배우분들이 정말 열심히 잘 해주셨더라구요. 특히 마키오 역의 아라가키 유이씨는 원작인 만화 <위국일기>를 영화화 예전부터 읽어주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작품과 배역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주시고, 열심히 해주신 것 같아 기쁩니다.
Q. 혹시 <위국일기>에서 처음 기획하셨던 것과 달라진 것이 있나요?
<위국일기>는 나이 차이가 많이나는 두 여성간의 연애 관계도, 가족 관계도, 친구 관계도 아닌 연결에 대해 그리고 싶어 시작한 작품이었는데요. 원래는 아사가 아닌 에미리 같은 캐릭터가 주인공이었어요. 마키오가 가장 먼저 만들어진 후 또 한 명의 주인공을 고민했는데, 에미리는 약간 마키오와 닮은 느낌이 있어 어려웠던 것 같아요. 마키오와는 많이 다른 인물을 만들면서 지금의 아사가 만들어졌고 아사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Q. <위국일기>는 전체적으로 특유의 섬세한 문장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인데요. 대사나 문장을 쓰실 때 특별히 신경쓰는 지점이 부분이 있다면?
다른 작품보다 특히 <위국일기>는 대사에 공을 많이 들여서 정말 힘들었는데요. 제가 전달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전달되고 독자분들이 오해없이 읽으실 수 있도록 정말 많이 신경썼어요. 가장 신경쓴 부분은 캐릭터들의 어휘인데요. 해당 인물이 가진 어휘의 범위 안에서 대사를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를테면 아사는 아직 어리고 갖고 있는 어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복잡한 감정이 있어도 ‘짜증나!’로 뭉뚱그려 표현되는 식인데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고민했어요.
Q. 한국에서는 <위국일기>의 완결권이 올해 초중순쯤 발간되었는데요. 결말에 대한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나요?
처음부터 어떻게 끝맺을지 대략적으로 생각은 해놨었어요. 아사와 마키오가 호칭이 정해지지 않은 관계에서 가까워지고,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대화가 담긴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는 정도로요. 중간에 이야기가 제가 생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간 적도 있는데 마지막은 생각한대로 잘 끝맺은 것 같아요.
실은 마지막 화만 총 60페이지로 다른 화의 약 2배 분량인데요. 쭉 한 호흡으로 독자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저도 한 호흡으로 그렸습니다다. 그래도 나름 마지막은 잘 그린 것 같아요. 저는 만족했어요.
<위국일기> 속 대입 성차별은 실제 사건, 화를 참을 수 없었다
Q. 작가님이 약 20년간 20편이 넘게 발표하신 작품들을 보면서 흐름을 크게 3 파트로로 구분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BL을 집중적으로 그리셨던 초반 ‘BL 시기’, 여자들의 내밀한 욕망과 심리에 집중하셨던 ‘여자 이야기’ 시기, 그리고 여전히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복합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계신 현재. 이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처음 데뷔 기회를 잡은 게 BL잡지였어요. 만화가를 너무 하고 싶어서 어디든 데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렇게 BL 작품을 진짜 많이 그렸어요. 열심히, 많이 일하는 게 제가 가진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림은 지금도 부족함을 느끼고 좀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마감을 지켜서 빨리빨리 그리는 건 잘하니까. 작품을 많이 그리면 많은 사람들이 봐줄 거라고 생각해서 정말 많이,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편집자가 『FEEL YOUNG』이라는 성인 여성 타깃의 순정잡지에 단편 작업 제안을 주셨어요. 여자들이 진짜로 생각하는 리얼한 감정들, 생활, 그런 것들을 그리면 좋겠다면서요. 그렇게 주변 친구들이나 제가 흥미롭게 본 것들을 써서 처음 시도한 게 <에보니 올리브>였어요. (*<미러볼 플러싱 매직>에 수록된 단편) 그때를 시작으로 BL 아닌 다른 장르, 여자들 이야기도 많이 그리게 되었어요.
이후에는 청년지 같은 데에도 작품을 하게 됐는데요. 지금은 장르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제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고 있어요.
Q. 요즘은 장편 시리즈 작품도 하시지만 작가님의 작품 중엔 단편을 엮은 단편집들도 정말 많은데요. 지금까지 발표하셨던 수많은 작품 중 유독 작가님께 뜻 깊거나 특별한 작품이 있나요?
저는 ‘사람들은 절대로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라는 주제를 엄청 좋아하는데요. 이 주제로 처음으로 확실하게 그린 작품이 <절망의 정원>(*BL단편집 <장미의 눈동자는 폭탄>에 수록)이라는 단편이었어요. 그래서 특별하고요.
그 외에도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들이 몇 개 있는데, 저도 왜 좋은지 이유는 잘 모르겠어서 독자분들도 ‘왜 이 작품을..?’이라며 의문을 가질 작품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작품의 대표같은 게 <언젠가 당신의 신비로운 가슴을>(*<미러볼 플래싱 매직>에 수록)이라는 가슴에 대한 단편인데요. 왠지 모르겠는데 마음에 드는 작품이에요.
