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밤에는 산에 들어가지 말 것’, 만화 『밤산과 검은 춤』 제작과정기
독립만화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이 제작 과정기에는 '애정하는 걸림돌이'인 청소년기를 보내주는 이봄 작가의 시원섭섭한 시선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어떤 작업기보다 매력적인 『밤산과 검은 춤』 제작 과정기를 공개합니다.
만화 『밤산과 검은 춤』
2009년 여름, 한적한 작은 마을. 이곳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밤에는 산에 들어가지 말 것.”
마을에서 나고 자란 중학생 승연은 모두가 쉬쉬하는 이 규칙에 의문을 품고, 밤마다 산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승연이 산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
『밤산과 검은 춤』은 흔히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소속감과 소외감, 그리고 방치되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부터 시작한 만화다. 명확히 잘못을 가리기 어렵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상에 관하여 승연과 주변 인물을 통해 비유하며 표현한다.
책 정보
제목: 밤산과 검은 춤
발행일: 2025년 10월 31일
발행처: 까마귀 프레스
지은이: 이봄
표지 레터링: 우주영
가격:20,000원
페이지수: 240쪽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치유
만화 『밤산과 검은 춤』 제작 과정기
“밤산과 검은 춤”은 과정이 꽤 긴 작업이었다. 2020년에 처음 시작해서, 2023년 말에 도입부 한 권을 먼저 내고, 2025년에 나온 완결판을 내서 5년이 걸려 완성할 수 있었다.
첫 기획 당시의 “밤산과 검은 춤”(이하 밤산)은 이름도 달랐고 구성도 달랐다. 2019년인가 2020년쯤에 처음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나서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들은, 지금보다도 더 추상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 나열 위주의 방향성을 가졌고, 어떻게 보면 완전히 만화라고 하기보다는 그림책과 만화책의 사이 정도였다. 페이지수도 훨씬 적었다. 당시에 다각다각이라는 4인 창작 그룹에 속해 있었는데, 그때 팀원들과 같이 진행했던 웹진에서 밤산을 “어둠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잠깐 내보였다. 1년동안 달마다 한개씩 총 12개의 웹진을 배포하며, 마지막 달에 올렸던 원고 이후로 밤산을 오랫동안 그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밤산을 자주 생각했다. 해가 지날수록 그리고 싶긴 하지만 당장은 아니라고 느꼈고, 언젠가 때가 올 것이라 믿었다. 솔직히 대하기 어려운 작업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다른 책들은 상대적으로 편한 마음으로 제작할 수 있었는데, 밤산은 뭔가… 나한테 너무 소중했다. 애정 같은 것 때문에 이상한 완벽주의가 발동해서 내내 손을 못 대고 있었다. 그러다 2022년 말 즈음이 돼서야 용기가 생겨서 적어 두었던 시나리오를 다시 열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던 이미지는 기존에 “어둠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그려졌던 것보다는 더 구체적이고 재현적으로 구성된 것이었고, 이것들은 대부분 내가 청소년기에 보거나 겪었던 대상들이 짬뽕 된 모습이었다. 사실 처음에 밤산의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는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시나리오를 열었을 때, 아 나는 내가 경험하고 봐왔던, 청소년 때 느꼈던 원인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나 고립과 같은 것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음을 깨달았다. 배경이 2009년쯤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시절이 미묘하게 그립지만 동시에 언제 어디에 속하거나 튕겨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아래는 당시에 작업물을 다시 보며 적어놨던 글이다.
언젠가 경험한, 사소할 수도 있고 거대할 수도 있는 ‘어떤 일’에 대해 함구하고 잘 넘어간 듯 어영부영 넘어갔어도 그 응어리는 계속 가슴안에, 마음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그런 패닉 상태에 갇히게 만드는 것이 아닌, 나를 슬픔의 상태로 젖게 하는 정도의. 물이 반쯤 찬 유리병 안에 갇혀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이. 당시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엉키고 엉켜 결국 나중에 풀려고 할 때는 이미 풀 수 없는 지경이 되었거나 엉킨 상태로 방치해두고 삭히고 삭혀서 묶인 부분이 들러붙어 푸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주렁주렁 실에 달고 계속 새로운 실을 뽑아내는 것처럼…. -2023년 1월 10일 화요일
시간이 많이 흐르고 2025년이 되어서 밤산 완결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2025년을 그것과 끝장 보기로 대했던 기간이기 때문이다. 2023년이 끝나고 2024년을 보내면서 1년 내내 무엇을 하든 내가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 밤산을 끝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생각의 끝이 계속 밤산으로 향했다. 되게 괴로웠고… 그래서 2025년 내내 밤산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지냈다. 마침 루토 작가님께서 ‘하고 싶은 만화전’에 함께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고, 그것을 마감 기한으로 삼아 작업했다.
1월은 쉬었고, 2월부터 4월까지는 콘티를 완성했고, 5월부터 9월까지는 원고를 했다. (원고 완성 못할까 봐 엄청나게 두려워하면서 지냈다.) 10월은 부수적인 것들을 하며 책으로 만들었다. 작업하는 내내 정말 뭐랄까, 기쁘고 작업할 수 있어서 행복했지만 동시에 너무 괴로웠다. 기간 내내 계속 나를 다스리려고 엑셀 시트를 만들어서 매일 작업 시간을 체크했다. 하지만 놀기도 엄청 놀아대서 내가 기대한 것만큼 작업을 많이 하진 않았다. 아무튼 그래도 꽤나 도움이 되었고, 달마다 한 번씩 보고를 하듯이 시트를 캡쳐해서 올리며 일상 및 작업 기록을 블로그에 올렸다.
작업하는 기간에는 스터디카페(독서실)를 등록해서 다녔다. 트위터에서 어떤 작가님이 마감을 앞두고 원고 하실 때 스터디 카페에서 고군분투했다고 적으신 후기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떠올라서 나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일 잘 한 행동이었다. 원고 하는 동안에는 혼자 있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생각을 정말 많이 한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작업하는 데에 있어서 만화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나는 왜 만화가 하고 싶은 건지 이런 생각 같은 것도 하고, 240페이지 분량을 그리면서 나는 너무 긴 템포는 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이번 만화가 끝나면 다음 것은 보다 단편적이고 얇게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그랬다. 전부 나에게 도움 되기도 하고 오히려 과하게 생각해서 날 더 괴롭게 만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만화는 데드라인보다 여유롭게 완성했고, 원하는 종이에 원하는 컨디션대로 책이 나와서 만족했다. 여러모로 느낀 바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었다. 만화를 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내 만화를 보고 주는 코멘트나 이야기들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내 만화가 어떤 만화인지 나는 왜 이런 걸 낼 수밖에 없는지 같은 걸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답도 없고 내가 하면 그게 내 만화인 거니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만화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지금은… 일단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음. “밤산과 검은 춤”에는 5년의 마음이 쓰였다. 5년이라고 해봐도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내가 한편으로 계속 신경 쓰던, 애정하는 걸림돌을 드디어 보내줄 수 있어서 시원하다. 이제는 다음 작업을 위한 과정만 남아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