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탕 6화]사랑이 이뤄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에 대해 :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양한 로맨스 판타지 작품이 등장하고 인기를 거두면서 스토리텔링의 트렌드 변화가 매우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로맨스의 한 갈래로서 ‘만남->시련(장애)->회복(점진적 발전)->해피엔딩1)’의 이성애 플롯을 목표로 하던 로맨스 판타지는 사랑이 목적, 목표가 아닌 원탑 여성 주인공의 모험 판타지물 플롯2)으로 점차 변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지금을 사는 우리가 느끼는 ‘사랑’에 대한 일종의 회의감이 로맨스 판타지의 스토리텔링에 반영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이르기 위해 두 사람의 만남과 감정의 교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은 사랑의 다른 일면에 도사리는 회의감의 정체이기도 하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의 바이올렛과 윈터의 문제도 공존하는 사랑의 양극의 정체성으로 인해 발생한다.


철저한 계산 속에서 결혼으로 맺어진 바이올렛과 윈터

왕의 국책 사업 실패로 국운이 기울어진 라크라운드. 왕녀 바이올렛 로렌스와 수완 좋은 사업가 윈터 블루밍이 결혼으로 맺어진다. 바이올렛과 윈터의 결혼은 부채 탕감과 기사 작위의 거래가 오가는 일종의 계약이다. 그러나 결혼식에서 바이올렛의 오빠는 국책 사업 실패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왕실의 해체를 선언한다. 그 순간 대등한 거래라 생각했던 결혼은 윈터가 막대한 손해를 입은 것으로 계산된다. 황급히 결혼식에서 자리를 뜬 윈터와 홀로 남겨진 바이올렛. 두 사람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마음은 지속되고 어느새 3년의 시간이 흐른다.


바이올렛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바이올렛은 윈터에게 늘 미안했다. 돈을 최우선으로 꼽는 윈터에게 손해가 되는 결혼을 하게 만들었단 생각에 늘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비싸게 주고 샀는데 못 쓸 물건”, “버리기에는 돈이 아까워 창고에 처박아둔 골동품3)”. 윈터가 결혼식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 이렇다 할 소통 없이 유지된 외로운 결혼생활로 인해 바이올렛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사교계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가족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살아왔다. 가끔은 윈터에게 답답한 마음을 실토하고 싶었지만 윈터는 늘 바빴다. 그날도 그랬다. 그날도 어김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바이올렛에게 윈터는 일을 하느라 차갑게 굴었고 더 나아질 것이 없다고 믿은 바이올렛은 죽음을 택했다.


윈터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윈터 블루밍은 이방인의 피가 섞인 블루밍 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왔다. 윈터에게 돈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최고의 수단이자 목적이다. “돈으로 해결하는 것밖에 몰라. 평생 그래왔으니까4)”. 그가 내뱉는 가시 돋친 말은 존재 자체로 인정받아본 적 없는 어린 소년의 외침 같다. 원하고 바란다고 주어질 리 없는 삶을 산 아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체념했고 가진 것을 늘리려고 애를 썼다. 결혼식에서 왕실의 해체 선언을 듣고 위기감을 느낀 그는 더 많은 돈이 있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야 왕녀, 바이올렛의 우아한 품위를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한 윈터는 감정을 나누는 대신 엄격한 자기통제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몰두했을 뿐이다.


바이올렛과 윈터가 서로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 #죽음 #이해

바이올렛과 윈터, 가장 가까울 것으로 인식되는 부부 사이의 거대한 균열은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졌다. 윈터는 바이올렛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그릇된 집착과 소유욕을 부리고 바이올렛은 윈터의 행복을 위해 헤어지자고 한다. 바라는 지향점이 다르다고 각자 판단한 두 사람은 닿을 수 없는 평행선에 서 있다. 평행선이 행로를 바꾼 것은 바이올렛이 ‘죽음’을 택해서다. 바이올렛의 죽음은 상대방과 몸이 바뀌는 사건으로 이어지고 바이올렛은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상황에 참담하지만 윈터의 일상을 경험하며 ‘이해’의 폭을 넓힌다. 윈터도 영문을 알 수 없이 몸이 바뀌어 버렸지만 바이올렛이 겪은 고통의 정체를, 바이올렛이 되어서야 이해했다.

노블코믹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43화 中 바이올렛이 죽어야만 윈터와 몸이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된 윈터. 두 사람이 이해하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다.

