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제 돈 주고 사람 쓴다'에 이어 '교육'까지 나섰다


넷플릭스가 일본에서 애니메이터 육성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일본 애니메이터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환영을, 회사에 해당하는 곳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그간 열악한 처우에도 갈 곳 없던 애니메이터들이 일본 제작사 대신 넷플릭스로 향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생활비+교육비 지원 매력적

니혼게이자이는 지난 12일 "넷플릭스가 일본에서 애니메이터 육성 지원을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도쿄 소재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위트 스튜디오가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과정을 넷플릭스가 감수하게 됩니다. 18~25세의 고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10명 내외를 모집해 4월부터 6개월간 교육을 실시합니다. 이 교육생들은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제작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넷플릭스는 수강생 1인당 월 15만엔(한화 약 157만원)의 생활비, 수업료 60만엔(약 628만원)을 지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수업료의 경우는 직접 지원이라기 보단 서비스와 현물지원에 가깝지만, 지급되는 생활비만 따져도 일본에서 활동중인 현직 애니메이터의 평균 수입보다 높습니다. 특히 이 교육과정을 마치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 월수입 50만원 안팎... 팍팍한 애니메이터들

일본 애니메이터의 1년차 평균 월수입은 5만엔(약 52만원) 전후로 알려져 있고, 낮은 경우에는 3만엔 이하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있을 때 마다 퀵서비스 등으로 일감을 전달받고, 일 한 건수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프리랜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9년 7월 발생한 쿄애니 화재참사의 경우 경력단절 여성들을 포함해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던 쿄애니의 경영철학이 참사로 인한 피해를 키워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정규직 채용'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로 파편화된 시장에서 단결할 수 없는 애니메이터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버텨내는'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뻔한 반대와 우려되는 지점들

신입 애니메이터보다 수강생이 더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 넷플릭스에서 일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말에 일본에서는 "넷플릭스의 노예 해방", "인력착취가 끝났다", "일본 애니메이션 붕괴"와 같은 자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반적인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애니메이터는 오는 4월부터 일본에서 산재보험 적용대상에 포함됩니다. 우리나라에선 임의가입을 할 경우 산재가입이 가능하고, 예술인복지재단에 신청해 산재보험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기존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입니다. 사실 해야 할 것들을 외면하고 약자들에게 미뤄 온 결과가 나타난 것이지만, 업계에선 우수한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거나, 제작사들의 인력난이 가속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에 일본의 네티즌들은 "처우 개선부터 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일본 유수의 제작사들과 협업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자체가 넷플릭스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실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넷플릭스가 시청 횟수나 전체에서 차지하는 스트리밍 비율 등 그 어떤 데이터도 공유해주지 않기 때문에 차기작을 만들 때 제작비 증가를 요구할 교섭 재료가 거의 없습니다. 마치 웹툰 작가들이 플랫폼이 쥐고 있는 데이터를 공유받지 못해 협상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동안에도 넷플릭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애니메이션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이미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전세계 1억명 이상의 가입자가 한 편 이상의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감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같은 기간동안 애니메이션 콘텐츠는 50% 이상 성장하며 폭발적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넷플릭스는 이미 제작에 착수한 작품들 중 올해 이리에 야스히로의 <에덴>을 비롯, <야스케>,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등의 오리지널 작품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넷플릭스가 시장을 독점하는 것은 충분히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미 웹툰에서는 익숙한 그림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넷플릭스의 투자에 사회초년생을 비롯한 젊은 층이 환호하는 건 '사람을 제 돈 주고 쓰기 때문'입니다. 이미 시장을 장악한 사람들이 제대로 보상도 주지 않고 '살려 두는' 정도에서 부려먹는 것 보단, 최소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저 곳이 낫다는 거죠. 이 점을 제대로 반성하고 고쳐내지 못하면, 기존 산업체의 위기는 계속될겁니다. 최근 IT 기업들의 파격적인 연봉 인상도 이런 맥락입니다. 보상은 돈으로, 칭찬은 연봉 인상으로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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