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기보다 천천히, 할 수 있는 것부터" 김동훈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 인터뷰

웹툰작가는 노동자일까요? 그럼 노동자는 뭘까요? 우리나라에선 임금노동을 하는 사람을 ‘근로자’라고 부르고, 그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노동법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개인사업자입니다. 자기 사업을 한다는 거죠. 반복되는 일을 하고, 원고료(또는 MG)를 받고, 플랫폼에 작품을 제공하는 작가는? 이때부터 어려워집니다.

이 어려운 길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웹툰작가노동조합입니다. 웹툰작가노동조합의 김동훈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Q. 위원장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위버>, <베리타스>등을 연재한 작가입니다. ‘불법웹툰피해작가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지금은 웹툰작가노동조합의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Q. 웹툰작가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작년(2020년) 12월에 설립을 했어요. 2020년 8월 정도부터 준비를 했었구요. 준비하게 된 계기는 사실 그동안 만화가로 일하면서 지켜보니까 기존의 협회나 단체들이 모든 이슈에 대응하긴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응해야 하는 분야가 너무 넓으니까요. 그때 주변에 이런 단체가 필요하겠냐고 여쭤봤고, 여러 형태에 대한 조언을 들었어요. 취지나 필요성에도 공감이 갔고, 그런데 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웹툰작가노동조합에서 조합원에게 발행하는 웹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를 다이제스티브 형태로 전달한다. 웹툰작가노동조합의 캐릭터 '웹이'와 '툰이'는 김동훈 작가가 기증했다. (출처=웹툰작가노동조합)

아무래도 대책회의를 꾸려나가면서 경험이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던 점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만났던 분들이 도움을 주시기도 했고, 직접 가입해주시기도 했구요.

Q. 현행법상 창작을 하는 작가는 자기 IP를 운용하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됩니다. 물론 하는 일은 모두 노동이지만, 법상으로 ‘근로자’가 아닌 건데요. 이 지점에 대한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A. 어떤 것이 ‘노동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노동vs비노동”으로 가는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구요. 내 능력으로 내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현행법상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하면, 작가가 ‘일’ 하는 시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여기서 나아가서 결국 노동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정책적인 이슈파이팅도 있어야 할 것이고, 창작노동의 특수성이나 사용자가 불명확하다는 점 같은 것들이 작가들이 협력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인식의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구요, 그래서 이 인식을 바꾸기 위한 부분도 준비를 하고 있어요.

Q. ‘작가’가 중심이 된 단체는 아무래도 자신의 작품이 있는 작가, 즉 개인창작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최근 스튜디오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렇고, 범위를 넓혀나간다고 해도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있는 보조작가(스태프)들도 포괄해야 할 것 같은데요.

A. 맞습니다. 노동조합 설립 준비 당시부터 고민했던 지점이구요, 발기인부터 함께 해 주신 보조작가분이 계세요. 처음부터 그 부분을 고려했고, 동일한 발언권을 가지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보조작가 작가들의 권한, 노동자로서 가져야 할 권리들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웨비나(Webinar, 온라인 세미나)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헐리웃을 롤모델로 해서 IP에 대한 권리를 일정부분 인정받을 수 있는가를 논의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하나만 강요하는 게 아니라, IP의 발전가능성을 보고 들어와서 IP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는 작가도 나올 수 있고, 높은 보수를 받고 권리는 가지지 않는 보조작가도 있을 수 있는 거죠. 그걸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젊은 작가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홍보물도 제작하고 있다. (출처=웹툰노조 페이스북)

질문에서 말씀하신대로 보조작가들이 늘어나고 있고, 개인 창작자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이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작가간 갈등이 더 커지기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보조작가를 작가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오고 있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작품의 크레딧에 따른 보상체계와 가이드라인도 필요하죠. 같은 작품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구요.

Q. 그럼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창작자로서의 작가에게 필요한 권리와 근로계약을 맺은 보조작가에게 필요한 권리가 있죠. 그리고 창작자는 어느 순간이 되면 어시스턴트나 보조작가를 고용하는 고용주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이 될 수도 있잖아요. 여기서 생겨나는 갈등은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A. 어려운 문제죠. 사실 그래서 ‘실질적 사용자’가 누군지를 명확히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치 기존의 전통적인 사업단계에서 “원청-하청” 구도가 만들어졌을 때, 원청이 진짜 사용자지 하청의 하청을 준 업체기 진짜 사용자는 아니잖아요. 100% 똑같지는 않더라도 개념적으로 플랫폼 아래에 작가가 작품을 연재하고, 작가가 보조작가나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형태가 되면 ‘진짜 사용자’는 플랫폼이라는 걸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지난 수년간 웹툰계에 각종 단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 단체와 어떻게 가장 다르다고 보시나요.

A. 이 지점에서 저희가 가진 강점이 있는데, 발이 넓게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는 점이예요. 필요하다면 어느 곳과도 협업을 할 수 있고,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서 여러 단체를 모아서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 수 있는 거죠.

개인 창작자도, 보조작가도, 어시스턴트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걸 플랫폼이나 제작사들과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노동조합 인가가 났기 때문에 쟁의도 할 수 있고, 노동조합이 가지는 장점들은 물론이구요.

여기에 더불어 대책회의 활동을 오래 해 오면서 쌓인 노하우가 있겠죠. 사실 대책회의를 하면서는 한계를 많이 느꼈었거든요. 그런데 노조 이름으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경고장을 발행하고, 형사고발을 진행하고 기자회견을 하면, 그러니까 노동조합 이름으로 움직이면 반응이 다르더라구요. 그러니 가입해주시면 그 힘에 더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웃음).