몸이 뒤바뀌는 경험은 윈터에게 이방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말미암은 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은 상대방이 되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상징처럼 보인다. 혹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영혼이 바뀌는 마법이 아니면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로 읽히기도 한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나에 대한 몰입에서 벗어나 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이해하고 이해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마저도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한 결과일 수 있다. 바이올렛과 윈터를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했을까? 이들이 서로를 이해했다면 영혼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를 죽이고 얻은 결과이기에 이해한 것이다.


#사랑 #결혼

사랑은 마음에 거주한다.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와 행동으로 이어진다. 마음으로 이어진 사랑이 자본주의사회의 삶의 형식 속에 기거하는 ‘차가운 순간(실용성, 합리성, 이해관계)5)’을 만나면 두 사람의 사이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크기 때문이다.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대화·이해·협력·타협·상호작용6)’하는 기술도 익혀야 하고 데이트, 여행, 결혼 등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사랑에 마음과 돈이 공존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사랑의 정체를 의심한다.

윈터의 사랑은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며 계산된 이해관계로 해석된다. 그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바이올렛의 옷과 보석을 사들이고 사업을 늘린다. 사랑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윈터에게 보석이나 옷 대신 “손을 잡고 싶어요”7)하고 말하는 바이올렛의 관점은 이와 대척점에 있어 보인다. 그러나 바이올렛이 추구하는 사랑은 윈터의 관점과 공존한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윈터의 세속성은 바이올렛이 추구하는 사랑이 낭만적으로 변별될 수 있는 기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터와 바이올렛은 모두 같은 성격의 사랑을 꿈꾼다. “돈으로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8)” 평범한 삶과 사랑을 바라는 윈터나 “윈터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몸을 바꾸는 일(죽음) 따위 다시는 하지 않을9)” 것이라 말하는 바이올렛이 지향하는 사랑은 결코 다르지 않다.


죽을 것처럼 힘든 ‘이해’와 ‘사랑’

로맨스 장르에서 공식처럼 여겨지는 ‘사랑의 해피엔딩은 결혼’이란 공식은 현실이 그러하지 않기 때문에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허상일 수 있다. 현실 속 결혼은 로맨스 이야기나 동화처럼 한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암묵적인 이해관계로 맺어지기도 한다. 낭만적인 사랑이라 해서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고 이해관계로 맺어졌다 해서 불행한 결과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라는 작은 세계를 깨트리고 우리로 확장될 수 있다는 뜻이며 증명할 필요 없이 내 존재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통해 드넓고 낯선 세계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는데 동반되는 노동을 기꺼이 감내하는 수고로움을 통해 타인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에서 바이올렛과 윈터가 지키고 싶은 ‘사랑’은 사랑의 정체에 혼란을 느끼고 포기해버린 로맨스 판타지의 주인공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사랑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대를 향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해하는 것은 죽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진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사랑이 우리 존재를 구원해주길 바라는 낭만성에 기대어 있는 이상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런 판타지적인 사랑 이야기를 바랄 것이다.

1) 이정옥(2019), 「로맨스, 여성, 가부장제의 함수관계에 대한 독자반응 비평」, 대중서사연구 제25권 3호, 대중서사학회, p.362.​

2) 관련한 작품의 사례로는 <내 동생 죽으면 다 죽은 목숨이다>, <그 악녀를 조심하세요>, <접근불가 레이디> 등이 있다.​

3) 이보라, 라뇽, 오션,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18화, 카카오페이지.​

4) 이보라, 라뇽, 오션,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18화, 카카오페이지.​

5) 에바 일루즈,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 이학사, p.33.​

6) 에바 일루즈,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 이학사, p.103.(에바 일루즈의 책에서 커플이 로맨스, 결혼의 열정을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된 노동’이 요구된다면서, ‘멋진 시간 함께 보내기’, ‘공통의 관심사 공유하기’, ‘대화하기’, ‘서로 알아가기’, ‘다른 사람의 욕구 이해하기’, ‘타협하기’로 서술하고 있다.)​

7) 이보라, 라뇽, 오션,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25화, 카카오페이지.​

8) 이보라, 라뇽, 오션,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29화, 카카오페이지.​

9) 이보라, 라뇽, 오션,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32화, 카카오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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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의 후일담은 팟캐스트 '웹투니스타'의 파일럿 방송 <그 비평가가 로판에 고료를 탕진한 사연>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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