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탕 7화] '피폐물'이라고요, 제겐 '힐링물'입니다


최근 나는 여러 사건을 겪으며 극심한 고립감과 우울에 시달렸다. 짧은 시간 동안 내 안의 무언가가 산산이 부서져 버린 듯했다. 괴롭고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이들에게 그 어려움을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 띄엄띄엄 생각나는 장면과 말들을 길어 올릴 수는 있었지만, 도대체 왜 내가 그토록 고립감을 느꼈는지 그 제반의 상황을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고통의 기억은 마치 일부가 소실된 옛날 비디오 필름 같았다.

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슬픔과 회복에 관하여 아름다운 문장을 남긴 적 있다.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딜 수 있다(All sorrows can be borne if you put them into a story or tell a story about them)" 고통에서 빠져나온 지금, 나는 이 문장을 살짝 바꾸어 회복에 대해 이해한다. 모든 회복은 슬픔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이야기하는 과정이라고.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내게 소위 말하는 ‘힐링물’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힐링물의 ‘힐링’은 ‘회복'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 않았다. 주로 평화로운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 진폭이 크지 않은 갈등이 힐링물 작품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웹툰 <악녀의 문구점에 오지 마세요!>가 대표적이다.

웹툰 <악녀의 문구점에 오지 마세요!>의 주인공 '멜'은 검 속에 봉인되어있던 '도미닉'을 꺼내주고 그와 함께 제국을 제패...아니, 문구점을 개업한다. 문구점 업계의 전통적 원칙에 따라 학교 앞에서 문을 연 '악녀의 문구점'은 솜사탕이나 비눗방울을 판매한다.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게 하고, 그 자신도 평화를 얻기 위함이다.

<악녀의 문구점에 오지 마세요!>는 이세계에 문구점이라는 (심지어 현대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공간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흔히 알고 있는 문구나 간식에 마법을 더하여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겨울의 악마를 부려 만든 얼음으로 슬러시 음료수로 제조한다거나 풍선의 헬륨 가스를 마셨을 때 일시적으로 목소리가 바뀌는 현상을 마법으로 재현한 맥주 사탕 등.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저마다 유년 시절에 즐겼던 간식거리와 장난감의 추억에 빠져든다. 게다가 이세계를 배경으로 한 장르적 유희까지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장성한 지금도 문구점 구경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작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이세계의 문구점에서 멜이 뽑기판 등 전통적인 놀이를 마법과 접목하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사건사고가 없을 순 없지만, 이 작품엔 대체로 평화로운 풍경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정작 내가 괴롭고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을 때, 달콤하고 평온한 이 작품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햇살처럼 부서지는 아이들의 눈부신 웃음을 몹시나 좋아하는 데도, 정작 내 기분은 한 톨도 나아지지 않았다. 도리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퇴행적인 욕망만이 고개를 들었다. 이 작품은 분명 ‘힐링물'이었지만, 적절한 증상에 투약하지 않으면 어떤 명약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전혀 회복하지 못했다.

도리어 나를 절망에서 꺼내 준 건 웹툰 <마른 가지에 바람처럼>이었다. 제목만 봐도 이 작품은 힐링물이라기보단 피폐물에 가까웠다. 실제로 주인공들은 크나큰 고통을 겪어 생의 의지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메마른 심리 상태에서 이 작품을 보는 게 옳은 선택일지 주저되었지만, 로맨스판타지 장르에 대한 애정으로 작품을 애써 클릭했다. 그리곤 순식간에 연재분 모두를 읽어버렸다.

웹툰 <마른 가지에 바람처럼>의 주인공 '리에타'는 폭력 속에 내던져진 인물이다.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리에타를 탐낸 영주 카사리우스가 그녀를 첩으로 삼기 위해 리에타의 남편도, 아이도 빼앗아 버렸다. 설상가상 영주는 자신이 죽을 때 리에타를 같이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가족을 잃고 강제로 첩이 되는 것도 모자라 생매장까지 당하러 가는 길, 리에타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장례 행진을 따른다. 넋을 놓은 리에타 앞에 돌연 나타난 건 악시아스 영지의 영주 킬리언이다. 카사리우스가 빌려 간 돈을 찾으러 왔으나 그는 빚 대신 리에타를 거두어 간다. 생의 의지를 잃어버렸던 리에타를 죽음으로부터 구출한 것이다.

킬리언은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에 망나니로 소문났지만, 실은 영지인들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영주다. 리에타에게도 영지 안에 집을 한 채 주고 그곳에서 살라고 한다. 그는 리에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관리하는 영지, 악시아스에서 잘 정착하고 지내기를 바란다. 악시아스에서 리에타는 새로운 이웃들을 만나고, 킬리언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리에타와 킬리언은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관계를 발전시키지 않는다. 평상시 리에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이어가지만, 남편과 아이를 잃은 슬픔과 고통이 리에타의 마음을 여전히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시간이 곧 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식을 마음에 묻은 상처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나아질 수 있는 걸까? 평범하고 분주하게 일상을 살아내다가도 아이를 잃었던 그 순간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듯 리에타는 금방 패닉에 빠져버린다. 킬리언이 리에타를 위해 하는 건 단 하나다. 그의 옆을 묵묵히 지켜내는 것.

나의 고통은 타인과 나눌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킬리언이 리에타를 아무리 연모해도, 그가 리에타의 상처에 섣불리 손댈 수는 없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극복할 수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사랑으로 덮을 수도 없다. 킬리언의 트라우마는 결국 킬리언이 안고 가야 하듯, 리에타의 과거도 리에타의 몫이다. 각자가 가진 괴로움에 섣불리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이들은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을 묵묵히 꾸려나간다. 그 일상 안에서 괴로움이 다시 고개를 들더라도, 상대의 고통이 덜하기를 바라며 곁에서 기다려준다.

이들이 고통을 대하는 방식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누구도 고통을 일시에 해소할 수 없다. 고통도, 우울도 옆에 지닌 채로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이들은 계기가 생겨나면 나를 잡아먹을 듯 금방이라도 몸집을 부풀리지만, 일상의 무딘 시간 속에 서서히 경감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시간을 견디고 있다.

고통과 부대끼고, 싸우고, 절망하면서 우리는 자기 자리를 비로소 찾아낸다. 향기로운 평화가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지금 내게 절실한 회복은 고통과 분투하여 얻어내는 평안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과거와 끊임없이 분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킬리언과 리에타는 내게 회복의 롤모델이 된다. 이들을 보면 어쩐지 희망이 피어난다. 고통을 오래 견디어 내고 나면, 나 역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

​본 칼럼의 후일담은 팟캐스트 '웹투니스타'의 파일럿 방송 <그 비평가가 로판에 고료를 탕진한 사연>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들으러 가기]

연관 기사
추천 기사
인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