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 입장에선 갑자기 튀어나온 "문화산업공정유통법"

불공정계약은 창작계를 막론하고 언제나 큰 화두입니다. 계약은 쌍방간의 합의지만, 한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계약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공에서는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교육부터, 힘을 가진 쪽이 힘을 맘대로 사용해 유리한 계약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이미 저질러진 계약이라도 협박 등에 의해 부당하게 이루어졌다면 무효화하는 것까지.
만화계는 올 한해가 분노와 슬픔이 함께 했던 한 해였습니다. 지금 한창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출판사와 맺은 불공정계약으로 인한 소송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출판사와 작가, 즉 창작자가 직접 맺은 계약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공공에서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이라는 이름을 갖춘 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검정고무신 방지법'입니다. 이름만 보면 반드시 필요한 법 같습니다. 그런데, 이 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딘가 물음표가 뜨는 지점이 있습니다.

| 필요한 것, 실효성 없는 것, 확대해석될 수 있는 것
문화산업공정유통법에서 가장 문제로 지적받는 부분은 '금지행위'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금지행위 자체가 모두 문제라는게 아니라, 필요한 것도 있고, 실효성 없는 것도 있고, 확대해석되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 등등이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 모두 들어가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그 중에서 먼저 '필요한 것'은 문화상품 납품 후 수정, 보완을 요구하면서 그 비용을 보상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수정 한계 횟수에 대한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했지만, 그 횟수를 넘어서 요구하면서 제대로 비용 지불을 하지 않는 경우가 해당하겠습니다. 이건 필요하지요. 그리고 문화상품 관련 기술자료, 정보 제공을 강요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집니다.
다음으로 지식재산권(지재권) 양도를 강제하거나 무상으로 양수하는 행위의 금지 역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통상적인 거래 관행에 비춰'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지재권 사용 수익을 분배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집니다. 또 비슷한 내용으론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대가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대가를 정하거나, 공급계약에 명시된 대가를 정당한 이유 없이 감액하는 행위'가 있습니다. 아마 이 두 내용 때문에 '검정고무신 방지법'이라는 별명이 붙었겠죠? 그런데, 이 내용 하나만이 검정고무신과 연관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실효성 없는 것'은 제작 방향 변경, 지정, 교체 등 제작업자의 제작활동을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제작을 하면서 방향을 변경하거나, 지정하거나, 교체하는 등의 일은 PD의 업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건 수많은 논의의 과정과 합의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 역량이 '좋은 PD'의 역량이기도 하고요.
그럼, PD가 이걸 하지 말라는 건가?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싶을 때, 이 법안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됩니다. 바로 문화산업 "공정유통법"입니다. 네. 이 법안은 창작자와 유통사/출판사/플랫폼 간 내용을 다루는게 아니라, '유통'에 관한 법입니다. 그럼 플랫폼이 CP사나 작가에게 제작방향 변경, 지정, 교체 등을 요구할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선정성 측면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플랫폼은 수정 요구를 해야만 합니다. 아니면 다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게 불가능해진다면, 이 법의 실효성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또는 확대해석되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판매 촉진에 소요되는 비용 또는 합의되지 않은 가격 할인으로 인한 비용 등을 콘텐츠 제작자에게 부담시키는 행위"입니다. 첫번째는 해석에 따라 웹툰에서 '무료로 공개되는 회차'가 "합의되지 않은 가격 할인"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겁니다. 두번째는 '프로모션'에 대한 해석입니다. 프로모션 자체를 무기화하는 경우는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선 '어떤 경우'인지를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법적으로 합의란 쌍방이 명시적으로 동의한 경우를 뜻하는데, 매번 프로모션마다 계약서를 써야 한다면, 가뜩이나 실시간 대응이 중요한 프로모션에서 이슈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또한, 프로모션은 '홍보'이면서, 동시에 큐레이션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고관여층 독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프로모션은 새로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동시에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플랫폼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것 중 하나기도 하고요.
바로 그래서 이건 동시에 '실효성 없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판매 촉진', 즉 프로모션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건 플랫폼 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자와 제공자들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게 필요하지, 아예 플랫폼만 비용을 책임지게 된다면 프로모션은 플랫폼에겐 고스란히 손해로 작용할텐데, 굳이 프로모션을 왜 하나요? 잘 나가는 작품만 잘 나가게 두는게 비용도 안 들 텐데요.
앞서 말했듯, 이 법안의 별명은 '검정고무신 방지법'입니다. 유가족이 문제를 제기했던 부분은 "문체부 시정명령으로 내릴 수 있는 징계가 '과태료 300만원', '3년 간 정부 지원사업 불이익'이 전부라 실효성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문제가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법이 있는데, 실효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법은, 문제가 되는 상황을 중심에 두었는지 의문입니다.

| 의견수렴 없이 갑자기 '통과하겠다'는 정부
또 문제가 되는 건, 의견 수렴 과정이 없었다는 겁니다. 보통 법안을 만들 땐 의견 수렴 과정과 공청회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3월 법안 발의 이후 의견수렴 과정 없이 갑자기 '연내 통과 목표'라는 가이드라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11월 27일에서야 유인촌 문체부장관이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당시에는 업계 관계자들이 모두 우려를 표했고, 초기에 법안의 취지 자체에는 찬성 의견을 보냈던 인사들도 이 법안이 유통법이라 정작 저작자, 제작사의 사업 현실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고, 업계 전반적으로 의견 수렴 과정이나 검토 과정이 면밀히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창작자 보호를 위한 법안이, 창작자 입장에선 의견 수렴 과정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셈입니다. 창작자를 지키기 위한 법안이라면 최소한 창작자 의견 수렴 과정, 또 법안의 혜택이나 감시 당사자가 될 사람들인 플랫폼과 유통업계의 의견수렴과정도 있어야 했던 것 아닌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취지는 좋지만,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어디에도 맞지 않는 죽은 의견이 되기 쉽습니다. 부디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원래 취지인 '창작자 보호'와 '상생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법으로 만들어지기를, 그러기 위해서 당사자들의 의견수렴과 토론 과정을 확보하고 통과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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