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웹툰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 SWI PREMIUM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웹툰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미지 출처=AP통신)

웹툰 시장은 글로벌 시장이라는 말, 계속해서 해도 부족함이 없을 말입니다. 국내 시장에서 그치지 않고, 콘텐츠 시장의 ‘뉴 챌린저(New Challenger)’로 도전하고 있는 웹툰은 이제 국제정세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콘텐츠가 됐습니다. 에이, 고작 만화가 어떻게 그렇냐구요? 지금 당장 엔화와 달러 환율을 보시죠. 엔화는 900원 초반, 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나듭니다.

해외 시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 시장은 환율이 낮고, 이제 개척해야 할 미국 시장의 환율은 높습니다. 특히 미국에 상장한 네이버웹툰은 달러 초강세로 인해 역대 최악의 엔달러 환율 격차가 벌어진 시대, 그리고 원화마저 약세인 지금 가장 큰 두 시장이 한국과 일본입니다. 환율의 영향을 받는 한국발 콘텐츠가 나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거죠.

그런 와중에 미국 대선이 끝났습니다. 한국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지지만, 대개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문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말이 이렇게 익숙해질 줄은 몰랐네요. 아무튼, 도널드 트럼프 2기가 들어서게 되면서 웹툰과 콘텐츠 분야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1. 저작권 관련 규제 완화 가능성

내년에 들어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초기부터 IP관련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사실 대선 레이스 전체에서 IP와 관련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주요 쟁점사항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해리스와 트럼프가 IP와 관련해 보여준 내용도 거의 다르지 않았죠. 그러니까, IP 정책은 어느 쪽이 되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만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관점은 조금 다를 수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트럼프가 당선됐습니다. 당선이 확실시되는 순간, “스타가 탄생했다! 일론머스크!”부터 보죠. 일론머스크는 X에서 무제한적인 데이터 수집을 위한 약관 개정을 통해 X에 업로드 되는 글을 모두 자신들의 인공지능 학습에 사용하겠다고 했죠. 이런 식으로 ‘무제한적인 인공지능 학습’의 길이 열릴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테크 기업(좌)와 전통산업(우)의 기부금 차이(출처=보로노이)

운용자산만 약 420억 달러, 한화 58조 8천억원에 달하는 벤처캐피털 안데르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는 이번 대선 레이스에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에 총합 5,300만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이런 대규모 대선 펀드를 ‘슈퍼팩(PAC)’이라고 부르는데, 안데르센 호로위츠는 미국의 암호화폐 규제 완화에 동조하는 슈퍼팩인 페어셰이크(Fairshake) 슈퍼팩에 기부했습니다. 안데르센 호로위츠는 AI 플랫폼의 저작권 침해 이슈에 매우 개방적일 뿐 아니라 음악 생성 인공지능 유디오(Udio)의 투자자이기도 하죠. 네이버웹툰의 앵커투자자인 블랙스톤 역시 일론머스크와 함께 1억달러가량을 공화당에 기부했습니다.

민주당을 지지한 구글은 인공지능이 출판물과 음악을 학습하고 수집하는 것이 공정이용에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글 역시 공식적으로는 1,23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지지 후보 여부와 인공지능에 대한 의견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거죠.

왜 갑자기 기부 이야기를 하느냐면, 이렇게 기부를 통해 로비를 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당선되었으니, 이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건 CEO들의 이야기고 빅테크 직원들은 압도적으로 해리스 진영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무튼, 인공지능 학습과 관련된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인공지능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원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일 겁니다.

2. 일본, 미국, 그리고 인도

트럼프는 또 다시 ‘보호주의 무역’ 기조를 가져올 겁니다. 이미 예고했듯 중국에 징벌적 관세를 매기게 된다면 중국과의 관계는 또다시 악화될 겁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내내 중국을 대신할 파트너로 인도를 점 찍어 두었는데, 이번 2기 행정부에서도 그 기조를 이어간다면 인도와 협력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인도가 꽤나 중요한 잠재력을 가진 시장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구 14억명, 전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지만 카스트 제도라는 약점을 안고 있기도 하고, 동시에 콘텐츠적으론 여러 언어 서비스를 동시에 해야 하는 국가라는 점 등 아직 극복해야 할 지점이 많습니다. 인도 시장은 대시툰(Dashtoon)을 비롯한 플랫폼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진 이렇다할 성과가 없습니다. 다만 전세계 10위권 규모의 콘텐츠 시장을 갖추고 있죠. 만화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4,950만 달러(한화 약 700억원)로 큰 시장은 아니지만,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에 따르면 웹툰 인기도를 따져보면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고, 유료 결제 의향 역시 절반이 넘는 응답을 한 국가로 잠재력은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오디오드라마, 게임 등 모바일 중심의 콘텐츠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 합니다. 그러나 인구는 많지만 언어권이 다양한데다, 아직까지 구매력이 높지 않다는 점은 디메리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14억 인구는 매력적이고, 또 스마트폰 보급률이 70%를 넘을 정도로 높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핀테크 사용률이 굉장히 높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모바일 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구매력만 받쳐준다면 웹툰이 진출하기 적기일 수 있다는 신호들은 감지되고 있는 만큼 예의주시해야 할 시장이겠네요.

