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문제: '못생긴 캐릭터'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4월, 네이버웹툰에 <쥴리에타의 드레스 업>이라는 작품이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인 빙의물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고위 귀족의 사생아로, 다섯살 때 부터 극장 소품실에서 자라난 쥴리에타. 그리고 거기에 빙의한 예나입니다. 쥴리에타는 본능적으로 뛰어난 외모가 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얼굴을 숨기기 위해 부스스한 가발과 커다란 안경으로 변장을 했다-고 지금은 되어 있습니다.

4월 23일 업데이트 된 작품 요약에서는 '벽돌색 뻣뻣한 머리, 커다란 덩치, 두꺼운 안경'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정작 작품 내에서는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 피부로 변장하는 모습이 묘사됐습니다. 댓글에서는 '글로벌 시대에 인종차별적이다'라는 내용과 함께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문피아는 현재 게재된 모든 회차를 수정하고 사과문을 게시했습니다. 사건 자체는 이렇게 진행되어 끝났지만, 할 이야기는 남았습니다. 칼럼 시간은 아니지만, 잠깐 이 얘기를 해 볼게요.

* 독자는 읽는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에디터가 독자를 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독자를 전지적이지만, 동시에 아주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으로서의 독자는 전지적이죠.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독자는 자기 취향에 맞는 시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알 수가 없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독자의 기본 상태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겁니다. 독자의 기본 상태를 자극에 반응하는 말초적이고 일차원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볼 것이냐, 아니면 독자가 직접 텍스트-작품-를 읽고 해석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볼 것이냐. 보통 여기서 의견이 많이 갈립니다. 독자는 일차원적인 자극을 받아서 악플을 쏟아내는 존재라는 해석을 저는 가장 많이 만났습니다. 아니면 극히 일부는 전지전능해서 작품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에디터는 독자의 기본 상태를 '읽는 사람'에 놓습니다. 작품을 읽는 사람은 독자고, 작품을 '읽는'게 아니라 '입력'하는 사람은 독자가 아닙니다. 전자는 독자(讀者)라는 말에 가장 가까울 것이고, 후자는 '수용자'에 가까울 겁니다. 자극을 부여하는 주체가 따로 있고, 수동적으로 입력받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독자는 주체적으로 작품을 직접 읽어나가는 존재입니다.

흔히 이걸 간과해서 이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다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읽을 것이라는 당연한 전제에서 벗어나 독자는 자극을 수용하기만 할 뿐이라는 착각이요. 그래서 이미지로 전달하는 웹툰에선 '이미지의 퀄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들 말합니다. 여기서 '퀄리티'는 뭘까요?

독자를 수용자로 보는 관점에선 '보기에 예쁘고 자극적이며 화려한' 그림을 말합니다. 모든 컷에 힘을 줘서 어디에 멈추더라도 확실하게 뇌를 짜릿하게 만들 수 있는 그림들이죠. 반면 독자를 읽는 사람으로 보는 관점에선 강약조절이 중요합니다. 웹툰이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건 스크롤을 내려가면서 만나게 되는 감정의 변화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제작을 맡은 문피아와 네이버웹툰, 그리고 이 작품을 검수했을 모든 사람들은 독자를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어째서 가장 자극적이고 쉬운 길을 선택했는지 말이죠. 물론, 이건 비단 네이버웹툰이나 문피아, 그리고 작품의 전 단계를 본 사람들에게만 던지는 질문은 아닙니다.

* 쉬운 길은 쉬워서 별로다

'예쁜 외모를 숨기기 위해서 변장을 한 캐릭터'라는 설정에서 '외모를 숨겼다'와 '그래서 못생겨졌다'라는 텍스트, 즉 글자를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에게 '주인공이 외모를 감추기 위해서 이런 노력을 했어' 라는 말을 옮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템포가 다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에선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캐릭터의 덩치를 키우고 피부색을 검게 만드는 건 아주 쉬운 길입니다. 그리고 쉬운 길은 아주 높은 확률로 그리 좋은 결과를 내놓지 못합니다. 어려워 보이는 걸 쉬워 보이게 해내는 것이 대단한 거지, 쉬워 보이는 길로 자신있게 가는 건 대단하지도, 멋지지도 않죠.

