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SIGHT “이 나이에 이럴 줄은” – 덕후에겐 국경도 나이도 없다

2015년 아키하바라에서 찍힌 한장의 사진이 잔잔한 감동을 준 일이 있었다. “재일 외국인은 나가라”는 외국인 혐오 시위대의 맞은편에서 “오타쿠에게 국경은 없다(OTAKU NO BORDER)”는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든 시민들이었다. 덕후에겐 국경이 없다. 아니, 국경뿐 아니라 나이도 없다.

2015년에 찍힌 가슴이 웅장해지는 사진. OTAKU NO BORDER!

중장년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미스 트롯과 미스터 트롯은 덕질을 이해하지 못하던 세대에게 덕질의 즐거움을 알려준 프로그램이다. 물론 아직까지 누군가는 나이에 안 맞는,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직 덕질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에 즐거움이 많이 남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소개하는 만화가 있다.

도티끌 작가가 펴낸 <이 나이에 이럴줄은>(스튜디오 티끌, 2019년 발매)은 ‘돌덕’이라고 부르는 아이돌 덕후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 속 화자인 ‘더끼’는 30대에 워너원의 하성운에게 거하게 덕통사고를 당해버린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입덕 계기부터 콘서트, 친구를 만나게 된 계기까지 말 그대로 덕질 연대기를 풀어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덕질에 빠지는 걸까? 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2010년대가 새롭게 정착시킨 인간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101개(워너원!)로 풀어낸 에피소드는 페이지당 6컷 내외의 단순한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오히려이렇게 단순한 구성 덕분에 ‘내가 어떻게 덕통사고를 당해서 지금까지 덕질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내 덕질기를 전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으로 정리한 연대기는 덕질의 과정을 A부터 Z까지 정리해 그 과정에서 얻는 희로애락을 담았다.

덕후는 어디에나 있다. 답답한 현생의 틈바구니에서 나를 치고 간 최애에게 빠져버리는 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부모님들이 미스 트롯과 미스터 트롯을 보고 치여버린 것처럼. 그래서, 덕질의 기본은 존중이다. 나의 취향과 상대의 취향의 다름을 존중하고, 상대를 치고 간 최애를 부정하지 않는 것. 덕질을 통해 충만해지는 삶을 그린 만화가 <이 나이에 이럴 줄은>이다. 덕후에겐 국경도, 나이도, 어떤 구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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