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풍선 vs 이미지, 뭐가 더 독자를 궁금하게 할까? - SWI PREMIUM

말풍선 vs 이미지, 뭐가 더 독자를 궁금하게 할까?

만화는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루어진 복합예술입니다. 이 말은, 만화에선 이미지와 텍스트가 모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페이지에서 연출이 이뤄지는 출판 만화에서는 컷과 컷 사이의 ‘홈통’,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를 염두에 두고 연출을 결정합니다. 웹툰에서는 페이지가 없는 대신 스크롤이 그 자리를 차지했죠.

스크롤 방식은 웹툰의 고유한 연출을 시도하게 만들었고, 지난 20여년동안 웹툰의 연출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스크롤을 내리는 동안의 빈 공간, 그리고 다음화가 궁금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마지막 컷’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 스크롤 사이의 ‘간극’은 어떤 역할을 할까

자, 이걸 위해선 먼저 스크롤을 내릴 때 빈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들어가 있지 않은, 말풍선, 이미지와 다음 말풍선, 또는 이미지 사이의 빈 공간입니다. 이걸 ‘간극(間隙, 사물 사이의 틈)이라고 부르기로 하죠. 최근 웹툰에서 이 빈 공간, 즉 간극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첫번째는 시점이나 장면 전환입니다. 배경색이 검은 색이었다가 아래로 내리면서 천천히 흰색이 된다면? 검은 색은 과거 회상, 흰 색은 현재로 시점이 전환됩니다.


<닥터프로스트> 시즌3 21화 中

같은 흰 색 배경으로 간극이 이어진다면, 장면이나 인물이 전환됩니다. 같은 시간대의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기호죠. 예를 들어 A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인원의 이야기가 끝나고, 같은 배경색의 간극이 길게 펼쳐진 후에는 다른 인물들, 또는 같은 인물들이 다른 장소에서 이야기를 펼치게 됩니다. 이런 간극에 의한 전환은 너무나 익숙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죠. 독자와 작가간의 약속처럼 굳어진 연출 기법이기도 하고, 맥락에 따라 그렇게 읽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감정적으로는 어떨까요? 간극은 ‘전환’이라는 정보 외에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고, 말풍선이든 이미지든 주어진 마지막 정보를 반복해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주인공이 절벽에서 추락하고, 그 뒤에 긴 간극이 확보된다면 독자들은 ‘주인공은 어떻게 되는 거지?’, ‘저기서 추락하면 다치거나 죽을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로맨스 장르에서 서로 마주보고 눈을 감는 장면이 나온다면? ‘얘네 드디어 뽀뽀하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독자는 여기서, 작가가 준 정보가 만들어낸 감정이 증폭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간극 안에서 독자는 이미 주어진 정보를 계속해서 되새김질하고, 이를 통해서 이어져 온 맥락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감정이 증폭되는 효과를 만듭니다. 장면 전환을 통해 해소되기도, 아니면 궁금증을 더 키우기도 하는 장치로 사용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간극’이 또 있습니다. 회차와 회차 사이의 간극이죠.

* 다음 회차, 궁금하시죠?

자, ‘작가가 준 정보’가 증폭되고, 장면이 전환되는 간극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독자는 ‘더 많은 정보’를 읽기 위해서 스크롤을 내려 다음 컷으로 갑니다. 이 ‘간극’을 만드는 요소로는 크게 말풍선(텍스트)과 이미지가 있습니다. 독자는 말풍선과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읽어내고, 그렇게 결국 마지막 컷에 도달하게 되죠. 여기서 또다른 간극이 시작됩니다. 바로 회차와 회차 사이의 간극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컷에서 다음 회차의 첫번째 컷까지, 공백이라는 이름의 간극을 경험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면, 만화는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말풍선과 이미지가 함께 있으면 우리는 그걸 ‘만화’로 인식합니다. 그럼 이 두가지, 말풍선과 이미지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효과, 즉 감정의 증폭을 이끌어내 다음 회차로 넘어가게 만드는 효과가 클까요?

