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6만명이 파업에 나서려고 하는 이유 - SWI PREMIUM

미국에서 16만명이 파업에 나서려고 하는 이유

얼마 전, 미국 작가노조 WGA(Writer’s Guild of America)가 파업에 돌입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죠. WGA는 여전히 파업중인데, 이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 배우노조(SAG-AFTRA) 역시 지지성명을 냈다는 말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그리고 6월 30일부로 배우노조의 계약이 종료되어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배우노조도 함께 파업하게 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60여년만에 처음으로 맞는, 작가-배우 총파업이 헐리웃에서 현실화되었습니다.

미국 배우노조는 2012년까지 SAG(Screen Actors Guild)와 AFTRA(Ameri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2012년 두 단체가 하나로 합쳐지며 SAG-AFTRA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두 단체가 합쳐진 이후로는 이런 대규모의 파업은 처음입니다. 이미 지난 6월 30일 미국 영화 TV 제작자 조합(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AMPTP)과 배우노조의 계약이 만료됐고,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면서 배우노조의 파업이 가시화되었습니다.

* 협상이 부진하자 나온 연판장, “적당히 타협하느니 파업”

계약 만료에 앞선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배우노조의 1천여명이 파업 촉구 연판장을 돌립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파업은 분명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다 줄 것입니다. 누구도 파업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필요하다면 파업을 불사할 것입니다. (중략) 지금은 중간에서 적당히 타협할 때가 아닙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역사의 눈이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와, 마땅히 누려야 할 안전망을 위해 모든 힘을 더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함께 역사를 만들어 주십시오. 만약 우리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WGA의 파업에 동참해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This is not a moment to meet in the middle, and it’s not an exaggeration to say that the eyes of history are on all of us. We ask that you push for all the change we need and protections we deserve and make history doing it. If you are not able to get all the way there, we ask that you use the power given to you by us, the membership, and join the WGA on the picket lines.”)

결의에 찬 이 파업 연판장에는 1천여명의 배우노조 조합원이 동참했습니다. 메릴 스트립, 제니퍼 로렌스, 데이비드 듀코브니(X-파일의 멀더로 유명한), 라미 말렉(“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 역), 밥 오덴커크, 샤를리즈 테론, 호아킨 피닉스, 제이미 리 커티스, 이완 맥그리거 등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이게, 바로 핵심이라고 에디터는 생각합니다. 업계의 얼굴과도 같은 대표주자들이 목소리를 내는데 두려움이 없고, 이익집단으로 협상에 나서면서 ‘역사를 만든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요. 여기엔 그만큼의 명분과 레거시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럼,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봅시다.

* “오뉴블” 7년간 재방송료 3만원, 폭발한 배우들

WGA와 마찬가지로 배우노조 역시 3년에 한 번 계약 갱신을 합니다. 계약 갱신을 앞두고 조건을 맞추기 위한 합의 테이블에서 AMPTP와 배우노조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따라서 27일 연판장이 나오게 된 거죠. 그리고 6월 30일, 기존 계약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우노조은 이미 6월 초, 5월 중순부터 이루어진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파업 여부를 묻는 투표에 들어갔습니다.

배우조합의 파업 찬성 비율은 97.91%, 약 98%에 달합니다. 만장일치라고 봐도 좋을 수준으로 파업이 통과됐습니다. 배우조합의 회원은 총 16만명으로, 1만 1천여명인 작가노조의 10배가 넘습니다. 또한, 배우 없이는 아무것도 찍을 수 없기에 이제부턴 진짜로 헐리웃이 멈춰버린 셈이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와 더불어 넷플릭스의 중흥을 이끈 작품인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2013~2019)(오뉴블)의 출연자인 일본계 미국인 배우 키미코 글렌(Kimiko Glenn)이 올린 틱톡 게시물이 화제가 됐습니다. 키미코 글렌은 해외 송출에 따른 7년간의 <오뉴블> 정산액을 공개했는데, 놀랍게도 해외 출연료는 27.3달러였습니다. 7월 10일 기준으로 3만 5천원 정도 되는 거죠.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 글 이후 배우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넷플릭스가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건 콘텐츠 때문인데, 콘텐츠의 해외 송출 비용이 어떻게 정산되는지 알 수 없어서 ‘주는 대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키미코 글렌이 공개한 영상에서는 두 장짜리 종이에 에피소드 이름과 정산액만 나열되어 있을 뿐, 어떤 과정을 거쳐 해당 금액이 산출되었는지는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아, 따로 제공했을 수 있지 않느냐고요? 넷플릭스는 이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요구에 ‘사업기밀’에 해당한다며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이죠?

* ‘편성권력’이 사라진 자리

물론, 이 데이터는 실제로 민감한 데이터일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경쟁자들이 등장한 상황에서 시청자 데이터를 공개할수야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럼 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가 주요 타깃이 된 걸까요?

1993년 7월 14일, 30년 전 TV편성표

그야 당연히, 돈입니다. 영화는 티켓 판매 숫자가 명확하게 나오고, TV는 케이블 채널의 유료 가입자수와 광고건수가 명확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광고비용의 정확한 액수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 중에서 비율에 따라 배우들에게 나눠주도록 계약한 계산만 지킨다면 명백하게 나올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편성’이 중요한 거겠고요. 실제로 일간지들은 TV 편성표를 게재했습니다. 이 편성대로 방송되면, 당연히 광고수익은 정해져 있으니 비율에 따라 나누는 게 어렵지 않죠.