인도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인구 구성. 이 숫자가 14억명이다. (출처=인도 통계청)

한편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또 다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선, 일단 일본 시장이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더 커진다면, 중국 시장에 배팅하기보다 이미 형성된 시장의 안정성을 활용하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미 웹툰시장에선 일본이 가장 중요한 시장이지만, 일본의 중요성이 더 강조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신흥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겠죠. 이때 후보로 지목되는 국가들은 베트남과 태국입니다. 이미 웹툰 기업들이 다수 진출해 있기도 한 국가들이죠. 베트남과 태국에서 제작사들의 경쟁이 앞으로 더 치열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또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에 콘텐츠 분야가 영향을 받는다면, 미국 현지 제작사나 작가들과 합작회사(JV)를 설립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한국 제작사와 일본 제작사가 협업해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죠. 일본은 물론 인도와 미국에서도 이런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앞서 말씀드린 보호주의 무역의 영향도 있겠지만, 미국에서 작품을 직접 발굴해 직접 플랫폼에 투고하거나, 미국에서 늘어나고 있는 플랫폼들과 미리 협업하는 그림을 그릴 가능성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달러가 초강세이고, 한동안 이 기조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 미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것이 이득일 수 있습니다.

3. 콘텐츠의 측면

사업적 측면이 아니라 콘텐츠의 측면에서 변화를 예측해보자면, 미국 시장에서는 젊은 세대 중에서도 다인종-반 트럼프 독자들의 집합소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저개발지역인 농촌지역인 중부지방 거주, 백인 위주의 선택이 트럼프였다면, 도시 거주, 젊은 다인종 인구의 선택은 해리스였습니다. 또 웹툰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는 독자층 역시 도시 거주, 젊은 다인종 인구이기 때문에 컨텐츠의 측면에서 웹툰은 여전히 현재와 마찬가지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독자층을 넓혀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온라인 시장에서 백인-남성 위주의 시장, 도시 거주-젊은층 중심의 시장으로 콘텐츠 시장이 어느정도 양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마찬가지로 적어도 네이버웹툰의 콘텐츠 분야에서의 핵심축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해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웹툰은 이미 오랜 시간동안 LGBTQ+ 친화적, 다인종,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풀어놓는 플랫폼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이 기조가 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현상은 소위 ‘PC vs 반PC’ 구도가 앞으로 더 공고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소비자들이 형성해둔 이 구도는 한동안 지구 전체 사회의 뜨거운 감자일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낮습니다. 애초에 대결구도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잘 만든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점이 지난 수 년간 증명되어 왔기 때문에, 단순히 이 갈등구조를 이용하려는 콘텐츠는 소위 ‘어그로’만 끌고 사라지는 1회성 콘텐츠가 될 겁니다. 콘텐츠의 측면에서 정답이 딱 하나 있다면 ‘잘 만들어야 한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죠. 한편으론 ‘미국중심주의’로 똘똘 뭉쳐 배제의 정서를 가진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힘들고, 애초에 만화의 주요 소비층이 아닌 독자들을 만화 독자로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미국중심주의 콘텐츠로는 이미 히어로 코믹스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독자들을 포섭하는 방향의 ‘잘 만든’ 콘텐츠가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랜턴 하나에 의지해 어둠 속을 지나는 시기입니다. (출처=어도비)

IP확장의 영향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미국에서 웹툰 원작의 드라마, 영화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고, 공개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 영향으로 웹툰이 확장되면서 생겨날 논의는 아직까지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콘텐츠 분야의 전망이 많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기반으로 시장의 기회를 관망하는 모양새라고 볼 수 있겠네요. 코로나19 당시(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였던)처럼 투자를 크게 늘린다거나, 아니면 가시적인 움직임이 아직까지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단위에서는 미국발 글로벌 투자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법인세를 낮추고, 기업 감세정책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인데요, 영화-드라마 제작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드라마 영화 제작사를 인수해 새로운 기회를 찾을 투자자들이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단행본 시장에서는 예외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미 팟캐스트-보드게임 등을 연계해 팬덤을 구축한 다음 만화책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등의 사업모델이 검증된 바 있는 미국시장에서 천천히 팬덤을 구축하거나, 팬덤을 구축한 IP로 사업을 차차 확장해 나가는 전략이 개별 콘텐츠 단위에서 준비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예측 불가능”이었습니다. 한번 겪어 보았으니 예측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없는 행정부라는 점이 가장 두려운 점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일본 시장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이고, 신흥시장으로 인도와 베트남, 태국이 떠오를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콘텐츠의 측면에서는 결국 다양성과 IP확장이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잘 만든 콘텐츠’라는 정답을 향한 수없이 많은 시도들이 있을 거고요. 그 과정에서 버틸 체력, 즉 현금흐름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목적에 맞는 적절한 투자를 집행하고, 무리하게 투자금을 끌어오지 않을 수 있는 인내심도 필요할 겁니다.

‘예측 불가능’의 시대를 알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으로 불확실성, 달러 초강세, 보호무역주의의 부활 등 불안한 파도가 치고 있습니다. 한국 웹툰은 글로벌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에서 좋은 신호는 아니죠. 다만,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말처럼 더 뾰족하게 우리가 가진 걸 살필 시간이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진 무기를 살필 차례입니다. 한국 웹툰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갈고 닦아야, 앞으로의 파도를 헤쳐나갈 가능성이 높아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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