Q. 불법웹툰 이야기를 한번 해 보죠. 불법웹툰은 이제 글로벌 이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자들 인식을 바꾸는 캠페인과 더불어 가장 시급한 정책적 대안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저희 노동조합이 지금 베트남에서 자칭 ‘팬 사이트’로 운영중인 불법웹툰 사이트를 고발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요. 말씀하신대로 불법 웹툰 유통도 글로벌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고요. 사실 이게 처벌을 하려면 ‘수익사업을 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광고를 달아서 얼마를 벌었는가가 항상 나오는 이유기도 해요. 저들의 주장처럼 ‘단순히 팬심으로’ 공유한 것과, 남의 저작물로 ‘수익활동을 한 것’은 처벌 수위가 차이가 많이 나죠.
웹툰노조는 직접 번역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법이용처' 알리기에도 나서고 있다(출처=웹툰노조)

일본의 불법유통 사이트였던 ‘망가무라’가 빨리 잡혔던 이유중엔 그것도 있어요. 불법으로 유통하는 주제에 500엔씩 받고 구독을 받았거든요. 명백한 수익사업인 거죠. 그런데 불법사이트에 그렇게 결제창을 달아놓고 수익사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점점 지능화되는 범죄를 따라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웹툰노조에서 알립니다

웹툰노조에서는 저작권보호원의 해외 불법웹툰 유통 대응을 위해, 저작권보호원에 위임장을 전달중입니다. 작가님들의 위임장을 시작으로 이후 해외 불법사이트에 소송비 지원 등을 통해 보다 강력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작가님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위임장을 보내주시거나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은 이메일(webtooncreatorunion@gmail.com)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웹툰계에서 ‘잘못된 정보’가 빠르게 퍼져서 제대로 된 정보를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이 알음알음으로 진행되기도 하고요. 이 빈틈을 노리는 불공정계약도 있죠. 정보투명성은 어떻게 담보하실 계획인가요?

A. 일단 노동조합원 분들께는 단톡방 등을 활용해서 빠르게 확인하실 수 있는 곳에 정기적으로 보고를 전달 드리고, 모든 회의록은 구글드라이브에 올려서 공유하고 있어요. 다만, 외부로 유출되면 악용될 소지가 있는 불법웹툰 등의 기술적 측면은 예외적으로 빼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웨비나와 브리핑을 진행할 예정이고, 상근직을 채용해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해드릴 예정이에요.

Q. 그렇다면 공유하는, 또는 공유하게 될 예정인 정보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 저희가 제보받은 계약서를 토대로 계약조건을 업체별로, 단위별로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방안을 준비중입니다. 또 단순히 웹툰에만 국한하지 않고 OTT 플랫폼 등 다양한 단위의 노동을 연구하는 팀을 꾸려서 정보를 공유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Q. 다른 플랫폼들도 연구하신다는 걸로 들리는데, 그럼 더 폭넓은 이슈를 다루게 되겠네요.

A. 네. 일단은 망중립성에 대한 논의를 준비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터넷 사용이 망 유지를 위한 돈뿐 아니라 이제는 온라인 상에서 일어나는 거래가 많아지면서 수수료 문제가 대두되고 있잖아요. 그런 문제도 다루게 될 거라서 저희는 제작사나 플랫폼과 연대할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보다 상위의 플랫폼과 협상 테이블을 꾸리자는 거죠.

Q. 글 쓰는 입장에서 ‘어려운 정보’를 다루는데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그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다루는 문제가 쉬운게 아닌데, 어떻게 정보전달을 하고 계시나요?

A. 일단 기본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해서 전달드리고 있구요, 그 밖에도 소셜미디어나 카드뉴스 형식으로 만들어서 공유드리는 방법은 당연히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슈파이팅이 필요하고, 작가들에게 직접 이해시켜야 할 문제가 있을 때는 아예 그걸 웹툰으로 만들어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작가분들이기 때문에 콘티를 짜서 돌리는 것 만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걸 이미 고용보험 이슈 때 확인을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작가분들께는 줄글이나 세세한 설명이 들어간 긴 회의록, 문서보다 압축된 만화로 먼저 이해시켜 드리는 것이 효과적이더라구요.

Q. 활동을 시작하시는 단계에서 공개하실 수 있는 것들에는 어떤것들이 있을까요?

A. 일단 홈페이지를 준비중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예요. 급하고 빠르게 가기보다, 천천히 단단하게 꾸려서 일하는 조직을 만들고자 합니다. 대책회의에서 얻은 경험과 아쉬움을 노동조합이라는 형태로 풀어내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서 보다 많은 작가분들께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Q.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가입을 망설이는 분들과 지켜보는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A. 말씀드린대로 천천히, 단단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지, 그리고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지금 우리뿐 아니라 이후 세대에 남겨줄 수 있는 것들을 만들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가입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도 있습니다(웃음). 앞으로 잘 지켜봐 주시고,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작가들이 뭉치기 어려운 이유는, 일단 바쁜 건 둘째 치고 각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선 곳이 다르고, 또 치열한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한 싸움을 매일 이어가고 있는 작가들에게 ‘잠시 멈춰서 논의하자’는 말은 어쩌면 모두에게 욕먹기 딱 좋은 위치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필요한 일이죠.

김동훈 위원장은 ‘속도’보다 천천히, 단단하게 만화계 주변의 문제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정리해서 전달하고, 작가들의 권리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죠. 이제 시작이니까요.

연관 기사
추천 기사
인기 기사