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무엇보다 실력으로 보여드릴게요” – 전문 어시스턴트 "스튜디오 옐" 정예리 대표

웹툰 어시스턴트는 꽤나 역사가 깁니다. 10여년이 넘게 웹툰 어시스턴트를 구하는 모집 공고는 꾸준히 올라오고 있죠. 팀 작업이 일반화된 지금도, 개인 창작자 혼자서 작업을 모두 맡는 경우가 오히려 드뭅니다.

지난해 8월을 기준으로 했을 때 네이버웹툰의 매일 상위 6개 작품, 총 42개 작품을 보면 ‘3인 이상’ 창작이 거의 3/4를 차지할 정도로 일상화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간마감에 퀄리티 높은 작품이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기도 합니다.

때문에 ‘실력있는 어시스턴트’에 대한 문의와 구인 또한 끊이지 않고 있죠. 전문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채색 전문 스튜디오의 문을 연 ‘스튜디오 옐’의 정예리 대표를 만났습니다.


Q. '스튜디오 옐'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어떤 곳인가요?

정예리 대표(이하 정) : 스튜디오 옐은 웹툰 전문 제작 스튜디오예요. 일반 에이전시와는 다르게, 작가님께서 펜선 원고를 주시면 채색해서 완성시키는 ‘채색 전문 어시스턴트’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펜선이나 식자, 컷 편집 같은 작업, 스케치업 배경 추출이나 배치 같은 일은 따로 하진 않아요. 채색과 후보정 작업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는 스튜디오입니다. 물론 작가님마다 전부 완성하길 원하는 분도 계시고, 한 파트만 부탁하시는 분도 계시구요.

에디터: 그럼 단가가 다르겠죠?

정: 그렇죠(웃음).

Q. 대표님께서 창업하시기 전에 어시스턴트로 오래 일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신 과정을 듣고 싶어요.

정: ‘전문 어시’라고 하지만, 시작하게 된 과정이 전문적이진 않아요. 제가 미술대학 회화쪽을 전공했는데, 당시에 친한 학교 선배 한 분이 당시부터 웹툰을 그리셨어요. 그때가 주호민 작가님이 스포츠투데이에서 <짬>을 연재하시던 때(에디터 주: 대략 2008년 전후)거든요.

그 때 웹툰을 연재하시던 선배가 계셨어요. 저는 원래부터 만화를 정말 좋아해서 만화가를 꿈꾸다가, 전공을 약간 돌려서 미술을 전공하게 된 경우였거든요. 그래서 만화에 대한 열망이 있는 상태에서 그 선배와 친하게 지내면서 항상 그랬어요. “선배, 할 일 있으면 저 좀 시켜줘요”라고요.

그 선배가 성인 만화를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저를 어시로 불렀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그 선배가 오랫동안 활동을 하시다 보니까 주변에 유명한 작가분들이 계셨어요. 그분들 중에 제가 도와드렸던 작품의 채색을 보고서 “네 작품 도와주는 어시 좀 소개시켜줘”라고 하신 거죠. 그렇게 어시스턴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Q. 그럼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시스턴트를 하시게 된 건가요?

정: 그건 아니고, 원래는 대학생 때부터 제가 용돈을 벌어 썼어요. 스무살 때부터 미대입시 학원에서 일을 했는데, 계속 일을 하면서 경력이 쌓이고 졸업할 때가 되니까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공채가 뜨더라고요.

일단 졸업하자마자 취업은 해야 되고, 미대 입시쪽에서 활동을 오래 했고,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적성에 맞아서 시험을 봐서 바로 들어가게 됐어요. 그래서 일종의 계약직 개념으로 일했죠. 그런데 계약 연장이 확실시되지는 않는, 그런 경우였어요. 그런데 제가 그 학교에서 실적이 되게 좋았어요. 아이들 대학을 소위 상위권 대학으로 잘 보냈어요.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해서 쉬어야 하는 시기가 왔거든요. 그때 당시 부장 선생님께서 ‘자리 남겨놓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다시 돌아가려고 했더니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해는 가죠. 이왕이면 남자, 이왕이면 원장 급 사람을 쓰고 싶어하는 심리.

Q. 어시스턴트로 일하시면서 사실 불안하신 마음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웹툰작가도 그렇지만 어시스턴트는 더 할 것 같은데, 일을 구하는 과정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정: 사실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한번에 ‘경력 단절’이 되니까 재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심했어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던 일을 계기로 우연하게 제가 좋아하는 업계에서 일단 어시스턴트로 시작했지만, 또 누가 인맥을 통해서 일을 주지 않으면 안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에 저는 ‘카툰부머’나 ‘방사’같은 커뮤니티를 몰랐거든요. 그래서 알게 된 작가분들께 “제가 또 일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는 식으로 고민을 털어놨던 적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정말 필사적으로 ‘실력이 있으면 누군가는 찾아주겠지’ 하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당시에 맡았던 딱 하나 맡은 작품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난주보다 더 잘해야지. 지난주보다는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했어요. 솔직히 마음속으론 “익숙해지면 대충대충 해야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저는 그냥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Q. 처음 시작할 때 일반 작가분들이 쓰시는 장비 같은 것들은 없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셨어요?