문피아와 네이버웹툰은 말하자면 그런 선택을 한 겁니다. 여기서 조금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독자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어차피 읽지 않으니까' 자극적인 이미지화를 거쳤고, 읽는 독자들에 의해 논란이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창작과 제작의 과정에서, 많은 대중에게 물어볼 수 없기 때문에 창작자와 제작자는 편협한 시야를 가진 독자의 관점에서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전지적인 독자에게 판단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업성이나 작품성을 끊임없이 논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작품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아니, 그랬어야 했습니다.

<쥴리에타의 드레스 업>의 수정 전 상황은 그 자체에 윤리적 문제제기를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독자의 문제제기가 있고 나서 재빠르게 수정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쉬운 길'이어서 선택했다면 거기에 제기되는 비판을 수용하고 재빠르게 수정할 수 있는 것. 이게 웹툰이 가진 덕목 중 하나니까요.

* 생각을 멈추지 말 것

그렇다면, 웹툰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덕목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예술이자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웹툰의 덕목 중 최고는 '재미'라는 걸 누구도 부정하진 않을 겁니다. 그 재미가 뭔지 알기 위해서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니까, 사실 모든 엔터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는 '재미'라는 걸 만들어 내려면, 생각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쉬운 것'은 별로라고 아까 말했듯, 쉽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사람들은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혐오'는 사실 게으름과 동의어입니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원래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편하게 생각하려고 할 때 혐오는 싹을 틔웁니다.

이번 일련의 사건들은 쉽게 생각한 제작사가 비주얼로 편하게 만들었던 콘텐츠가 독자에게 지적받았고, 독자의 지적에 따라 수정했고 반성하겠다고 말하며 마무리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표현을 시각화하기 위해 '쉽게 생각하고 만든 작품'이 가진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못생긴 캐릭터'를 그려야 한다면, 못생기게 그리면 됩니다. 텍스트로는 쉽죠. 그러나 그걸 고민하는 것이 원래 작가의 역할이었고, 그걸 이어받은 제작사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쉽게 하면 편하니까, 하던 대로 하니까 하는 건 '타성에 젖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의 반응이 배제되었다면, 그 작업은 무엇을 위한 걸까요?

참 별 질문을 다 꺼냅니다. 힘들고 피곤하시죠?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것에 "진짜?"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 문명이 시작됐으니까요. 수천년을 이어오던 왕조에 "진짜?"라고 물으면서 공화정이 들어섰고, 인종차별에 "진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현대문명이 시작됐다고 생각해 보죠. <쥴리에타의 드레스 업>은 그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잘못이고, 재빠르게 수정하고 사과했습니다. 사과문에서 "경각심을 가지고"라는 표현이 반가운 건, 계속해서 생각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관상에서 사람을 죽이고 피어오르는 먼지를 휘젓는 수양대군(이정재 분) (출처=KT 유튜브, 2017)

하고싶은 말은 다 했으니,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해볼게요. 한재림 감독의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을 맡은 이정재 배우가 활을 쏘아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뛰어나온 배우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흙먼지가 피어오릅니다. 이정재 배우는 여기서 느릿느릿 한쪽 팔을 휘저으며 짜증난다는 듯 흙먼지를 걷어내죠. 한재림 감독은 이 장면을 찍은 뒤 이정재 배우에게 달려가 "선배님, 진짜 미친놈 같으세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원래 대본에, 감독의 의도에도 없었던 장면인 거죠. 배우가 수양대군으로 연기해낸 장면인 겁니다. 감독이나 각본가가 의도하지 않은 바가 튀어나오는 것. 이게 영화가 가진 의외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웹툰에는 미장센, 컷의 배치, 그림의 강약 모두에 작가의 의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서 등장할 수 있는 '의외성'은 극히 적거나 없습니다. 그래서 웹툰은 100% 작가의 의도가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예술입니다. 본질적으로 가장 문명의 본질에 가까운 예술이 바로 만화입니다. 인간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고, 그래서 어려운. 하지만 바로 그래서 우리가 이토록 만화를 사랑하는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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