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실패하니 이번엔 웹툰? 콘텐츠에 범죄 연관성 찾는 경찰

신림동 성폭행 살인범 최윤종이 불법 웹툰 사이트를 이용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문제는 일부 기사에서 최윤종의 PC와 스마트폰을 포렌식한 결과 불법 만화 유통사이트에 접속한 정황이 확인되었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경찰이 "어떤 콘텐츠를 주로 열람했는지 분석하면서 성폭행, 살인 범죄와 연관성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범인이 검거된 직후에는 집과 PC방만 오갔다거나, 게임중독자였다거나 하는 식의 기사들이 나오면서 게임계의 우려를 샀습니다. 일부 게임 매체나 유튜버들은 강력하게 항의하며 게임과 범죄를 연관짓는 행위를 규탄하기도 했습니다. PC방 업주들이나 게임 매체, 게이머들의 거센 반발을 직면한 이후 '불법 웹툰'이 등장했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마치 게임을 찔러보고 반응이 안 좋으니 웹툰을 띄워본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불법 웹툰은 유통 뿐 아니라 그 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보는 것 자체가 불법입니다. 그런데 '불법 유통'이 아니라 '범죄자가 콘텐츠를 보았다'는 점에 집중해서 콘텐츠와의 연관성을 찾는 경찰의 행위가 50년 전 "만화를 보고 공상에 빠져 어린이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기사가 나왔던 정병섭 자살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1972년 2월 2일 조선일보 9면 "죽음으로 이끈 만화 흉내"

국내 웹툰 플랫폼들의 월간 활성이용자는 1천만 명을 넘습니다. 실질적으로 '웹툰을 안 보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범죄의 원인을 콘텐츠에서 찾는다는 건 웹툰 독자의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른바 '공안정국'에서나 가능한 발상이 경찰을 통해 전달되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불법 웹툰 사이트를 이유로 들먹이는 건, 불법 웹툰 사이트를 수사해야 할 경찰이 "콘텐츠가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꼴이라는 점도 빈축을 사는 이유입니다. 불법 웹툰 콘텐츠를 막아달라고 지난 수 년간 요청했음에도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이 불법웹툰 사이트 이용과 범죄의 연관성을 찾는다면, 경찰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콘텐츠를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찰의 행태가 조속히 시정되기를,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 즉 시민들은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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