정: 처음에는 그냥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단 할부로 질렀죠. 장비를 사고 나서는 ‘잠깐 하고 말아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이 일을 오래 하겠다는 생각, 그래서 내가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Q. 예전보단 나아졌지만, 체계화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는 작가분들과 어시분들이 아직 많으실 것 같아요. '전문 어시스턴트'라는 분야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정: 전문 어시라는게 어떻게 보면 ‘전업으로 이 업계에서만 일하는’ 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일하고 있고요. 그런데 (에디터가) 말씀하신 것처럼 체계화되지 않은 부분 때문에 불안해하시는 분도 있고요. 5년차로 일을 하면서 가장 철칙으로 지키는 게 저는 ‘중도 하차는 없다’는 거거든요.

최근에 되게 급하게 연락이 온 경우가 있어요. 보통은 ‘연재를 준비중인데 함께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시는데, ‘지금 연재중인 작품인데 혹시 가능하신가요’라고 연락이 왔어요. 이런 경우는 보통 중간에 결원이 생긴 경우거든요. 당시에 어시분이 피치못할 사정으로 일을 하실 수 없는 상태가 됐던 거죠.

아무래도 연재중인 작품은 수익이 일정하지가 않아요. 주간 연재로 들어가야 한달에 얼마간 고정 수입이 생기는데, 연재 준비중인 작품은 한달에 한 편이 제작될지 어떨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예요. ‘편당 얼마’라는 공고를 보고 들어왔는데 정작 제작이 늦어지는 상황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럴 경우에 어시분 입장에선 ‘차라리 취업을 하자’는 생각이 들 수 있죠.

보통 미리보기와 세이브 쌓는 기간동안 벌써 어시분들이 같이 일하기 시작하는데, 일부 에이전시나 제작사라면 모를까 개인 작가님들이 그 과정에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데 어시스턴트 비용을 지불하기가 쉽지는 않죠.

그래서 연재처와 일정이 정해진 상황이라면 플랫폼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미리 선 지급되는 비용이 있으면 작가님도 어시스턴트 분들과 일하면서 비용을 지불할 수 있고요.

Q. 창업 과정도 궁금해요. 사실 어시스턴트 하면 최근에도 '작가와 함께 일하거나' 아니면 '제작사의 스태프로 일하거나'가 많은 것 같은데, 전문 스튜디오를 열어야겠다고 결심하신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정: 처음에는 한두작품 정도를 혼자 맡아서 했어요. 두 작품을 주 2회 분량으로 소화를 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문의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당시에는 연차도 쌓이고 하니까 주변에 아는 작가님들이 소개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당장 놓치기에는 아까운 작품인데, 어떻게 해야 할 까 생각을 해보니까 ‘누가 밑색 작업만이라도 도와주면 더 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믿고 친하던 제자가 포토샵을 되게 잘 했거든요. 그 친구에게 ‘단순한 과정이라 (너 정도면) 하루만 배워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보겠냐’고 했더니 그 친구가 하겠다고 했어요. 그 친구도 아기 엄마였거든요.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잘 돌아갔어요.

연재라는 게 세이브를 아무리 쌓고 들어가도 순식간에 없어지잖아요. 그러면 마감이 긴박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고, 혼자서 하기에는 밑색부터 후보정까지의 호흡이 굉장히 길고요. 그걸 동시에 파트를 나눠서 진행하면 속도감 있게 제작할 수 있어서 심리적으로도 지치는게 덜 하더라고요.

한 작품을 4~5일씩 잡고 있는 게 아니라, 맡은 부분을 이틀동안 마무리하고 넘기고 하니까 약간 정신은 없을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감각이 있어요. 그리고 다른 작품을 받는 재미도 있어서 이렇게 밑색 파트만 구해서 하던 걸 한 명 늘리고, 또 한 명 늘리고 해서 지금 7명까지 늘어나게 됐죠.

Q. 일곱분이 함께하신다니,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정: 일단 각자 재택으로 일하고 있어요. 말은 “스튜디오”라고 했지만, 어시스턴트들이 힘을 합쳐서 모여있고, 서로 분업하는 크루라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것 같아요. 어시분들이 전문가시기도 하지만, 투잡, 쓰리잡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을 고용해서 일을 하는 것 보다, 작품이 있을 때 맡기고, 스케줄에 맞춰서 일하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죠. 그 관리나 책임을 제가 지고요.

Q. 그럼 그렇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 작품들은 어떤 작품들이 있나요?

정: 처음에 본격적인 전업 어시로 시작했던 것이 <갓핑크>였고, 연재 3년만에 종료가 됐어요. 그동안 마감 펑크를 한번도 낸 적이 없습니다(웃음). 그 다음 <찬란한 액션 유치원>을 했고, 이때부터 작가님들의 문의가 많이 들어왔던 것 같아요.