Q. 고독, 사랑, 관계 등 작가님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여럿 있지만 저는 그중 하나가 ‘여자’와 ‘남자’라고 생각합니다. 성별이 해당 캐릭터에게, 혹은 작품 전체에서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은데요. 이 주제가 작가님께 특히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 스스로가 그다지 여성스럽지 않은 여성이라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러 이야기들을 읽을 때 슬프고 외로웠어요. 나 같은 캐릭터는 어디에도 없구나 싶어서요. 그리고 여자라서 받는 잔소리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귀찮은 것들이 있잖아요. (에디터 : 일본에서 ‘여자력’이라고 하는 그런거요?) 아 여자력…(주먹을 쥔 작가님) 그런 게 너무 싫어서 성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작품에 두드러지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한 30대 초반까지, 성별에 사로잡혀있었다고 해야할까요. 이 사회가 너무 남성중심적인 사회인데 그런 사회에 순응하면서 살아오느라 페미니즘에 대해 잘 생각하지 못했어요. 남자한테는 이런 여자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거나. 그래서 20대나 30대 초반까지는 작품에도 잘못된 생각이나 묘사를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조금 더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어요.
Q. 혹시 작가님께 인식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저는 해외 드라마나 영화도 많이 보는데요. 미국이나 유럽쪽 배우분들은 페미니즘 관련 활동도 활발하게 하시잖아요. 그런 걸 볼 기회가 많아지면서 ‘이런 말을 하는 배우가 있구나, 이런 생각, 이런 행동이 있구나’하는 걸 점점 깨우치게 됐어요. 같은 걸 좋아하는 친구들도 생기면서 ‘이 배우가 이런 활동을 하더라’하는 이야기도 나누고요. 일본에는 아직 이런 경우가 많이 없거든요. 그러면서 점점 더 의식하게 된 것 같아요.
(*작가님은 다른 인터뷰에서 폴 페이그 감독의 2016년판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를 보며 <위국일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히신 바 있다. 여성들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풍경이 좋다고 생각하셨다고. 출처 : https://ashita.biglobe.co.jp/entry/2021/10/11/110000)
Q. 작가님의 그러한 생각의 변화가 작품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조숙한 체형의 여성 청소년이 겪는 편견과 희롱, 차별을 다룬 <히바리의 아침>도 그렇고요. 특히 <위국일기>에서는 입시 성차별 문제를 상당히 직접적으로 다룬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중에서 치요가 겪은 의대 입시 부정은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에요. (*2018년 도쿄 의대에서 2006년 초부터 여학생 입학 수를 줄이기 위해 남학생들에게만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입학시험 점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치요는 제가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을 모델로 그린, 사회생활은 잘하지만 너무 어려운 상황에 빠져서 싸워야하는 그런 캐릭터에요. 당시 사건을 접하면서 화를 참을 수 없었고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기에 이 문제를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한국에서는 여성 창작자가 여성 문제를 작품 전면에 내세워 직설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큰 부담이 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이러한 고민은 없었는지, 있으셨다면 ‘발언할 용기’를 어떻게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있어요. 많이 있어요. 항상 '무섭다무섭다' 하면서 해요. 가끔 공격받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최대한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제 작품이 남는 게 뭔가 무서워서 싫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제 작품이 젊고 어린 사람들한테 좋은 것을 전달하고 무언가 생각해볼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섞은 작업과정, 잘먹고 잘 자고 운동한다
Q. 일본 출판만화계에는 디지털로 넘어가신 분도 계시고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분도 계신데요. 작가님의 작업과정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양쪽을 섞어서 작업하는데요. 밑그림은 아이패드에서 클립 스튜디오로 그리고, 펜선은 종이에 펜으로 딴 다음, 스크린톤은 다시 클립 스튜디오로 불러와서 입혀요. 너~무 귀찮은 과정이지만 그냥 이렇게 하고 있어요.
Q. 원고 작업하실 때의 하루 스케줄이나 루틴은 어떠신가요?
루틴 같은 거 없고 그냥 해요. 마감을 지켜야 하니까. 그래도 꼭 지키는 것들은 있어요.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힘나는 날은 운동하고요. 날마다 오늘은 몇 페이지씩 해야하는지 계획을 세우고 해요.
