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노조 WGA, 16년만에 총파업 돌입

지난 3월 인공지능에 대해 5가지 원칙을 내세운 결의를 발표한 미국 작가노조(WGA, Writer's Guild of America)가 지난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이번 파업은 월트디즈니, 넷플릭스 등 대형 스튜디오와 진행해온 임금협상 단체교섭이 소득 없이 결렬되면서 시작됐습니다.

WGA 소속 조합원 1만 1,500명은 2일(화) 부터 파업에 돌입했는데, 이번 파업은 2007년 말 이후 약 16년만의 파업입니다. 당시 파업은 2008년 초까지 약 100일간 지속, 당시 최고 인기작이던 <HEROES>와 같은 시리즈가 큰 타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 WGA: 임시, 계약직 유지 말고 기간제로 바꿔라 vs AMPTP: 보상을 늘리되 기간제 계약은 받을 수 없다

WGA는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제작사들은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임시, 계약직 위주의 인력운용)를 만들었고, 이번 협상에서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음으로써 '작가 업무를 평가절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배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방송작가는 프로그램 단위로 계약을 맺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어 '근로자'가 아니라 업무상 저작물을 만드는 임시직, 계약직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반면 대형 제작사들을 대표하는 AMPTP(영화TV 제작자연맹)은 "WGA와 합의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인상안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며 반박했습니다. AMPTP는 "전날보다 보상 규모를 더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WGA가 다른 조건들을 고집하는 탓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서도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WGA와 추가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양측의 합의 과정에서 최대 쟁점은 작가들의 수입을 보장하는 안전장치 마련이었습니다. WGA는 OTT 위주로 재편된 이후 드라마, 시트콤 등이 평균 시즌당 20여편에서 10여편으로 줄어든데다 작품 재판매 수익을 지급하는 재상영분배금(Residual)역시 감소했지만, 업무량은 늘어나 작가들의 어려움이 커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WGA는 스튜디오의 필요에 관계없이 일정 기간을 정해 작가 고용을 유지하며 프로그램을 제작, 진행하라고 요구했지만 AMPTP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면서 파업에 돌입하게 됐습니다.

양측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WGA는 프로젝트 단위가 아니라 기간 단위로 고용해 작가의 안전망을 보장하라는 입장이고, AMPTP는 프로젝트 단위로 하는 계약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 인공지능도 뜨거운 쟁점

인공지능 이슈 또한 빠질 수 없습니다. WGA는 제작사들이 AI를 활용해 이전에 작가들이 작업한 시나리오와 각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크립트를 생성하거나, 이렇게 AI가 만든 대본 초안을 작가들에게 손보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저작권 문제도 얽혀있고, WGA가 발표한 원칙 중 '인공지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인간이 수정한 작품에는 인간에 크레딧을 준다'는 원칙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어서 WGA 입장에선 양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이번 파업이 길어질 경우 가을 시즌 TV 프로그램들의 대본 집필이 5~6월쯤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을부터 본격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파업의 결과에 따라 미국 배우방송인조합(SAG-AFTRA)와 AMTPT의 계약이 만료되는 6월 30일부터 배우와 방송인들의 파업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19로 차질을 빚었던 만큼, 대형 스튜디오들이 또 한번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협상이 조기 타결될 가능성도 아직은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가단체가 목표로 삼은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들은 이런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데, 해외 제작 기반이 탄탄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런 작가단체의 파업은 우리에겐 낯섭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작가단체가 아주 오랫동안 다져온 기반, 그리고 실력행사를 할 수 있는 작가 단체의 힘이 강력한 협상권을 가져왔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반면, 임시-계약직 기반의 고용관계로 이루어진 미국 작가들과 달리 작품을 유통하는 것을 허락하는 파트너로서의 관계가 보다 일반적인 국내 웹툰시장에서는 이런 협상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지를 고민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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