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온라인 무관세 선언' 연장 실패... 개별국 협상으로 다시 묶는다

세계무역기구(WTO) 제 14차 각료회의가 열렸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구요? 하하, 그냥 세계 무역의 기준을 만드는 협상이 열린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근데 이게 웹툰이랑 무슨 상관일까요?
사실은 2021년 1월에 이미 이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WTO 각료회의 이야기가 스치듯이 지나갔고, 관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야기 했던 내용을 요약해볼게요. 디지털 콘텐츠는 ‘물리적 실체가 없는’ 상품이고, 그래서 세관을 통하지 않아 사실상 관세와 관련 없는 수입품으로 보아 왔습니다. 1998년 처음 WTO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때만 해도 “그게 무슨 돈이 돼” 수준이었기 때문에 다들 별 말 없이 무관세 선언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하는 세상이 옵니다.
그러니 2017년 인도, 남아공, 인도네시아가 “무관세 선언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디지털 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상대적 저개발국이 미국 등 고도로 발전한 콘텐츠 때문에 경쟁을 할 수 없어 콘텐츠 시장 자체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출발 자체가 안 되는 국가들의 입장에선 불공정하다고 느낄 법하고, 그래서 관세 적용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거죠.
이번에는 여기에 브라질 등 일부 국가가 합류하면서 아에 합의가 불발됐습니다. 거기에 미국과의 갈등을 빚고 있는 국가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일종의 반미 전선과 함께 대미 협상카드로 디지털 콘텐츠 관세를 꺼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 국가들은 사실상 미국에 콘텐츠 수출은 없고, 수입만 하고 있는, 트럼프의 말을 빌리자면 ‘불공정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실제로 영화는 필름(또는 CD, 외장하드 등 저장매체)가 실제로 넘어오기 때문에 여기에 6.5% 관세가 적용됩니다.
문제는 디지털 콘텐츠 관세를 어떻게 매기느냐는 겁니다. 한국에서 스포티파이로 BTS의 음악을 들으면, 그건 관세를 물어야 하나요? 한국에서 멜론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을 들으면요? 또, 스트리밍 단위마다 관세를 매길 건지, 아니면 구독료 전체에 관세를 매길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앨범 계약을 할 때 계약금에 매길 건지 등등 거의 무한한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관세를 내지 못하겠다면 서비스를 중단시킬텐데, 그걸 무시하고 공해상에서 서비스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한국에서 심의나 논의를 할 수 있는 아마존 관련 기업이 아예 없는데, 한국어 서비스는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관할권 밖에서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제도로는 이걸 이해하고 세금을 매기거나, 심의하거나,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물론 국내 ISP 사업자, CDN 사업자를 압박해 국내 전송 자체를 차단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되면 외교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멀쩡하게 관할권 밖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관할권 밖에서 차단한 거니까요. 놀랍죠?
우리나라의 상황은 여전히 복잡합니다. 우리나라는 콘텐츠를 많이 수입하던 나라였지만 이제는 ‘펄-럭’의 나라가 되지 않았겠어요? 2020년을 기준으로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콘텐츠 수출국입니다. 플랫폼 역량은 부족하지만, 콘텐츠 생산 역랑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관세 원칙을 주장하려면 우리가 내어줘야 할 것도 있습니다. 미국에선 플랫폼들에 대한 규제철폐를, 다른 저개발국에선 콘텐츠 제작역량 지원을 위한 노력을 비롯한 다양한 투자를 요구하겠죠.
여기에 한국 정부가 2020년에도, 지금도 진행중인 신남방정책의 주요 국가들은 현재 디지털 관세 찬성을 향하고 있습니다. 인도, 인도네시아가 중심에 버티고 있거든요. 그러니 이건 지금 뱉기도, 삼키기도 어려운 뜨거운 감자, 아니 뜨거운줄 알면서도 입에 넣어야 하는 감자 같은 상황입니다.
다시 지난 3월 말 열린 WTO 각료회의 이야기를 해 보죠. 미국은 무관세 원칙을 영구적으로 바꾸자고 주장했고, 반대파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은 5년으로 양보했고, 여기에도 인도와 브라질 등이 반대표를 던져 합의가 무산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즉시 관세가 발효되는 건 아니고, 개별 국가의 선택으로 넘어가게 된 겁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66개국이 동의해 디지털 통상 규범 임시 이행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전체 166개국 중 약 40% 가량인 66개국이 참여한 만큼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긴 합니다만, 나머지 60%에 해당하는 100개국 참여를 얼마나 설득해 내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
미국이 불러온 관세전쟁 여파가 웹툰에 직접 타격을 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대부분 국가들은 디지털 관세를 매기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실효성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협상을 위한 무기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과정이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하겠네요. 혼란의 시기, 디지털 콘텐츠마저 무기화하려는 시도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