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3시간이면 영상 베낀다고 자랑한 유튜버


'대본 작성에 3시간, 영상 만드는데 10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유튜버 우주고양이 김춘삼과 주언규PD (출처: 리뷰엉이 유튜브 채널)

콘텐츠의 홍수라는 말도 진부한 시대.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를 제대로 진단하기도 전에, 이제 우리는 쏟아지는 콘텐츠 사이에서 '큐레이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단 큐레이션이 되려면, 무엇이 진짜 정보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진짜'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선별하는 겁니다.

'신사임당'이라는 유튜브 채널로 유명해진 주언규라는 PD가 있습니다. 케이블채널에서 일했고, 유튜브로 대박이 났고, 그 채널을 20억원에 판매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여기까진 뭐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노아 AI라는 크리에이터 도우미 인공지능에 투자했고, 이걸로 영상 대박을 낼 수 있다고 가르치고 다녔습니다. 뭐, 유튜브로 성공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죠.

리뷰엉이의 유튜브 영상(좌), 그걸 '참고' 했다는 우주고양이 김춘삼의 유튜브 채널(우)

그런데 문제는 이 노아 AI라는 것이 하는게 '조회수가 터진' 유튜브 영상의 썸네일을 '참고'해서 베끼는 수준이라는 겁니다. 자, 썸네일은 그럴 수 있다고 볼수도 있을 겁니다. 네, 썸네일을 참고하는 건 인간이 하나 인공지능이 하나 속도의 차이만 있다고 주장할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튜브의 썸네일은 내용을 압축해 흥미를 유발하는, 말하자면 유튜브 세상의 광고판과 같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튜브의 썸네일에는 내용의 핵심 질문이 들어가 있게 되고, 내용과 직결되는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특히 과학채널의 경우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고양이 김춘삼'이라는 유튜버는 조회수가 잘 나온 영상의 썸네일을 참고했습니다. 그러면 내용은 어땠을까요? 내용 역시 스크립트로 다운로드 받은 다음 인공지능으로 요약, 정리해 영상을 만들고 편집까지 인공지능이 합니다.

원본 영상의 내용을 스크립트로 받아 인공지능으로 정리한 다음 영상 제작까지 10시간이면 '카피 버전'을 내놓을 수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죠. 이때 이 내용을 인터뷰한 것이 바로 신사임당으로 유명한 주언규 PD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영상에서 "검증된 데이터로 만드니까 영상 조회수가 잘 나오더라"라며 "이 채널(김춘삼)이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면서 여러 개 채널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검증된 데이터'. 사실 리뷰엉이를 비롯한 다양한 유튜버들의 영상이 '검증된 데이터'가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유튜버들은 공부하고, 요약하고, 정리하면서 리서치를 하는 시간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쉽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검증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든 거죠.

심지어 주언규씨는 이 방법을 가르치면서 클래스 101에서 유료 강좌까지 열었다가, 리뷰엉이의 폭로 이후 모두 강의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이렇게 긁어다가 게재하고, 금전적 이득을 보는 건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죠. 폭넓은 해석이 따르는 교육 분야도 아니고, 그냥 사리사욕을 위해 영상을 복제해다가 파는 거니까요. 이런걸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해이)라고 부릅니다. 이게 잘못인 줄도 모르고 잘못을 당당하게 벌이는 정신머리 말이죠.

유튜브 생태계는 누구나 진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 생태계는 누구나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동업자이기도 합니다. 서로 사이가 안 좋을 수도 있고, 감정이 상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대중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동업자라는 말이죠. 그런데 동료 유튜버의 영상을 '데이터'로만 여기는 건, 플랫폼 비즈니스가 가지는 한계를 느끼게 합니다.

어떤 판이건, 판을 망치는 건 아주 쉽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고, 그들이 만들어낸 가치를 내가 가져다 쓸 수 있는 숫자로만 생각할 때 판은 망가집니다. 보고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과, 훔쳐서 그런 척 하는 것은 달걀과 탁구공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언규씨는 영상을 내리고 자숙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숙이 아니라 소송을 준비하셔야 할 것 같긴 하지만요. 아무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동업자정신을 가지고 동료를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이건 비단 유튜버들 뿐만이 아니라 웹툰, 웹소설 업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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