스튜디오 옐에서 작업에 참여한 주요 작품들

<급식 아빠>, <마법사랑해>, <꼬리잡기>, <화이트블러드>, <죽지 않으려면>, <투신전생기>, <변방의 외노자>, <세자빈의 발칙판 비밀>같은 작품들을 작업했습니다.

Q. 작년에 발표된 웹툰작가 실태조사를 보면, 작품의 분업화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작가분들의 노동시간은 크게 줄지 않은 걸로 나오더라구요. 스튜디오옐과 같은 곳이 이런 문제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표님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정: 퀄리티 과열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10년대 초중반만 해도 60컷 내외에서 끝나던 만화가 이제는 1화부터 150컷 이상을 선보인다던지 하니까요. 그렇게 안 나오면 “뭐야, 미리보기 안봐”라거나, “정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다 보니 이런 인식이 점점 굳어진 것 아닐까 싶어요.

에디터 주: 2021년 8월 기준으로 3인 이상이 참여하는 '집단창작'의 비중은 전체의 70%에 육박한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미리보기로 독자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초반에 확실한 몰입이 필요하고, 그러니 분량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상업 시장에서 경쟁이 과열되니 전체 판의 온도가 올라가는 거랄까요.

Q. 채색 전문 어시스턴트로, 그리고 이제 업체를 차린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요?

정: 아직은 저의 위치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오래 일을 해왔고, 그만큼 실력도 경험도 쌓였잖아요. 그런데 아직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모든 것을 전수해주질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각자 맡은 파트의 완성본을 저에게 보내주면 제가 마무리를 해서 보내고, 그걸 작가님께 보내서 피드백을 반영하는 것까지 제가 하거든요. 이 작업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은 없다는 그런 점이 어렵죠.

혼자 책임져야 하다 보니까, 함께 하는 분들이 일정이 갑자기 생기거나 하면 제가 대타가 되어야 하는 식이죠. 저는 같이 일하는 분들의 워라밸을 최대한 지키고 싶거든요. 그래서 밤샘 작업은 전부 제가 맡아서 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도 좀 고충이 있긴 하죠.

Q. 대표님과 함께 일하고 싶거나, 아니면 작품을 맡기고 싶은 작가님들은 어떻게 연락하시면 될까요?

정: 처음에 한 명씩 사람을 충원해서 일하다 보니까 방사에 “이런 작품을 어떻게 작업했고, 팀으로 작업해서 작업 속도가 빠르다”거나 “그래서 이렇게 일하고 있다. 사람을 구한다”고 어필을 했어요. 그걸 보고 연락 주셔서 계약을 맺은 게 와이랩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연락을 주시기도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새 작품을 “당장 받을 수 있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당연히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을 주신다면 검토해보고, 새로 함께 하실 분을 모실 수도 있으니까 제안은 아래 이메일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이제 경력이 있다 보니 일정 기준이 있어서 제안을 주시고, 함께 논의를 해보시면 될 것 같아요.

또 함께 일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언제나 환영이고요, 포트폴리오와 함께 이메일(studio_yell@naver.com)으로 연락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웹툰 시장이 아주 빠르게 커지다 보니, 본격적으로 전문적인 작업을 분담하는 스튜디오옐과 같은 사례들이 더 나올 것 같아요. 지금 이런 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분들께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정: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는 점점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어날 거고, 실력만 있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해요. 웹툰작가님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그분들을 받쳐줄 보조인력이 없는 상황인 거잖아요. 그래서 실력으로 증명하면, 그만큼 작품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운이 좋았던 경우여서 말씀드리기 조금 죄송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결국에는 실력이 증명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Q. 여쭙기 조심스러운데, 혹시 수익쉐어 같은 부분이 있기도 하나요?

정: 최근까지 수익쉐어 계약은 없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전문 어시스턴트 스튜디오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에는 한계가 있었죠. 그런데 최근에는 변화가 생기고 있어요. 회당 고정 금액에 수익쉐어가 발생하는 계약들이 생기고 있거든요.

물론 아직까지는 이게 표준이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수익쉐어가 발생하는 계약들이 생기면서 전문 어시스턴트 스튜디오들에도 동기부여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Q. 향후 스튜디오 옐의 계획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 아직 커다란 포부가 있다기보다, 어시 업계에서 가장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점차 저희도 대작을 많이 맡고, 그런 상황에서 더 많은 작품을 하게 되면서 이름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그리고 작품을 만나보는 독자님들과, 파트너를 맺고 계시거나, 맺게 되실 작가님들께도 한마디 부탁드려요!

정: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분들께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성실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스튜디오라는 점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어요. 원화는 퀄리티, 스타일이 나올 때까지 맞춰드릴 수 있는 스튜디오입니다.

독자님들께는 여러분께서 즐기시는 만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작가님과 함께 서너명의 어시스턴트가 함께 만들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고, 작품을 재밌게 감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관 기사
추천 기사
인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