명확하게 숫자로 나타내기는 어렵지만, ‘말풍선’, 즉 텍스트로 끝날 때 그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대중의 콘텐츠 소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여기선 ‘잘 알려지지 않은 주제에 명확성을 제공하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공유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미지의 세계가 ‘명확하게’ 밝혀지는 순간을 즐긴다는 거죠.

이 순간을 찾아내려는 욕구가 생겨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같은 연구에서는 이를 정보 격차라고 설명합니다. 즉, 미지의 정보를 명확하게 밝히는 콘텐츠에 ‘정보 격차’를 더하면, 사람들이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공유하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이건 뉴스 콘텐츠 이야기긴 하지만, 웹툰에도 적용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음 회차’라는 미지의 정보가 명확하게 밝혀지길 바라면서 콘텐츠를 감상하고, 특히 한 회차의 마지막 부분에선 ‘이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와 그걸 아는 작가, 또는 미리보기 결제를 통해 감상한 독자와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니까요.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1화 마지막 장면

이 ‘정보 격차’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선, 독자들이 ‘무엇을 궁금해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이미지, 즉 고정된 그림을 통해서 제공되는 정보의 해석은 텍스트에 비해 해석의 범위가 넓습니다. 하지만 텍스트는 보다 명확하게 ‘이걸 궁금해 하라’고 말할 수 있죠. 예를 들어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1화의 마지막에선 “그 애도 똑같이 겪어야지…”라고 말한 다음, “내가 겪었던 고통을!”이라는 대사와 함께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말풍선으로 단서를 제공하고 마무리하면, 독자는 다음 회차를 자연스럽게 읽게 됩니다.

* 우리가 웹툰을 읽는 방법


그리고 이미지보다 말풍선이 더 효과적인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웹툰을 읽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웹툰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글을 읽는 방식을 따릅니다. 왼쪽 위의 말풍선이 시작, 그 다음은 오른쪽 아래, 다시 왼쪽으로. 그리고 그 사이에 이미지가 끼어들게 되죠.

이 법칙을 생각하면, 이야기를 시작하는, 즉 대화를 통한 구체적 정보의 시작점이 ‘말풍선’이라는 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즉, 하나의 시퀀스에서 첫번째 말풍선은 웹툰에서 이니시에이터(Initiator, 개시자)의 역할을 합니다. 다음 말풍선들은 시선을 이끄는 표지석의 역할을 하죠. 이미지도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고, 독자들에게 그림의 의미를 부여하도록 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말풍선을 포함한 텍스트입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명장면. 카페베네가 엔딩의 아이콘(?)이 된 이유죠.

그래서 우리는 말풍선(을 포함한 텍스트) 다음에는 이미지가 나오길 기다립니다. 이 구성요소를 합쳐서 ‘컷’이라고 부르고, 거기서 우리는 의미와 이야기를 읽어냅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웹툰에 기대하는 장면은 ‘말풍선-그림’ 순서로 배치된 그림이라는 거죠.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 이미지로 끝이 나면 독자들에겐 <거침없이 하이킥>의 카페베네 장면처럼 인식됩니다. 완결된 이미지, 더 이상 추가 정보 제공을 하지 않는 고정된 것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라는 짤방을 보면 이게 잘 나타납니다. 말을 하다가 말면 궁금하고 답답하고 알아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죠. 그리고 다음 회차에 '말하다가 만' 것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말풍선이 조금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말풍선, 또는 텍스트로 마무리를 짓게 되면 ‘이 다음에 나올 그림’을 예상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위의 짤방처럼 '아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를 궁금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풍선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음편!!'을 더 열심히 외치게 되는 거죠. 물론, 이건 일반적인 예시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사례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이야기의 시퀀스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도 하죠.

바로 ‘정답이 아니다’라는 점이, 웹툰이 매번 새롭고 재미있게 보이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더 재미있는 웹툰 감상 되시길 바라며 준비한 오늘의 칼럼은 여기까지. 다음 칼럼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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