Q. 글, 그림 모두 하시는 작가님들은 글이나 그림 중 한쪽을 더 힘들어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님의 경우는 어떠신가요?
그림 그리는 건 그냥 몸을 쓰고 하는거니까 체력으로 노력하면 되는건데, 콘티는 노력해도 노력해도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날 수 있는지를 모르겠어요. 스토리를 짜면서 콘티를 그릴 때는 매순간 절망하면서 ‘어떡해…어떡하지…’하면서 씁니다. 무서워요…
Q. 스토리가 나와야 다음 작업들을 진행할 수 있는데 콘티 단계에서 막히면 정신적으로 쉽지 않으실 것 같아요. 콘티 작업은 보통 며칠 정도 걸리나요?
20대 때는 32페이지를 하루에 쓸 수 있는 시절도 있었는데요. (웃음) 그때는 진짜 체력이 있었어요! <위국일기>는 신경써야하는 점이 많아서 진짜 오래걸리는 편이었는데요. <위국일기> 마지막화는 60페이지였는데…(스마트폰의 캘린더 앱을 확인하시더니) 2023년 4월 7일부터 시작해서 3주반 걸렸네요. 그림 그리는 건 1주일 걸렸어요.
<삼각창의 밖은 밤>, 사랑 이야기만 하지 않는 BL을 그리고 싶었다
Q. <위국일기> 전작인 <삼각창의 밖은 밤>도 여러모로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가장 최근 BL작이자 첫 장편 BL이었는데요. 오컬트, BL 등 굉장히 장르적으로 시작해 장르에 얽메이지 않고 점점 확장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BL인데도 존재감이 뚜렷한 여성 캐릭터인 히우라 에리카도 재미있었고요.
<삼각창의 밖은 밤>(이하 <삼각창>)은 원래 단편 의뢰를 받아서 그렸던 1화짜리 단편이었어요. 그래서 뒷내용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이 제 마음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대로 쓴 거였는데요. ‘연재해보실래요?’라는 제의를 받아 연재 결정이 되면서 뒷내용을 구상하게 되었죠. 성애 이야기만 하지 않고 가족에 대한 애정, 좋은 어른의 존재 등 여러가지를 포함한 BL을 쓰고 싶어서 지금의 <삼각창>이 되었습니다. 히우라 에리카는 저도 진짜 재미있게 썼던 캐릭터인데 독자분들한테도 인기 많고 많이 사랑받아서 좋았어요.
Q. 관계없던 타인들끼리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삼각창>에서 말하는 주제의식은 <위국일기>의 주제의식과 닮아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모르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끼리 연결하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게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도 있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거나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위국일기>도 그런데 <삼각창>에서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더 많이 썼던 것 같아요.
Q. <HER>이나 <하나이자와 주민센터 소식>, 그리고 최근작 <위국일기>에도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데요. 그렇다고 ‘GL’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코드화된 창작물 속 여x여 관계가 아니라 현실의 성소수자 여성들의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장르적으로 다룰 때는 ‘모에(萌え)’가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설레는 거라고 해야할까요? 레즈비언을 다룰 때는 여성 이야기를 쓰는 입장에서 피할 수 없는 주제들이 있어서 더 생활 안에 있는 요소나 현실적인 것들을 담게 되는 것 같아요. 설레는 연애를 그리기에는 BL이 더 편한 것 같습니다.
Q. BL로 데뷔해 지금까지도 BL을 하시는 작가님께 BL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제가 설레고 즐거운 것을 하고 싶어서 BL을 했었는데요. 최근에는 제가 남성 동성애자 당사자도 아닌데 BL을 그리는 게 좀 어려운 점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아서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또 얼마전에 해외 독자분들에게 영어로 트윗을 했었는데, 어떤 독자분이 ‘선생님의 BL작품이 아시아의 퀴어인 제게 많은 힘과 도움이 됐어요’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BL을 쓰는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0%의 기쁨이 90%의 힘듦을 이기기 때문에 만화를 계속하는 것
Q. <위국일기> 완결 후 <슈가걸>이라는 단편도 하셨는데요. 다음 작품에서 다루고 싶으신 주제나 스토리가 있으신가요?
지금 당장은 아이디어나 그리고 싶은 스토리가 하나도 없어요. 어떡하지? (웃음) 그래도 사람들은 결코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서로 해소시켜줄 수 없는 고독이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는 몇번이라도, 앞으로도 계속 다루고 싶어요. 좋은 어른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하고 싶고요.
Q. 만화가 재밌지만 너무 힘들다고 하셨는데요. 그래도 계속 만화를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좋아하니까…힘들고 싫지만 좋아하니까… 재능이 있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지고 저는 재능이 없는 것도 같지만 제가 만화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90%가 고통이고 기쁨은 10% 이하인데 그 10%의 기쁨이 너무 세서 고통을 이겨요. 작품을 완성한 순간의 기쁨은 정말 한순간인데도요. 그래서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Q. 독자를 만나는 것도 그런 기쁨 중 하나일까요?
그럼요. 독자분들과의 만남은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고 진짜 큰 힘이 돼요. 오늘은 진짜 특별하죠. 진짜 기쁘고 재미있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사인회 자체가 오랜만이기도 한데, 해외에서 이렇게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있구나 싶어서 너무 좋았어요. ‘이런 이야기를 내가 들어도 괜찮은건가?’싶은 소중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저도 들으면서 울컥했던 순간도 많았고 영광이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한국 독자분들을 또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