하지만 스트리밍은 다릅니다. 편성표는 말하자면 ‘보여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면, 스트리밍은 ‘제공하는 대가’입니다. 따라서, 누가 얼마나 봤는지를 아는 건 플랫폼뿐입니다. 그러니까 계약을 하면서 애초에 재방송된 케이블 방송사의 유료 구독자가 얼마 안 된다면, 배우는 ‘얼마 안 됨’을 인지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넷플릭스 등 OTT의 경우 해외에서 얼마나 봤는지 실제와 기댓값을 아예 알 수 없다보니 플랫폼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편성’의 권력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데이터 관리라는 권력이 등장한 겁니다.

* “데이터를 공개하거나, 데이터를 믿을 수 있는 제3자에게 보여줄 것”

배우노조가 AMPTP에 요구한 내용은 명확합니다. 1) 시청자 데이터를 공개할 것. 또는, 2) 기업 기밀을 사유로 공개할 수 없다면 양쪽이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제3자를 고용해 시청자 수, 화제성 등에 대해 분석해 수치화 한 자료를 제3자에게 공개할 것. 3) 그리고 그 데이터에 따라 수치화된 평가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출연 배우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할 것.

사실 ‘어떤 데이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건 OTT의 입장에선 꺼려질 수 있죠. 어디까지를 공개할지 리스트를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고, 그 중에 고르라고 수집하는 데이터의 목록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민감정보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도 동의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데이터를 근거로 평가지표를 만들고, 믿을 수 있는 제3자에게 데이터를 공개해 이게 신뢰성이 있는지를 확인해달라고 말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미국 배우노조는 태평양 표준시 기준 자정, 그러니까 우리 시간으로 13일 오후 4시경까지 협상안을 가져오라고 AMPTP에 요구했습니다. 일단 이 시간까지 노조 지도부가 받을만한 협상안이 나온다 하더라도, 파업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해당 안건이 투표에서 부결될 경우 결국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WGA 파업 연대에 나선 배우들

게다가 이미 2개월간 WGA가 파업중인 상황에서, WGA에 파업 연대 성명을 수차례 낸 배우노조가 단독으로 협상안을 받아 파업 결의를 멈추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이러나 저러나, 헐리웃을 포함한 OTT 서비스는 역대 최대 규모의 파업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또다시 등장한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또 하나의 파업 이유로 등장했습니다. 배우노조의 연판장에서도 “배우들의 연기와 몸짓을 인공지능에 학습시키거나 입력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배우의) 특징이나 외모와 관련된 문제가 아닌, 보상의 문제기도 하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로그 원”이 만들어지던 시점에 고인이 된 캐리 피셔(레아 공주 역)를 디지털로 복원하거나, 이전 영화의 미사용본을 활용하거나(스타워즈 에피소드 9) 하는 방식으로 이미 ‘존재하지 않는’ 배우를 복원해 활용한 바 있기도 하죠. 거기에 CG기술을 생각하면, 단가가 문제지 기술의 문제는 아니었던 만큼 인공지능 기술로 단가가 획기적으로 떨어진다면 배우를 복제하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배우 본인의 초상권이 있으니 배우를 사용할 순 없지만, 이연걸이나 견자단 등 액션 배우들의 ‘액션’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다른 배우들의 얼굴과 몸에 무술을 합성한다면? 그때부턴 얘기가 좀 달라지겠죠. 바로 이런 지점을 막고, 최소한 사용료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게 배우노조의 입장입니다.

대부분의 기사에선 ‘인공지능 때문에 파업’이라고 이걸 주된 이유로 다루고 있죠. 물론, 인공지능이 꽤 중요한 이슈인 건 맞습니다만, 전체적인 파업의 구성이나 요구조건을 보면 사실 인공지능은 ‘주된 이슈’는 아니라는게 에디터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미국 연예 전문지인 버라이어티가 밝힌 배우노조의 협상 요구 목록만 40페이지에 달하거든요.

* 웹툰이랑 무슨 상관

결국 이건 헐리웃의 문제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WGA도, 배우노조도 마찬가지로 넷플릭스를 위시한 초거대 플랫폼에 개인 창작자들의 연합이 맞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체 40페이지에 달하는 요구사항 중에서도 여론을 환기시키고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포인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 그리고 대중을 생각하고 여론전에 나섰다는 점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입니다.

특히 ‘데이터를 공개하거나, 데이터 공개가 어렵다면 믿을 수 있는 제3자를 선임해 데이터를 공개하고, 수치화한 데이터를 근거로 보너스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도 웹툰계에서 눈여겨 볼 데이터입니다. 물론, 이미 정식연재작 등에서는 정산 내역을 공개하지만, 순위 산출 근거와 알고리즘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프로모션 역시 독자 선택에 따라 부스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 그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가능성도 논의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WGA에선 막대한 인지도를 가진 작가들이, 배우노조에선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수퍼스타들이 나섰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죠. 모든 작가가 헐리웃 최중심부에서 일하지 않고, 모든 배우가 주연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어떤 배우끼리는 사이가 좋겠지만, 그들과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특히 유명 배우라면 더 그렇겠죠. 그런데도 97%에 달하는 높은 찬성률이 나왔다는 점. 이 점이 바로 웹툰계가 주목해야 할 점이라고, 에디터는 생각합니다.

다른 게 프로 정신이 아닙니다. ‘판’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것. 내가 단기간 이익을 얻는 것 보다, 동료들이 지속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는 것. 그래서 이번 파업에서 ‘역사’를 꺼낸 겁니다. 배우노조의 가장 최근 파업이 바로 1980년 당시 신기술이었던 VHS, 즉 비디오테잎과 관련한 파업이었으니까요. 여기서 명분을 만들고, 실리를 챙기는 협상의 기술을 발휘하는 것. 에디터는 이 과정 자체가 웹툰계, 특히 작가 등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꼭 두 눈으로 보아야 할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역시, 헐리웃 배우들이 말한 ‘역사의 눈(Eyes of History)’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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